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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왜 마한일까?

和田淸의 <東亞史硏究>(滿洲篇)을 읽다가

삼국사기에서 최치원의 언급을 보면 삼한을 삼국에 대응시키는 부분에서 마한=고구려, 변한=백제, 진한=신라 라고 일컫습니다. 그런데 삼한과는 별다른 연고 없는 고구려가 마한과 대칭되고, 변한이 백제와 대칭되는 상황은 조금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왜 그런 걸까요? 조금 의아하게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1.pdf [조법종(1998) 고구려의 마한계승 인식론에 대한 검토]
2.pdf [이도학(2005) 최치원의 고구려 인식]

일단 백제=변한으로 지칭되는 부분에 대한 논의는 제쳐두고 고구려를 왜 마한에 대칭시키는 지에 대한 논의들을 검토해보고자 합니다. 위의 논문들은 제가 졸업논문 쓰면서 '고구려=마한'에 대해 언급할 부분이 있어 참고한 논문들입니다. 그리고 다음에 올 부분은 제가 그 논문들을 참작해서 졸업논문에서 써갈긴 글의 일부입니다.

맞는지는 장담을 못하겠으나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고구려를 마한으로 대칭시킨 최치원의 인식이 정통성 문제로 5~6세기에 고구려가 만주와 한반도 지역의 통합을 위해 국가 기억을 조작시켰거나, 혹은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면서 삼한일통 논리의 정당성을 얻기 위한 '강화' 장치(이전부터 삼국에 삼한 의식은 어느 정도 있었지만 삼국을 삼한에 각기 대칭시킬 정도까지는 아닐 수도 있겠다 싶더군요)로 삼국을 삼한 각국에 일일히 대칭시키는 기억 조작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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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천명 실현의 대리자적 존재인 천자는 천의 질서를 가장 잘 실현할 만한 덕(德)을 갖춘 자가 천으로부터 임명된다. 그러나 덕을 잃은 천자나, 천자를 배출하는 왕조의 덕이 쇠해지면 천이 더이상 그 천자나 왕조를 유지하지 않고 다른 종류의 덕(德)을 갖춘 누군가에게로 수명의 의무를 교체한다는 관념이 바로 역성혁명으로 주로 구 왕조를 타도하고 천하를 지배하는 신 왕조에 의해 강조되어 왔다. 그런 천명이 정당한(?) 이유로 교체되어 수명되는 큰 흐름을 바로 바른 큰 줄기라는 의미에서 ‘정통(正統)’라고 불렸고, 전통(傳統)은 그러한 줄기가 전해짐을 의미했다.1) 그리고 정통은 지배 당위를 위해 왕실과 지배 계급에게서 강조되고 재생산되었다.

그런 점에서는 산해관 동쪽에 위치한 삼국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고구려는 만주에서 발흥한 국가로 초기에는 한반도 지역과의 이해관계가 만주 지역보다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4세기 이후 한반도에 본격적인 영향력 행사를 하게 되자 한반도 지배를 위한 당위로서 그 이전에 규정된 천하의 공간 범위와 정통의 규정에 변화를 가해야 했다. 그 변화는 한반도 지역 국가도 원초적으로 고구려의 천하에 속했던 것으로 설정함2)과 동시에 한반도의 신화적 관념 체계를 고구려 신화 체계로의 편입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국가의 기억에 대한 조작인 셈이다.3)

고구려의 원 신화체계를 보면 최고 보편신인 천(天), 국조로서 ‘추모왕(고등신)과 그의 어머니인 유화부인(부여신)’이 가장 높게 받들어져 왔다.4) 그런데 주서(周書) 동이전을 보면 고구려의 신화체계에 기자신과 가한(可汗)신이 추가된 것이 눈에 띈다.5) 기자 조선의 사실 여부를 떠나 기자는 그를 따라온 ‘은의 유민(중원세력)’과 평안도 지역으로 이동해간 ‘고조선 원주민’의 공통된 지배자라는 상징 아이콘으로 작용한다.

한사군이 자리잡았던 평안도 지역에서 함께 살아온 한족․고조선 원주민의 공통된 이해관계 충족은 기자 숭배로 이어진 것이다. 그 가치는 평양 천도로 인해 고구려에서 한반도의 가치 비중이 높아지면서 더욱 더 올라갔을 것이며 따라서 고구려 신화체계로 편입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고구려 국내의 한반도 토착세력에 대한 헤게모니 장악이라는 이유와 대륙 진출을 위한 사정 작업으로 남쪽을 평정하고자 하는 외부적 요인이 맞물려 고구려는 한반도 지역에 대한 국가적 기억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한반도 세력인 삼한 중 마한 정통성의 고구려 천명 편입이다.


최치원의 상대사시중장(上大師詩中狀)에 보면 고구려를 마한으로 표기하고 있다. 여기에 대한 조법종의 연구6)에서는 이것을 고구려의 마한 계승 의식의 잔재로 설명하고 있다.7) 그 기원으로 조법종은 기자조선의 후예였던 기준이 위만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후 남한으로 이동하여 마한을 건국한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즉, 기자조선의 정통이 삼한으로 건너와 마한으로 연결되는 구조로 남방의 천하 정통과 북방의 천하 정통이 동시에 만나는 공간으로 마한이 설정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마한의 관념적 중요성은 고구려에게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백제는 고구려와 같은 이유는 아니었지만 건국지역이 마한 지역이었고 그 마한을 멸함으로써 한반도 남부에 대한 정통을 넘겨받았다. 고구려와 백제 사이에서는 비단 부여 계승에 대한 경쟁만이 아니라 마한 정통에 대한 경쟁도 있었던 것 같다.

조법종은 그 점까지는 언급하진 않았지만 나당 전쟁기의 신라가 고구려 부흥세력인 안승의 보덕국을 마한의 중심지였던 금마저에 입봉(立封)된 것에 주목했다. 그래서 친연 관계가 부여만큼이나 그렇게 강하진 않았으나 고구려가 마한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마한과의 연결점뿐만 아니라 신라와 적대적 세력인 백제 부흥세력에 대한 정통을 보덕국의 금마저 입봉으로 차단하려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고구려는 한반도에 대한 내부적 입장 표명을 마한 계승 의지로 나타냈고 삼한의 일원으로써 남방 지역의 천명 통합에 대한 외부적 입장을 정리해야 했을 것이다.8)

신라와 적대하기 전인 4세기 고구려에게 있어 신라는 동이(東夷)란 동남쪽 변방의 오랑캐로 지칭되는 차별의식이 어느 정도 있었다. 그러나 고구려의 민과 함께 태왕의 왕화를 입는 존재로서 ‘편입’해야할 변방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또한 백제에 대해서는 적어도 왕실 세력을 위시한 지배계급에 한해서지만 부여를 통해서 만주에 대해 동일한 연고의식이 있었다. 태왕비에서 백제를 백잔이라 부르며 경멸의 태도를 보이면서도 왜와는 다르게 속민으로 취급하는 것으로 봐서는 부여에 대한 정통을 두고 대결하는 경쟁자라는 이미지와 함께 신라 같은 속민으로 다루어 우위적 동질감을 가지려는 모습을 보인다.

...중략...

아무튼 논점을 배척 관념에서 동질 관념으로 돌아와서 생각해보면 한반도 지배에 대한 경쟁에서 삼국은 자국 내의 지배 당위와 적국의 격멸 및 통합에 대한 당위 때문에라도 삼국의 공통된 정통을 설정해둘 필요가 있었던 것 같다. 고구려․백제는 부여와 마한이란 정통성을 두고 대립하는 통합의 대상이었다. 신라는 고구려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었지만 왕실의 지배 멘탈리티가 고구려의 태왕체제와 천하관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점과 한때 고구려의 천하질서에 속했던 변방지역이었음을 주목해야한다.9) 그들에게 통합의 명분은 존재했고 삼국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천명의 존재는 삼한의 천명이었다.

그리고 지배집단의 논리와는 별개로 민의 의식변화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5~6세기에 한강유역을 두고 삼국이 쟁패하면서 국경지역의 변방에 있던 민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의식이 없었다. 이 모호함은 국가 기억의 재구성 기획과 만나 삼국의 민들은 물론 기득권층에게 한반도라는 지역적 공간 안에서 배척의 대상이 아니라 동질 집단으로 인지하게 하는 효과를 만들어냈을 것이다.10) 지배자의 논리만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면에서도 한반도 국가들의 ‘민’들은 국가의 기억 조작 외에도 동질의식을 형성할 의식상의 변화가 위의 이유로 일어난 것이 아닌가 한다.

물론 신라와 백제는 만주 지역에 대한 연고 의식은 관념상의 영역이었고 현실적으로는 희박했으나 한반도 내에서의 연고 의식과 동질의식, 통합관념은 현실적인 문제였다. 결국 그 정통으로서 삼국 성립 이전에 한반도에 존재한 국가 연합체 ‘삼한’이 강조되었고 삼국은 경쟁적으로 삼한을 자국과 연결시키려는 의지를 강하게 보였다.


이런 구조는 고구려의 영역권에 들어온 북방 제민족에게도 해당된 것 같다. 같은 신화구조에서 가한신의 고구려 신화체계 편입과 부여에 대한 속민의식, 거란과 말갈의 고구려 영내 편입도 한반도 지역에 대한 국가의 기억 재구성과 마찬가지로 관념상의 재조직이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다원적 문화와 지배구조를 가졌던 중화 세계가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거쳐 하나의 지배 공간, 관념적 공간으로 확립되는 과정과 마찬가지로 5~7세기 고구려 역시도 그들이 지배한 만주와 한반도를 하나의 지배공간, 관념적 공간으로 통일하려던 것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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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카다 히데히로, 『세계사의 탄생』, 황금가지, 2002, pp.81~82

2) 광개토태왕비에서는 백제와 신라, 부여를 고구려의 원초적인 속민으로 설정하고 있으며, 중원고구려비에서는 하늘의 질서를 지키는 수천(守天)의 동반자로서 신라왕을 설정하고 있다. 비록 신라와 백제가 이(夷)로서 규정되어 고구려와 차등 대우를 받고 있지만 뒤에서 언급하듯 언제든지 통합의 대상이자 느슨한 동질의식을 느낄 수 있는 구조로 국가 관계를 설정하고 있다.

3) 이런 당대인의 기억 재구성은 근대 민족주의자의 글쓰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4) 이 셋의 최고 신격은 모두 하나의 혈연으로 연결되는 조상신에 해당한다.

5) 가한신을 단군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가한(可汗)이라는 말이 처음 출현한 것은 유목국가였던 선비와 유연이 최초였다. 때문에 농경사회의 지배자였던 단군을 유목 세계의 용어와 관련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유목세계의 최고 지배자를 의미하는 가한을 신의 명칭으로 사용한 것을 보면 거란, 실위 등의 유목 집단을 통제해야했던 고구려의 현실적 필요에 의한 신화적 편입이 이뤄진 것으로 생각된다.

6) 조법종, 「고구려의 마한계승 인식론에 대한 검토」,『한국사연구』102

7) 이도학, 「최치원의 고구려 인식」, 『한국사상사학』 24 참조
이도학은 최치원의 언급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조법종과는 달리 표문에서 나타난 마한-고구려-발해로 이어지는 대중국 불손국가의 맥에 주목하여 고구려의 마한 계승의식이 허구일 수 있음을 밝혔다. 그러나 최치원의 상표문에서 고구려의 대중국 불손국가에 대한 얘기는 있을지언정 마한의 대중국 불손 태도에 대한 얘기는 찾아볼 수 없다. 이 점에 대해 이도학은 마한의 한사군 공격을 근거로 들고 있으나 그 횟수가 많지도 않을뿐더러 그렇게 따진다면 신라 역시 국초에 낙랑군과 충돌한 기록이 있기 때문에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또한 이도학의 논지에서는 보덕국의 입봉이 금마저에 위치한 것과 고구려의 기자신 신앙에 대한 연결점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본문에서는 조법종의 연구를 바탕에 둔다.

8) 물론 조법종의 연구가 완전히 옳다고 볼 수는 없다. 이것을 확인할 수 있는 사료가 대부분이 통일 신라 후기의 것이기 때문이다. 보덕국의 금마저 입봉도 엄밀히 말하면 고구려인들의 의지라기 보다는 신라 문무왕의 의지에 가깝다. 냉정히 말해서 고구려에 대한 마한의 연관성은 신라가 삼한을 통일하고서 그들의 삼한 정통 논리를 정당하게 만들어 줄 국가 기억의 재조직에 불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조작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무모한 과정을 거친다기보다 어느 정도 동의를 구할 수 있는 기층이 있을 때 조작도 가능한 법이다. 고구려가 평양의 기자 신앙을 자국 신화체계에 포함시킬 정도로 한반도란 공간에 관심을 가졌다면 6세기 중엽에 한반도 패권을 놓고 삼국의 전쟁을 벌일 적에 고구려가 한반도 패권의 당위를 얻기 위해 기억의 재조직으로 고조선과 마한을 연결하는 작업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신라가 삼한을 통일한 후 이 관념을 보다 발전적으로 계승, 이용했다고 판단한다.

9) 법흥왕과 진흥왕을 제외한 그 이후의 신라왕들은 대체로 왕의 존호를 ‘대왕’으로 처리하고 있고 낭혜화상비의 진지‘대왕’은 당 황제를 상위의 존재로 놓고 있기 때문에 황제에 대응하는 동방 세계 최고의 권위적 존재로서 자리매김하는 ‘태왕’과 동격이라고 하기에는 약간 무리가 따른다.(물론 직접적으로 확인된 것은 진지왕 뿐이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진흥왕의 경우 스스로를 고구려 식의 ‘태왕’호로 부르고 있으며 점령 지역 극단에 순수비를 세우고 하늘에 제사지내는 ‘천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어 고구려의 천하 인식에 강한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된다. 특히 신라와 ‘생활권’ 상으로 인연이 없던 함경도까지 진출하는 특이성향을 보이는데 원래 이 지역은 신라 문화와도 별로 관계없고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걸린 지역이 아님에도 진흥왕이 굳이 진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혹 고구려가 설정한 천하의 경계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10) 일통삼한(一統三韓) 의식에 대해 한반도를 통일한 고려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창조된 것이라고 보는 입장들도 있으나 여기에서는 뒤에 나올 고구려와 백제의 마한 계승 의지를 보건데 삼한 관념이 6세기 즈음에 등장하기 시작해 그 의식의 완성이 고려 중기 때였다고 판단한다.
이호영, 「신라의 통일의식과 '일통삼한' 의식의 성장」, 『동양학』 26, 1996.
김태식, 「신라의 국토 편성, 그 설계도로서의 음양오행설과 천문지리관 -일통삼한기 전후를 중심으로-」, 『신라사학보』2, 2004.
이강래, 「최치원의 고대 인식과 그 함의 -일통삼한을 매개로-」, 『고운학보』 2,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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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단인 | 2008/05/05 11:10 | 역사 | 트랙백(1) | 덧글(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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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한단인의 빈수레 at 2008/05/22 14:56

제목 : 고구려가 왜 마한일까? 2
고구려가 왜 마한일까?위 포스팅에 대해 Commented by 번동아제 at 2008/05/05 21:50 사실 기자의 후손인 준왕이 마한으로 간것을 매개로 구 고조선 중심지역에 잔류한 세력과 새롭게 천도한 세력도 마한과 연결고리를 가지게 됐다고 해석하는 조법종 선생의 주장은 근대 사학이 나오기 이전 이미 다산 정약용 선생도 제시했던 주장이죠. 과연 고구려시대에도 이같은 정통론적 관념에 입각한 유학적 역사계승의식을 가졌는지는 의문입니다만.........more

Commented by 초록불 at 2008/05/05 11:45
아, 재밌는 관점입니다. 잘 보았습니다.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8/05/05 12:08
예. 조법종 교수의 고구려-마한 계승 관점이 독특해서 저도 이 논문은 재밌게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一道安士 at 2008/05/05 16:35
오랜만에 와보았는데 아직도 고대사의 이해와 거리가 멉니다. 마한-고구려는 맞습니다. 당대를 산 최고 지식인이 아무렇게나 한 말이 아닙니다. 변한-백제도 맞습니다.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8/05/05 17:32
일도안사 님/ 왜 맞는지에 대한 설명은 해주셔야 읽고 납득을 하지요. 개략적인 반론 제기도 하지 않으시고는 '아직도 고대사의 이해와 거리가 멉니다' 라고 하시면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쉬이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일도안사님의 책에서 삼국의 삼한 대칭에 대해 명확한 글을 쓰시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만..

또한 저는 최치원의 발언이 근거없는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하진 않았습니다. 아무렇게나 한 말이 아니란 것은 납득하기 어렵군요.
Commented at 2008/05/05 19:1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8/05/05 19:24
비밀글/ 하핫.. 그러네요. 제가 왜 그걸 생각 못했을까요? (도주중)
Commented by 一道安士 at 2008/05/05 20:47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8/05/05 21:02
일도안사 님/ 이상한 논리군요.
[따라서 훗날 만주에서 한반도로 들어오는 고구려가 마한의 이동경로를 그대로 따라갑니다. 그러니 고구려는 마한의 계승국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

이동경로를 따라간다고 해서 왜 계승국이 된다는 건가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승휴의 제왕 운기에서 마한 왕검성이라고 한 것은 사실을 그대로 반영한 기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마한 지역으로 준왕이 남천하기 이전에 조선을 훗날의 마한으로 전이시키는 이해라고 볼 순 있어도, 평양 지역에 있었을 때부터 마한이었다고 볼 명확한 근거가 되진 않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승휴의 착각일 수도 있겠죠.

사료가 기록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 사실을 전하는 매개물이 된다고 생각치는 않습니다. 따라서 일도안사님의 논리 맥락을 제가 수용하기는 어려울 듯 싶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백제=변한인 까닭은 그 글에서 제시하지 않으셨습니다.
Commented by 번동아제 at 2008/05/05 21:50
사실 기자의 후손인 준왕이 마한으로 간것을 매개로 구 고조선 중심지역에 잔류한 세력과 새롭게 천도한 세력도 마한과 연결고리를 가지게 됐다고 해석하는 조법종 선생의 주장은 근대 사학이 나오기 이전 이미 다산 정약용 선생도 제시했던 주장이죠.

과연 고구려시대에도 이같은 정통론적 관념에 입각한 유학적 역사계승의식을 가졌는지는 의문입니다만...고구려=마한설보다는 오히려 후한서나 삼국사기에 고구려군과 행동을 같이하는 마한의 존재가 조금 더 천착할만한 주제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극단적으로 보수적으로 해석하는 학자들은 백제의 마한정복과정에서 마한 북부지방에서 이탈해서 고구려로 들어간 집단이 고구려와 같이 등장하는 마한의 실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Commented by 초록불 at 2008/05/06 00:40
번동아제님 / 에에...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좀 있습니다만, 앞서 그렇게 생각한 선학이 있었군요. 저는 백제가 북방으로 끌고가 성을 짓게 하는 등 사민했던 마한인이 전쟁 포로로 낙랑에 잡혀간 경우가 많았으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낙랑 멸망 시에 그대로 평양 일대에 주저 앉았을 것이며, 이때 고구려의 지배하에 들어가면서 고구려-마한의 연결고리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걸 주제로 습작했던 소설도 있습니다.)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8/05/06 00:40
번동아제 님/ 아.. 그게 다산 정약용도 언급한 것이었군요. 헐..

저도 천명이라고 하는 부분에서 번동아제님이 말씀하시는 중국식 천하구조의 정통론을 고구려에 적용시키는게 타당할 것인가..하는 생각을 해본 적은 있습니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해보면, 특수성을 강조하다가 보편일 수도 있는 문제를 놓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중국식 천하구조의 정통론과 완전히 일치하진 않겠지만 어느 정도 구조의 유사점은 있다고 생각합니다.(또한 고구려가 중앙집권하는 과정에서 북조 국가들의 모델을 상당부분 참작한 흔적이 있다고 생각해서, 간접적으로라도 중국식 정통론에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도 하구요.)

저기서 천하, 천명, 정통이란 용어를 쓴 것은 논문 쓸 당시에 적당한 용어가 생각나지 않아서 중국식 천하구조의 설명틀로 설명할 수 밖에 없었던 저의 무지함에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일단 중국식 천하구조와 같진 않지만, 그리스의 폴리스들의 융사공동체적 입장,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는 과정에서 각 주변 폴리스의 수호신들도 신화상에서 포섭해서 만신전을 구성하고, 그 만신전이 영토가 넓어지면서 덩달아 만신전에 속한 신의 숫자도 늘어나는 모습이 떠올라 그 모델을 정통론과 어느 정도 짜맞춰서 고구려에도 적용시켜서 생각해 봤던 것입니다. 그 만신전은 로마의 영토 확장 후, 지배집단에게 통치 당위성을 부여하는 측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피지배당한 폴리스들의 신들이 로마의 신들에게 복속당하거나, 혹은 동맹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죠.

고구려가 로마와 같은 구조라고 장담을 할 순 없지만 주서에서 등장하는 가한신, 기자신의 모습을 보고 저 장면과 오버랩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유학적 역사계승 의식으로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제가 머리속에서 생각하는 바는 구조의 유사성은 있을 수 있지만 전적으로 유학적 역사계승의식의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은 아니란 점을 밝힙니다.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8/05/06 00:45
초록불 님/ 제가 관련 사료를 잘 몰라 그러는 것이긴 합니다만.. 삼한을 삼국에 대칭시키는 사료들 중에서 백제=마한으로 대칭시키는 사료가 그렇게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초록불님의 생각대로라면 비중은 고구려보다는 백제가 더 많을텐데.. 왜 백제=마한으로 적는 사료가 적은 걸까요? 전 그게 항상 의문이었습니다.
Commented by ㅋㅏ오스 at 2008/05/06 15:38
연결글을 따라 왔습니다....정식으로 역사를 전공하신 분들께 아마추어가 말씀드리기가 죄송하다고 여기고는 있습니다만...

최치원의 ' 마한=고구려, 변한=백제, 진한=신라'라는 언급이 현재까지 살아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삼한의 불확실성'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저 최치원의 언급도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어쨋든 후대학자들에게는 '완벽하지 못한 삼한의 위치비정'의 혼란으로부터 약간의 숨통을 틔여주고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현재까지 그 언급이 전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마 최치원의 저서에 그런 역활이 없었다면 사라진 여러 고사서들과 같은 운명을 당했을 것으로 봅니다.

좀 이상하게 들리실지 모르지만....(최치원의 언급도 사실과는 약간 다르긴하지만) 저 최치원의 언급이 삼국사기 이후의 학자(지배층)들에게 '삼한=삼국'이라는 등식을 지지할 수 있는 근거로 활용될 수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삼국사기만으로서는 한반도 중남부 이남(대방이남)에서 도저히 고구려를 수용할 수가 없었는데 저 최치원의 언급은 이 문제를 어느정도 해결해 준다는 것입니다...한마디로 최치원의 언급이 '핀치히터'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비록 최치원의 언급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그리고 또 저 최치원의 언급은 삼한의 위치가 어디이냐?의 문제를 푸는 열쇄는 되지 못하지만, 기존의 '삼한=삼국'에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 것과 또한 한반도 중심의 삼한론에 심각한 헛점이 있다는 것을 읽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기록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는 '고구려=마한의 사실여부'에 더 관심이 있으실지 모르지만...본인에게는 최치원의 언급이 현재까지 전해지게된 이유가 더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참고로 추측해서 언급한다면...고구려는 마한이 맞습니다. 다만 이 마한은 '한반도 마한(?)'과는 다르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8/05/06 19:09
...포스팅의 주요 주제는 삼한을 삼국에 대칭시키는 현상에 대한 소견이긴 했으나 논문 중간 중간에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정통성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따라서 최치원의 언급이 현재까지 전해지게 된 이유와도 연결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굳이 따로 언급하실 필요는 없는 거 같군요.
Commented by 초록불 at 2008/05/06 21:21
뭐, 제 이야기는 소설적 상상력에 의지한 것이니까요. 굳이 이야기하자면, 백제는 마한을 정복한 것이고, 마한을 완전 멸절시킨 것 같습니다. 전남 지방의 마한 정복 이야기가 백제본기에 나오지 않는 것을 보아도...

반면 평양 일대로 잡혀간 마한인의 경우는, 조선의 후예라는 자각이 있었다면 그 땅이 옛날 자기들의 고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고, 그런 측면에서 더 애틋했을 겁니다. 거기에 더해 고구려는 이미 정치 결사체가 아닌 마한인을 굳이 탄압할 필요도 없어서 더 많은 전승이 남았을 것이라는...

아무튼 소설가나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8/05/06 23:34
초록불 님/ 아.. 그런 의미였군요. 음.. 그렇다면.. 그렇다면..

..에.. 모르겠어요 ㅠㅠ
Commented by ㅋㅏ오스 at 2008/05/07 14:30
한단인님의 '논문'에 대한 비평이아니고요...'최치원의 언급이 현재까지 전해지게된 이유'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너무 쉽게 취급하시는 것 같아서 하는 소리입니다...

이 문제는 겉보기보다는 아주 중요한 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즉, '실제의 마한의 위치'가 '우리가 알고 있는 위치'와 전혀 다를 것을 시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삼한=삼국'임을 조금도 빈틈없이 인식하고 또 그 틀에서 모든 것을 주장하였던 고려, 조선조의 학자들이 이 최치원의 '이단적인 기록'을 현재까지 그대로 두고 있었고 또 간혹 일부에서는 그 내용을 인용함을 용인하였던 것을 너무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최치원의 '이단적인 기록'이 바로 고려와 조선조의 학자(지배층)들이 '고구려의 삼한 수용론'을 입론하는 논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자신들의 주요 역사논거를 부정하기 까지하는 최치원의 무책임한 말 한마디에 고려와 조선조의 학자들이 모두 목을 메는 형국이 되었다고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삼국사기의 최대 맹점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삼국사기는 신라의 삼한일통을 정통으로 삼아서 역사서를 정리하고 있으면서도 그 삼한에 들어오지 못하는 고구려를 삼국의 일원으로 취급해야하는 근본적인 모순(한계점)을 처음부터 내재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그래서 실제로 고구려가 마한인지도 중요하겠지만, 최치원의 이단적 언급이 현재까지 전해질 수 있었던 배경에 더 관심을 두고 추적하여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이것은 아주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정작 '마한'이라는 것이 그냥 '마한'이 아니라는 심증이 굳어가고 있습니다... 좀 황당하시겟지만,.... '소위 '마한'이란 애당초 없엇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지요... 아마 잇었다면 '마'와 '한'이 따로 잇었는데... 이 두지명이 어느순간 합쳐지게 된 것일 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그래서 '고구려=마한'이라고 한 최치원의 이단적 언급을 '마한=한반도중남부'로 자리매김한 김부식보다 반표정도 더 주어야 한다고 말햇던 것입니다... 최치원은 자세한 내막을 알고 잇었던 것이지만, 김부식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어쩌면 김부식도 어슴프레하게 알았을 지도 모르지요...

어쨋든, 이곳은 그리 넓게 공개되는 게시판이 아니라서... 좀 장황하게 설명을 했습니다... 참조로 하시길...
Commented by ㅋㅏ오스 at 2008/05/07 14:40
일도안사님께서 여기서도 활약(?)을 하시나 봅니다...일도안사님께서도 무엇인가 이상함을 감지하신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만 일본서기를 너무 믿어버리신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만....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8/05/07 20:14
...논리적 모순은 삼국사기가 취하고 있는게 아니라 카오스님이 하고 있군요. 지금 카오스님은 신라의 삼한 일통의 '삼한'을 원삼국 시기의 삼한으로 치환하고 있습니다. 삼한에 있지 않던 고구려를 삼국의 일원으로 취급하는 모순이 있다고 하셨는데.. 무슨 얘기를 하고 계신건지요?

고구려가 삼한에 있지 않았던 것과 삼국의 일원으로 취급하는 것은 모순 관계가 아닙니다. 지금 그 논리 모순은 원삼국 시기 삼한을 삼국과 등치시키는 카오스님의 논리 오류에 불과할 뿐입니다. 논리의 선후관계도 바뀌었지요. 삼국의 일원이었던 고구려가 전제가 되어야 하는데 삼한과 일치하지 않는 고구려가 전제가 되다니.. 이상한 착각을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최치원의 언급이 왜 현재까지 전해질수 있었던 배경이 뭔가? 라고 하셨나요? 고려 조에서도 삼국=삼한으로 각기 등치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이 잡히지 않은 상태였고, 따라서 선학의 글들을 참조 해야 했을 것입니다.

더욱이 '상대사시중장(上大師詩中狀)'은 삼국의 삼한 연원을 따지는 목적에서 서술된 것이 아니라 최치원이 당에 사절로 갔을 적에 그가 당의 황제에게 썼던 외교 문서입니다. 김부식이 삼한 연원을 알기 위해 그걸 실은 것이 아닌데 무슨 의도를 따진단 말입니까? 황당무계한 문제제기입니다. 음모론과 다른게 뭡니까?

사료의 맥락이나 주장하는 글의 전체적인 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고 글의 부분에만 주목해서 삼천포로 빠지는 것은 그만두시기 바랍니다. 문제제기 하는 당사자나, 그와 상대하는 상대자 모두에게 원 문제제기의 답을 도출하지 못하게 하고, 논의 자체를 헷갈리게 만들어 미로 속에서 헤매이게 하는 아주 나쁜 습관입니다. 설령 그런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결과론적으로 토론을 무산시킨다는 점에서 별로 좋진 않지요. 그런 점을 고치지 않는다면 전 카오스님과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아.. 그래서 혹 닉넴이 카오스신가 보군요?)


ps 1. 최치원의 언급이 마한 위치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기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걸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카더라 통신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문제제기가 됩니까?

ps 2. 마, 한이 합쳐져서 마한이 되면 고구려는 고, 구, 려란 세 지명이 합쳐진거고 가야는 가, 야란 지명이 합쳐진 겁니까? 황당하군요. 가차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으십니다.
Commented by 카오스 at 2008/05/07 23:54
말씀의 취지는 알겠습니다만,...비꼬는 듯한 말씀은 좀 지나치신 것 같군요...더 이상 할 말이 없는 것 같군요.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8/05/08 00:39
원래 승질머리가 드러워서 그런 것이니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일단 비꼰 것은 순간을 이기지 못한 저의 불민 탓이니 그 점은 사과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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