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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 행상인(行商人)의 기원

잡담 16 - 채운국 이야기 감상

(펌글) 중세 일본 '쿠고닌-공어인(供御人)' 집단의 다양한 활동

며칠 전 포스팅에서 채운국 이야기를 꺼내면서 행상인 얘기가 나와 그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도 하는 겸, 그리고 바로 아래 링크된 포스팅에서 제가 언급한 문제제기를 보충하는 자료로서 이 글을 퍼옵니다.

이 글의 출처는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 http://cafe.naver.com/japanomi.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25 

원래 이 글은 일본어 원문만 게시되어 있었는데 제가 일본어를 할 줄 모르는 관계로 일본어 번역기를 돌린 후 한자를 보면서 대략 의역하는 방식으로 내용 파악을 했습니다. 그런데 히나가라로 된 명사나 형용사, 혹은 번역기에서 오역되는 부분은 도저히 어찌할 수 없던 중, 쿠고닌 관련 글을 썼던 그 형님이 일본어 하시는 후배분의 도움을 받아 번역을 해두셨길래 그 글을 제 나름대로 다듬어 올립니다.(원래 이 글도 2월 초엔가 역사문 카페에 올라왔던 것이고 제가 처음 번역했던 것이 쿠고닌 글 올라오고 난지 이틀도 채 되지 않았었는데 3개월을 미루고서 이걸 쓰는 군요. 저도 참..;;; 정리글도 내일 쓴다고 하고서 또 미루는 건 아닌지 몰라요. ㅠㅠ)


일러두기 : 그 형님의 번역문에 있던 강조점과 제가 강조하려는 부분이 조금 다르기 때문에 원 번역문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그 형님이 강조하셨던 부분은 없애지 않은 대신 굵은 글씨체로 남겨두었고 제가 강조하려는 부분은 밑줄 표시를 해두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처음 이 글을 읽었을 때 머리속을 스치던 작은 문제제기 일부를 갈색 글씨체로 표시해 두었습니다. 원래는 전부를 다 올릴까 했는데 생각해보니 그렇게 올리면 난잡하겠다 싶어서 하나의 완결성(?) 있는 글로 포스팅하는게 좋을 거 같아 몇몇 부분을 뺐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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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商人のはじまり(행상인의 시작)

わが国の歴史学・社会学においては,戦前までは, 日本は一貫して農業国家であったかのように扱われ,ともすると手工業・商業 に豊かな 歴史と伝統があることが忘れられがちであった。柳田国男の民俗学におけ る常民の概念 も,おおむね平地の農村に住む人々を対象としている。だが戦後,多くの歴史学者の研究 によって,わが国における種々の産業の発達の歴史が,明らかにされつつある。 例えば, 現在では農民にたいする蔑称として避けられている百姓という言葉は,元は字義通り 百の姓,すなわちあらゆる産業に携わる一般庶民に対する総称であった。

우리나라(일본)의 역사학․사회학에서, 종전(終戰)의 일본은 일관되게 농업국가인 것처럼 다루어져 종종 수공업과 상업에도 풍부한 역사와 전통이 있다는 사실이 잊혀지게 되는 경향이 있다. 야나기다쿠니오[柳田國男]의 민속학에서의 상민(常民)의 개념도 대체로 평지의 농촌에 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전후(戰後) 많은 역사학자의 연구에 의해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산업 발달의 역사가 밝혀지고 있다. 예를 들면, 현재에는 농민에 대한 멸칭(蔑稱)으로서 피해지고 있는 백성(百姓)이라는 단어가 원래는 글자 그대로 ‘백(百)의 성(姓)’, 이를테면 온갖 산업에 종사하는 일반 서민에 대한 총칭이었다.


商人の源流は,農民以外の非常民から起こったと推定される。古代の社会では,農民は自給自足の生活を営み,余剰鹿産物を外部に供給する余裕も必要もなかった。農村の生産物は何処も似たようなもので,交易が成立するだけの差異に乏しかった。しかし,定住しない漂泊民との間で,物々交換が行われた形跡はある。また,遠く隔たった漁村と山村などの間では,産品に 違いがあり, 足りない物を助け合う形で交換が行われた。そ れらの中に, 商いの萌芽が見られる。

상인(商人)의 원류는 농민 이외의 비상민(非常民)에서 기원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고대사회에서 농민은 자급자족의 생활을 영위하였으며 잉여생산물을 외부에 공급할 여유도, 그럴 필요도 없었다. 또 농촌의 생산물은 어디에서나 비슷했기 때문에 교역이 성립될만한 차이가 불충분하였다. 그러나 정주(定住)하지 않는 ‘표박민(漂泊民-이동하면서 생활하는 '유랑'집단)’ 사이에서는 물물교환이 행해졌던 흔적이 있다. 또 멀리 떨어져 있던 어촌과 산촌들은 생산품에 차이가 있었고, 모자란 물자들을 서로 보완하는 형태로 교환이 행해졌다. 그러한 가운데 상업의 맹아가 나타나게 된다.


古代から中世にかけて,海人(あま)と呼ばれる集団があった。海人は, 海岸や島部に 住んで漁労を生業としていたが,航海術に長けていたことから, 収穫した海産物を遠方 まで売りに行くようになった。

고대에서 중세에 걸쳐 아마[海人-あま]라고 불리는 집단이 있었다. 아마는 해안과 섬 지역에 살면서 어로를 생업으로 했지만, 항해술에 뛰어났기 때문에 수확한 해산물을 먼 곳까지 팔러 가기도 하였다.


中でも有名だったのが伊勢の海人であり,早くから小舟で海岸伝いに東海や瀬戸内まで行商に出ていたと伝えられている。海人の活動が松阪商人の起源ではないかとも言われている 。

그 중에서도 유명했던 것이 이세(尹勢)의 아마였으며, 일찍부터 작은 배로 해안을 따라 도카이[東海]와 세토우치[瀨戶內]까지 행상에 나섰다고 전해지고 있다. 아마의 활동이 마쓰자카[松阪] 상인의 기원이 아닐까 라고 지적되기도 한다.


一方,神社に奉仕する俗人である神人(じにん)として活動していた漁民の集団もある。 賀茂御祖神社の社領であった摂津国長洲庄の漁民は,供御人ある いは神人として神僕の魚介類 を奉ずるとともに,余剰の産物を各地に売りに行っていた。長洲に近い今宮には,広田神社に神人 がいて, 全国を回り,魚介類以外の麦や絹なども販売した。

한편, 신사에 봉사하는 속인(俗人)지닌[神人-じにん]이라 불리는 어민 집단도 있었다. 카모미오야신사[賀茂御祖神社]의 사령(社領)이었던 세쯔국[攝津國] 쵸슈장[長洲庄=莊]의 어민(漁民)은 쿠고닌[供御人]이면서 지닌으로서 신복(神僕)의 어패류를 바치기도 하고, 잉여 생산물을 각지에 팔러 가기도 하였다. 쵸슈[長洲]와 가까운 이마미야[今宮]에서는 히로타신사[廣田神社]에 지닌이 있어 전국을 돌며 어패류 이외에도 보리나 비단(絹)등을 판매하기도 했다.


山人も,早くから職能民として自立 していった。山間部では自給自足が難しいので,旅職人 として渡り歩く道を選ぶ者が多かった。彼らは木材の加工に長 じ,腕の良い者は,大工として, 普請のある所に雇われた。それ以外の者は, 山の産物を持って行商に出かけた。山人の中でも, 商人として特に活躍の目立ったのが,木地屋である。彼らは,里から離れた山あいの部落で, 糎櫨を用いて椀などの木製品を製造し,これを売り歩いた。

산진[山人-さんじん]도 일찍부터 직능민(職能民)으로써 자립하고 있었다. 산간부락에서는 자급자족이 어려웠기 때문에 여직인(旅職人)으로써 일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목재 가공에 능했고, 솜씨가 좋은 사람은 목수로서 요청이 있는 곳에 고용되었으며 그 외의 사람들은 산에서 나는 물품을 가지고 행상에 나섰다. 산진 중에서도 상인으로서 특별하게 활약이 주목되는 것이 키지야[木地屋]이다. 그들은 마을에서 떨어진 산간 부락에서 녹로(토기 만들때 밑에서 회전하는 도구)를 이용하여 그릇이나 목제품을 만들어 그것들을 팔러 돌아다녔다.


鋳物師も,諸国を遍歴して仕事をした。彼らは,自己の製品の販売と修理の 請負仕事に留まら ず,時として他人の製品を仕入れて販売した。荘園の発達が, 彼らの特殊な技能の需要を促した。 農機具や武具,梵鐘などを製造するために, 荘園領主や寺社は鋳物師を重用し,多額の礼銭を支払っ たのである。

주물사(鑄物師)들도 각 지방을 돌아다니며 일을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제품을 판매하고 다른 물건들을 수리해 줄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타인의 제품을 수입하여 판매했다(공인의 상인 전환?). 장원(莊園) 발달은 그들의 특수한 기능수요를 촉진시켰다. 농기구와 무구(武具), 범종(梵鐘) 등을 제조하기 위해 장원영주(莊園領主)와 지샤[寺社-じしゃ;절과 신사]는 주물사를 중용하고, 거액의 예전(禮錢)을 지불했던 것이다
기술자, 상인 끌어들이기 경쟁 ; 생산수단이 농사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땅에 얽매이지 않는 유동성 보유. 통제가 그만큼 어려움.
또한 이동 거리의 문제 ; 통치체제의 경쟁자가 근거리에 존재하지 않으면 기술자 영입 상에서 경쟁 구조는 발생하기 어려움. 때문에 고려의 所는 국가에 예속된 노예집단이 될 수 밖에 없음?


山人や鋳物師には,戸簿を持たない浮浪人が多かった。彼らは常民の立ち入 らない場所に小屋をつくって,細工ものをした。その生活から河原者,坂の者, 散所などと呼ばれ,中世の産業の影の原動力となっていった。

산인이나 주물사 중에는 호부(戸簿)를 가지지 않는 부랑인(浮浪人)이 많았다.(지배의 거부가 가능한 현실적 구조는? 이들은 정주세력에게 박쥐 같은 존재였을까?) 그들은 상민(常民-일반 민?)이 들어가지 않는 장소에 작은 집을 만들고, 세공작업을 했다. 그러한 생활로 인해 가와라모노[河原者], 사카노모노[坂の者], 산죠[散所] 등으로 불렸으나 중세 산업의 원동력이 되어갔다.


古代においては,まだ固定化した店舗での販売は発達せず,商売の中心は行商であった。行商には, 居住地の近くを売り歩く小商人と,全国を放浪する旅商人との区別が見られた。中世になって,都市 では店舗営業が一般的になった後も,小商人は日帰りか一泊程度で都市を訪れ,棒を担いで振売を 行った。都市の発達に伴い,種々の振売の姿は,都市の住民の需要を満たすためには,欠かせない存在となっていったのである。その中には,大山崎の油商人の姿もあった。室町時代に入ると, 農閑期を利用した農民の出稼ぎの姿も数多く見られ, 江戸時代に禁止されるまで続いた。

고대에는 아직 고정화된 점포에서의 판매는 발달하지 못하였으며, 상업의 중심은 행상(行商)이었다. 행상에는 거주지·거처 근처를 팔러 돌아다니는 ‘소상인(小商人)’과, 전국을 방랑하는 ‘여상인(旅商人)’으로 구별되었다. 중세가 되면서 도시에서의 점포영업이 일반적이 되었지만 소상인은 당일치기나 1박 정도 일정으로 도시들을 방문하면서 장대 양쪽에 짐보따리를 메고 장사를 했다. 도시가 발달함에 따라 다양한 상인의 등장은 도시민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흠잡을 수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 중에는 오오야마자키[大山崎]의 기름상인(油商人)도 있었다. 무로마치[室町]시대로 들어서면, 농한기를 이용해 농민이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는 모습도 많이 나타나며 에도(江戶)시대에 금지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近郊の農村から来た商人は,寺社の祭礼に合わせて出店するのが常であった。 奈良の輿福寺の大乗院には塩の本座と新座があったが,新座は,原則として町中で振売を行い,屋内では一切売らない ことを定めていた。

근교의 농촌에서 온 상인은 지샤[절, 신사 寺社-じしゃ]의 제례에 맞춰 가게를 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나라[奈良] 코오후쿠지[여복사興福寺-こうふくじ]의 다이조인[대승원大乘院-だいじょういん]에는 소금의 본좌(本座)신좌(新座)가 있었는데 신좌는 원칙적으로 마을 안에서 장대 양쪽에 짐보따리를 메고 장사를 했지만 가게 안에서는 일절 장사를 하지 못 하도록 하는 규칙이 정해져 있었다.


小商人の場合,個々の売り上げは少なかったが,旅商人は,まとまった売り 上げを上げる存在で あった。古代では,『日本書紀』欽明天皇(在位539?571 年)の条に,秦大津父が,山城から伊勢に かけて行商をしたことが記されてい る。この秦氏は,勢力のある帰化人であり,古くから商業に従事 していたものと見られている。荘園の発達した平安時代には,行商人の数も増え,『伊勢物語』には, 「田舎わたらひする人」,すなわち田舎へ行商に向かう人の記述が見られる。『新猿楽記』には, 「利を重んじて,妻を知らず,身を念ひて他人を顧みず,その交易地は,北は陸奥から南は貴賀島 (鬼界ケ島)に及び,その交易品は唐物四十五種,本朝物三十六種に上る」との記述がある。 遠路運ばれる国産品の中には,化粧品の原料となる水銀,砂金,硫黄など,産出地が限られる上に 産出量が少なく,生産・精製に技術を要するもの,すなわち高値で取り引きされる特殊産品が 数多く見られた。

소상인(小商人)의 경우 개개의 매상은 적었지만, 여상인(旅商人)은 일정한 매상을 올리는 존재였다.『日本書紀』欽明天皇(539~571) 條를 보면 고대 일본에서 하타씨[秦大津父-オオツチ]가 야마시로[山城]에서 이세(伊勢)에 걸쳐 행상을 했던 것이 기록되어 있다. 이 하타씨는 어느정도 세력이 있는 귀화인으로, 예부터 상업에 종사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장원이 발달했던 헤이안[平安] 시대에는 행상인의 수가 증가하여『이세물어(伊勢物語)』에 ‘시골을 옮겨다니는 사람’ 즉 시골로 행상을 떠나는 사람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신원낙기(新猿樂記)』에는 ‘이득을 중요시 하여 처(妻)를 제쳐두고, 자기만을 생각하며 타인을 돌보지않는다. 교역지는 北으로는 육오(陸奧)에서부터 南으로 귀하도(貴賀島)까지 미치며, 교역품은 당나라 물품 45종(唐物四十五種), 일본 물품 36종(本朝物三十六種)에 달한다.’ 라고 기술되어 있다. 원거리로 운반되는 국산품 중에는 화장품의 원료가 되는 수은, 사금, 유황 등 산출지가 한정되어 있어 산출량이 적고 생산·정제에 기술이 필요한 것, 즉 고가로 거래할 수 있는 특수상품이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by 한단인 | 2008/04/04 20:04 | 역사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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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한단인의 빈수레 at 2008/04/25 12:51

제목 : 所와 쿠고닌의 차이 - 희소성의 권력
펌글) 행상인(行商人)의 기원저번에 고려의 기술자 집단인 '所'와 중세 일본의 기술자 집단인 '쿠고닌'에 대해 그 둘의 차이점에 대해서 원인 분석하는 글을 써 볼 생각이라고 한 적이 있었드랬습니다. 워낙에 게을러서 1월 중순에 생각해둔걸 3개월 뒤에 정리하는 것이 문제긴 하지만..쓰고보니 당연한 소리를 뭐가 좀 있는 듯하게 길게 늘여뜰어서 주절거린거 같네요. 아는게 별로 없어 핵심적 단어 몇개로 설명하진 못하고 주저리주저리 하......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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