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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고구려-왜 관계? - 땜빵 포스팅..

그동안 포스팅 같지도 않은 포스팅만 올려서 쫌 거시기 했네요. 그렇다고 막상 뭘 새로 쓰려니.. ;;;

카페에 어떤 분이 질문글을 올리셨길래 제가 대강 답변 한 걸 재활용합니다. 별 내용은 없어요.(가만 생각해보니 비슷한 내용을 포스팅으로 올린 적이 있었던거 같기도 하고.. 아닌거 같기도 하고.. 에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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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 후반에 처음으로 맞부딪힌 고구려와 왜의 관계는 그닥 좋지 않았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광개토태왕의 한반도 남부 원정에서 왜군이 깊이 개입되었는데 결국 왜가 크게 패하고 말지요. 그 때문에 왜는 대중국 교통창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던 가야 지역이 고구려에 제압됨에 따라 고구려에 대한 불만이 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고구려로써도 원정에서 끈질기게 달려들던 왜에 대해서는 대단히 감정이 안좋았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그 관계가 6세기 중엽까지 이어지는데 이 상황에 변화가 발생합니다. 한반도의 패권 장악을 놓구서 고구려, 백제, 신라 간에 쟁투가 치열하게 벌어졌지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삼국간에 가장 국력이 강한 고구려가 일방적으로 두 나라를 유린해야 맞는 말 이겠지만 고구려가 한반도 남부에만 신경을 쓸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6세기 중엽은 돌궐의 건국과 북제의 도발로 고구려 서북변 경계가 상당히 위기 상황에 돌입해 있었고 동북쪽에서는 5세기 말부터 준동해오던 물길의 위협이 상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와중에 한반도 남부에 대한 패권 장악을 하자니 고구려로써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판국이었습니다.

당시 백제는 신라의 견제를 위해서 왜국과 교섭하고 있었고, 신라는 반대로 배후를 기습당하지 않기 위해 왜국과 계속 교섭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한편 고구려로써도 백제나 신라 어느 한쪽이 왜와 손을 잡게 되면 그만큼 고구려가 한반도 패권장악에 힘이 드는 만큼 어느 쪽과 손을 잡는 걸 원치 않았습니다. 때문에 왜국에서 군사원조나 군사동맹을 맺는게 아니라 외교적 수사로써 친근한 모습만 보여도 삼국은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이런 외교적 암투는 대중관계와 대일 관계에 있어서 동일한 양상으로 나타났습니다.)

때문에 고구려가 독립된 천하관을 소유하고 그에 걸맞는 힘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국 외교 관계에서 조공 책봉관계를 융통성 있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밖에 없었고 백제나 신라도 일본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저자세를 유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편 일본에서도 이런 삼국간의 외교 암투전을 이용해 국내에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주로 중앙이 지방통제를 위한 수단으로 삼국 외교를 이용하려는 측면이 나타나죠. 왜냐면 일본이란 땅은 산간지역과 섬이 많아 지역 호족들이 할거하기 좋고 중앙의 통제가 대단히 어렵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호족들은 상당수가 삼국에서 건너온 도래인 집단들이 많았기 때문에 일본 왕실에서 도래인 집단의 본국과 관계를 돈독히 하거나 혹은 이들 나라이 저자세 외교를 취하게 되면 일본이 그보다 상위에 있는 나라란 것을 과시함으로써 호족들을 대왕(천황제가 성립된 것은 7세기 후반부터니까.. 이전은 대왕체제입니다.) 아래로 위계지을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됩니다. 즉, 정신적 구속장치가 만들어 지는 것이죠.

물론 삼국이 일본이 의도하는대로 정치적으로 이용만 당한 것은 아닙니다. 최소한 삼국 쟁투간에 현상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중요한 것이었고, 무엇보다도 일본열도에 자리잡고 있는 각국계 도래인 호족집단을 지원함으로써 호족들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일본열도 내에 자국 영향력을 확대하려 했습니다. 한편 도래인 집단들은 본국의 지원을 받아 일본 열도 내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높여 일본 정계 내에서 헤게모니 장악을 하는데 이용하려 했지요.(물론 지방분권에서 중앙집권으로 넘어가는 상황이라 전처럼 지방 독립성은 그만큼 떨어지겠죠. 하지만 반대로 호족들이 중앙정계에 진출함으로써 지방이 중앙을 거꾸로 통제할 수도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고 그런 구조를 호족들이 거꾸로 이용함으로써 호족은 중앙에 대해 일방적으로 불리하진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람들이 백제계 소아씨 정권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즉, 서로가 서로를 이용해 먹은 셈입니다. 

잠시 얘기가 샜는데, 그런 이유로 고구려와 왜는 6세기 중반부터 외교관계의 전환점을 맞았고, 6세기 후반, 수가 중국대륙을 통일한 직후 위협을 느낀 고구려에서 그것을 계기로 대일 외교에 많은 투자를 하게 됩니다. 물론 일본열도가 고구려에 대해 군사적인 원조를 한다는게 양적 측면에서 본다면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습니다만(배타고 오는 인원이 아무리 많아봐야 5만을 넘긴 어려울테니까요.) 당시에 중국대륙에서는 일본열도의 사정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일본 열도에서 외교적으로 중국에 적대적으로 나오게 된다면 최소한 사정을 알아보기 전까지는 주춤하거나 꺼릴 수 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재일 사학자 이성시의 연구에 따르면 왜국 쇼토쿠 태자가 수나라에 무례한 국서를 보낸 것에 고구려가 개입되었을 가능성을 얘기할 정도니까요.

실제로 왜국에서 보낸 국서, 즉 동쪽의 천자가 서쪽 천자에게 문안드리노니.. 라고 시작되는 이 국서에 대해 성격 드럽다던 양제가 왜국 사신을 목베지 않고 답사를 보내기까지 했는데 아마도 일본열도의 사정을 탐색하고 고구려 원정 계획을 조율하기 위해서였던게 아닐까 하는게 이성시 박사의 주장입니다.

이 때에 고구려에서 많은 학자, 기술자들이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고대 일본에서 의외로 지리적 연관성이 별로 없는 고구려의 향기가 많이 느껴지는 까닭은 여기에 있습니다.

 
ps. 더 자세한 것을 아시고 싶으시다면 다음 문헌을 참고해 주세요.

한일관계사학회 - <<동아시아 속에서의 고구려와 왜>>

이성시 - ...

...논문을 첨삭하려고 하니 논문 제목이 자세히 생각 안나는 관계로 패스...(퍽퍽)

by 한단인 | 2008/04/02 14:47 | 역사 | 트랙백 | 핑백(1)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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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왕실에서 발해 성왕의 '천손' 언급을 비난하고 발해가 일본의 속국이라고 언급한 배경에 대해서는 제가 쓴백제 게시판 2609번 글(링크) 후반부와 고구려 게시판 5142번 글 초반부를 먼저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정치적 독립성과 자주권을 가지고 있는 국가라고 할지라도 외교 관계상에서 필요하다고 할 경우 아쉬운 쪽에서 저자세를 취하는 경우 ... more

Commented by 耿君 at 2008/04/02 14:50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ㅋㅋ 일본식 표현이네요. 슬며시 웃었습니다.
음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8/04/02 15:08
떠헛.. 내용 수정을 잠깐 하는 새에..엉엉

근데 그게 일본식 표현이었군요. 음.. 모르고 살았네요.
Commented by 제르미날 at 2008/04/02 20:03
전 개인적으로는 고대사 분야에서 이성시 씨가 하는 말에 많이 공감합니다. <만들어진 고대> 읽고 나서 특히 ^^;;
Commented by 진구 at 2014/06/29 01:47
음, 잘 봤습니다.

중간에 한가지 궁금한게 있는데, 노태돈 선생님같은 경우는 <<고구려사 연구>>에서 조공기록에 근거해 6세기 중반을 물길 구심력의 해체기로 파악하시는것 같던데,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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