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5월 09일
최근 역사문 카페 듣보잡의 난독증 사례
http://cafe.daum.net/alhc/51q2/5166
제가 참.. 운영자로서 카페 치부를 들추는 것 같아 쓰면서도 민망하기 그지 없습니다만..
듣보잡인 제가 봐도 막장이라고 할만한 난독증 사례를 모 카페 회원이 보이고 있어 비통함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馬자水西北入鹽難水 西南至西安平入海 過郡二 行二千一百里의 해석은 한문 일자 무식인 저조차도
[마자수의 서북에서 염난수가 들어와 서남으로 서안평을 지나 바다로 들어간다. 2개 군을 지나니 2천 100리이다]
이렇게 해석을 하지요. 그런데 그런데 이 햏자 께옵서는
`마자수가 서북쪽에서 흘러와 염난수로 들어가고 (염난수가?) 서남방향으로 흘러 서안평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라고 해석을 하네요? 그리고 자기가 해석을 잘못해서 문장 주어를 마자수에서 염난수로 바꾸고는 염난수의 길이가 2천 100리이니 염난수를 압록강 지류로 비정했을 때 압록강 지류 중에 2천 100리가 넘는 강이 있느냐고 하네요?
결국 해석을 잘못하여 마자수가 서남으로 흐른다는 것을 염난수가 서남으로 흐르는 것으로 오독했지요. 그리고는 문장주어를 마자수에서 염난수로 교묘히 바꾸어서는 강 길이를 설명하는 2천 100리의 수식을 마자수가 아닌 염난수인 것처럼 말합니다. 하지만 주어는 분명히 마자수가 맞고 마자수가 서남 방향으로 흐르며 그 길이가 2천 100이란 것인데...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압록강 길이를 찾아보니 803킬로미터더군요. 대략 2천리를 넘는 수치입니다. 마자수가 압록수라면 그 수치가 일치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 햏자께옵서는 처음 문장부터 잘못 해석하시고는 압록강 지류가 2천 100리가 되는 곳이 없으니 마자수는 압록강이 될 수 없다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슴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문장 해석을 잘못해서 벌어진 오류인데 왜 그 책임 전가를 기존 문헌 해석의 잘못으로 돌리는지...?
뭥미?
그리고서는 수경주 운운하면서 요서 지역의 하천 기록을 찾아 대조하는 삽질을 하는데 열폭크리했지요.
....돌아버리겠어요. 저걸 어떻게 쫓아내죠? 몇번의 망신을 줬는데도.. 소용이 없으니..
ps. 한문 해석 할 줄 모르면 모른다고 미리 말을 하지.. 에혀.. 난 그래도 모르면 모르겠다고 물어보기라도 했지..
압록강은 우리 모두 어디에 있는지 안다.
같은 강이라 여겨지는 압록수라는 물길 기록이 있어 옮겨 본다.
고.당 전쟁이 끝나고 몇십년이 지난 후 당나라 사람인 두우가 저술한 통전에 실려있다.
- 마자수 일명 압록수는 동북쪽의 말갈국 백산에서 발원한다. 물 빛깔이 오리 머리색과 비슷하여 그런
이름을 얻었다. 요동에서 500 리 떨어져 있고 국내성 옆을 흐른다. 또 서쪽에서 한 물길과 만나는데
바로 염난수다. 두 물길이 합쳐 흐르다가 서남방향으로 흘러 안평성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고구려에서 가장 큰 강으로 큰 물결과 맑은 강은 나루터를 거쳐 건너는데 모두 큰 배들이 정박해
있다. 평양성에서 서북 방향으로 450 리, 요수 동남 방향으로 480 리 거리에 있다. 한나라 낙랑, 현토
군의 땅이며 후한에서부터 위까지 기간에는 공손씨가 차지하였고 서진 영가 이후에 다시 고구려가
차지하였다. 이곳의 불내, 둔유, 대방, 안시, 평곽, 안평, 거취, 문성은 모두 한 2군의 현들이다.
즉 조선, 예맥, 옥저의 땅이다.
위의 마자수 일명 압록수는 지금 북한과 중국의 경계선 역할을 하고 있는 압록강을 말한 것일까?
또 염난수는 지금의 어느 강을 말하는 것일까?
지나 정사 한문장 만 더 인용한다. 한서 지리지 현토군 서개마현의 본주를 보자.
- 馬자水西北入鹽難水 西南至西安平入海 過郡二 行二千一百里
`마자수가 서북쪽에서 흘러와 염난수로 들어가고 (염난수가?) 서남방향으로 흘러 서안평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이다. 통전과 한서가 말하는 물길을 간단히 그림으로 그려 보자.
한서 번역이 제대로 된 것이라면 통전과는 서로 바뀐 것이 된다. 마자수를 통전은 `나` 물길이라고 하는데 한서는 `가` 물길이라고 하는 것 같다. 그래서 한서를 다시 억지 번역하여 ` 마자수가 서북쪽에서 흘러 오는 염난수와 합쳐져 계속 서남 방향으로 흘러 안평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 간다.`로 하면 어떨까?
원문을 ` 馬자水西南流 右會鹽難水 又西南流至安平入海`이면 좋을 것 같은데 그럴 수는 없다.
또 뒤에 오는 구절인 ` 2개군을 지나고 2100 리를 흐른다.`의 주인공이 마자수인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한서가 말한 2 개의 군은 현토군과 요동군이다. 서안평이 요동군의 속현이기 때문이다. 지리지에 현토.요동군의 인근 군인 어양군을 흐르는 고수는 750 리, 우북평군 경수는 650 리, 요동군 대요수는 1250 리, 낙랑군 열수는 820 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해당 군에서 제일 길고 큰 물길이기 때문에 기록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어양. 우북평군은 지금의 북경 동쪽 계현.평곡.통로 부근이다. 후한말 공손찬. 조조. 공손도 등의 전장터이기도 하다.
북위 시대 사람인 력도원은 전국시대에 저술된 수경에 해설을 붙혀 `수경주`를 저술하였다. 수경은 장강
이북에서 장성 이남의 江河 만을 설명하였다. 수경주 역시 마찬가지다. 수경주는 물길의 리수는 기록하지 않았다. 위 지역에서 흐르는 고하. 포구수. 난수. 대요수. 소요수. 패수의 6 개 물길을 설명하였는, 한
서의 마자수와 염난수에 대한 설명이 없다. 두 물길 가운데 하나는 2100 리 씩이나 하는 큰 물길인데 없
다. 6 개의 물길 중에서 난수가 가장 길고 큰 물길인데, 경유하는 군은 어양, 우북평, 요서군이다. 이들 군은 요동군의 서쪽에 있었다.
수경주의 난수가 한서의 염난수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찬찬히 검토해 보자.
한서 지리지 요서군 비여현조에는 난수가 기록되어 있다. 원문을 보면 `玄水東入濡水 濡水南入海陽 우有盧水南入玄 莽曰肥而`라고 하였다. 번역하면 `현수가 동쪽으로 난수에 들어가며 난수는 남쪽으로 흘러 해양현으로 흐른다. 또 로수가 남쪽으로 흘러 현수에 들어간다. 왕망이 비이현이라고 개칭하였다.`
이다. 수경주는 현수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들어간다고 옛 글 즉 수경이 틀렸음을 지적하였다.
濡水는 난수로 읽어야 한다. 젖을 유가 아닌 머리감을 난이다.
수경주에서 6 개의 물길 설명문 중 가장 길고 지류가 많아 복잡하며 큰 물길인 난수를 한서는 리수도 기록하지 않고 일개 현을 흐르는 물길로 처리하였다. 한서에서 비여현을 흐른다는 난수를 수경주가 설명한 것을 요약하자면 ` 비여성 서쪽 10 리에 난수가 있고 남쪽으로 흘러 고죽성 서쪽을 지나고 동쪽에서
흘러오는 현수와 합쳐지고 ... 소저수가 남으로 흘러 대저수에 들어가 합쳐져 로수라 한다. ... 로수가 서쪽으로 흘러 현수에 들어간다.`라고 하였다. 즉 로. 현수 모두 난수의 지류이다.
수경주의 난수는 북경에서도 한참 북쪽인 沽原 부근에서 발원하여 `?`모양으로 흘러 어양.우북평.요서군을 경유한다. 큰 방향은 거의 南流에 흡사한 東南流다. 경유하는 중요한 지명은 중하류 이하에서 노룡고성. 영지고성. 고죽성 등을 물길 좌우에 두고 흐르며 하류의 갈석산을 경유하여 바다로 들어가는 물길이다. 지금은 난하로 불리우고 북경과 산해관의 가운데 쯤을 흐른다.
또 수경주에서 대요수를 설명하였는데 요동군 치소인 양평현을 지나고, 그 지류인 백랑수의 발원지가
우북평군인 점과 또 한 지류인 요서군 임유현의 유수인 것을 감안하면 난수와 거의 흡사하여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확실한 것은 지금의 요하와는 다른 물길이며, 그 떨어진 거리가 대략 1500 리 이상은 되지 않을까 한다.
한서 지리지 현토군 서개마현조의 길고 큰 물길을 마자수가 아닌 염난수로 보아야 하는 이유는, 수경주의 난수 설명문에서 보듯이 첫째 경유 지역이 동일하고, 둘째 두 사서 모두 가장 길며 흐르는 방향이 같고, 세째 물길 이름의 어근이 같다고 보기 때문이다. 수경주의 濡水는 상류에서 難水로 불리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서의 `鹽難水`는 물길 경유지 일부 지역에서 소금과 관련된 어떤 일로 인하여 덧붙일 수도 있는 문제다.
한서의 마자수와 통전의 마자수 역시 동일한 물길이다. 통전의 마자수가 과연 압록수인지는 밝혀야 할 과제다. 한서 지리지 낙랑군 탄열현조의 본문 주에는 `열수`가 기록되어 있다. 이 열수가 낙랑군에서 가장 길고 큰 물길인 것으로 받아들일 만하게 리수가 표시되어 있는데 820 리다.
한서의 서개마현을 흐르는 주인공은 염난수이지 마자수가 아니었는데, 염난수와 마자수가 합쳐지는 곳도 서개마현이라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면 한서에서 마자수는 어디로 간 것인가?
한서의 마자수는 낙랑군의 열수라고 본다. 요동군의 동쪽은 낙랑군이었다. 위만은 번한현의 패수를 건너 진고공지, 즉 한서 지리지 낙랑군 본문 주인 有雲障에서 부역하다가 동쪽으로 세력을 확대하였기 때문이다.
통전은 마자수를 일명 압록수라고 하였고, 한서는 마자수를 열수라고 하였다고 본다.
난수와 염난수의 경우와 같이 물길의 일부 지역에 따라 이름이 달랐을 수도 있고, 얻는 정보가 모두 다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하고 확실한 것은 한서나 통전이 동일한 지역에 있는 물길로 보기 때문이다. 낙랑군이다.
이 압록수는 발해 북안 능원 부근에서 발원하여 서남 방향으로 흘러 노룡. 천안. 난현의 중간에서 거의 남류에 가까운 동남 방향으로 흐르는 난하와 만나는 것이다.
이 압록수가 지금은 어떤 이름으로 불리우는지 모른다. 지도에 파란 실선으로 표시만 되어 있고 강명이 없다. 열구가 있는 열수는 후대에는 그 이름이 지워졌고, 마자수 역시 잊혀졌고, 압록수 만 살아 남았지만 압록강이란 비슷한 이름 때문에 역시 죽었다.
지금의 압록강 하류에서 2100 리 길이의 염난수를 찾을 수 있는가?
제가 참.. 운영자로서 카페 치부를 들추는 것 같아 쓰면서도 민망하기 그지 없습니다만..
듣보잡인 제가 봐도 막장이라고 할만한 난독증 사례를 모 카페 회원이 보이고 있어 비통함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馬자水西北入鹽難水 西南至西安平入海 過郡二 行二千一百里의 해석은 한문 일자 무식인 저조차도
[마자수의 서북에서 염난수가 들어와 서남으로 서안평을 지나 바다로 들어간다. 2개 군을 지나니 2천 100리이다]
이렇게 해석을 하지요. 그런데 그런데 이 햏자 께옵서는
`마자수가 서북쪽에서 흘러와 염난수로 들어가고 (염난수가?) 서남방향으로 흘러 서안평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라고 해석을 하네요? 그리고 자기가 해석을 잘못해서 문장 주어를 마자수에서 염난수로 바꾸고는 염난수의 길이가 2천 100리이니 염난수를 압록강 지류로 비정했을 때 압록강 지류 중에 2천 100리가 넘는 강이 있느냐고 하네요?
결국 해석을 잘못하여 마자수가 서남으로 흐른다는 것을 염난수가 서남으로 흐르는 것으로 오독했지요. 그리고는 문장주어를 마자수에서 염난수로 교묘히 바꾸어서는 강 길이를 설명하는 2천 100리의 수식을 마자수가 아닌 염난수인 것처럼 말합니다. 하지만 주어는 분명히 마자수가 맞고 마자수가 서남 방향으로 흐르며 그 길이가 2천 100이란 것인데...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압록강 길이를 찾아보니 803킬로미터더군요. 대략 2천리를 넘는 수치입니다. 마자수가 압록수라면 그 수치가 일치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 햏자께옵서는 처음 문장부터 잘못 해석하시고는 압록강 지류가 2천 100리가 되는 곳이 없으니 마자수는 압록강이 될 수 없다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슴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문장 해석을 잘못해서 벌어진 오류인데 왜 그 책임 전가를 기존 문헌 해석의 잘못으로 돌리는지...?

뭥미?
그리고서는 수경주 운운하면서 요서 지역의 하천 기록을 찾아 대조하는 삽질을 하는데 열폭크리했지요.
....돌아버리겠어요. 저걸 어떻게 쫓아내죠? 몇번의 망신을 줬는데도.. 소용이 없으니..
ps. 한문 해석 할 줄 모르면 모른다고 미리 말을 하지.. 에혀.. 난 그래도 모르면 모르겠다고 물어보기라도 했지..
압록강은 우리 모두 어디에 있는지 안다.
같은 강이라 여겨지는 압록수라는 물길 기록이 있어 옮겨 본다.
고.당 전쟁이 끝나고 몇십년이 지난 후 당나라 사람인 두우가 저술한 통전에 실려있다.
- 마자수 일명 압록수는 동북쪽의 말갈국 백산에서 발원한다. 물 빛깔이 오리 머리색과 비슷하여 그런
이름을 얻었다. 요동에서 500 리 떨어져 있고 국내성 옆을 흐른다. 또 서쪽에서 한 물길과 만나는데
바로 염난수다. 두 물길이 합쳐 흐르다가 서남방향으로 흘러 안평성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고구려에서 가장 큰 강으로 큰 물결과 맑은 강은 나루터를 거쳐 건너는데 모두 큰 배들이 정박해
있다. 평양성에서 서북 방향으로 450 리, 요수 동남 방향으로 480 리 거리에 있다. 한나라 낙랑, 현토
군의 땅이며 후한에서부터 위까지 기간에는 공손씨가 차지하였고 서진 영가 이후에 다시 고구려가
차지하였다. 이곳의 불내, 둔유, 대방, 안시, 평곽, 안평, 거취, 문성은 모두 한 2군의 현들이다.
즉 조선, 예맥, 옥저의 땅이다.
위의 마자수 일명 압록수는 지금 북한과 중국의 경계선 역할을 하고 있는 압록강을 말한 것일까?
또 염난수는 지금의 어느 강을 말하는 것일까?
지나 정사 한문장 만 더 인용한다. 한서 지리지 현토군 서개마현의 본주를 보자.
- 馬자水西北入鹽難水 西南至西安平入海 過郡二 行二千一百里
`마자수가 서북쪽에서 흘러와 염난수로 들어가고 (염난수가?) 서남방향으로 흘러 서안평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이다. 통전과 한서가 말하는 물길을 간단히 그림으로 그려 보자.
(北) 1 -
가 1 나 -
1 서안평 -
(서안평) 1 -
- 안평
--- --- 바 다 -----
한서 번역이 제대로 된 것이라면 통전과는 서로 바뀐 것이 된다. 마자수를 통전은 `나` 물길이라고 하는데 한서는 `가` 물길이라고 하는 것 같다. 그래서 한서를 다시 억지 번역하여 ` 마자수가 서북쪽에서 흘러 오는 염난수와 합쳐져 계속 서남 방향으로 흘러 안평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 간다.`로 하면 어떨까?
원문을 ` 馬자水西南流 右會鹽難水 又西南流至安平入海`이면 좋을 것 같은데 그럴 수는 없다.
또 뒤에 오는 구절인 ` 2개군을 지나고 2100 리를 흐른다.`의 주인공이 마자수인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한서가 말한 2 개의 군은 현토군과 요동군이다. 서안평이 요동군의 속현이기 때문이다. 지리지에 현토.요동군의 인근 군인 어양군을 흐르는 고수는 750 리, 우북평군 경수는 650 리, 요동군 대요수는 1250 리, 낙랑군 열수는 820 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해당 군에서 제일 길고 큰 물길이기 때문에 기록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어양. 우북평군은 지금의 북경 동쪽 계현.평곡.통로 부근이다. 후한말 공손찬. 조조. 공손도 등의 전장터이기도 하다.
북위 시대 사람인 력도원은 전국시대에 저술된 수경에 해설을 붙혀 `수경주`를 저술하였다. 수경은 장강
이북에서 장성 이남의 江河 만을 설명하였다. 수경주 역시 마찬가지다. 수경주는 물길의 리수는 기록하지 않았다. 위 지역에서 흐르는 고하. 포구수. 난수. 대요수. 소요수. 패수의 6 개 물길을 설명하였는, 한
서의 마자수와 염난수에 대한 설명이 없다. 두 물길 가운데 하나는 2100 리 씩이나 하는 큰 물길인데 없
다. 6 개의 물길 중에서 난수가 가장 길고 큰 물길인데, 경유하는 군은 어양, 우북평, 요서군이다. 이들 군은 요동군의 서쪽에 있었다.
수경주의 난수가 한서의 염난수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찬찬히 검토해 보자.
한서 지리지 요서군 비여현조에는 난수가 기록되어 있다. 원문을 보면 `玄水東入濡水 濡水南入海陽 우有盧水南入玄 莽曰肥而`라고 하였다. 번역하면 `현수가 동쪽으로 난수에 들어가며 난수는 남쪽으로 흘러 해양현으로 흐른다. 또 로수가 남쪽으로 흘러 현수에 들어간다. 왕망이 비이현이라고 개칭하였다.`
이다. 수경주는 현수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들어간다고 옛 글 즉 수경이 틀렸음을 지적하였다.
濡水는 난수로 읽어야 한다. 젖을 유가 아닌 머리감을 난이다.
수경주에서 6 개의 물길 설명문 중 가장 길고 지류가 많아 복잡하며 큰 물길인 난수를 한서는 리수도 기록하지 않고 일개 현을 흐르는 물길로 처리하였다. 한서에서 비여현을 흐른다는 난수를 수경주가 설명한 것을 요약하자면 ` 비여성 서쪽 10 리에 난수가 있고 남쪽으로 흘러 고죽성 서쪽을 지나고 동쪽에서
흘러오는 현수와 합쳐지고 ... 소저수가 남으로 흘러 대저수에 들어가 합쳐져 로수라 한다. ... 로수가 서쪽으로 흘러 현수에 들어간다.`라고 하였다. 즉 로. 현수 모두 난수의 지류이다.
수경주의 난수는 북경에서도 한참 북쪽인 沽原 부근에서 발원하여 `?`모양으로 흘러 어양.우북평.요서군을 경유한다. 큰 방향은 거의 南流에 흡사한 東南流다. 경유하는 중요한 지명은 중하류 이하에서 노룡고성. 영지고성. 고죽성 등을 물길 좌우에 두고 흐르며 하류의 갈석산을 경유하여 바다로 들어가는 물길이다. 지금은 난하로 불리우고 북경과 산해관의 가운데 쯤을 흐른다.
또 수경주에서 대요수를 설명하였는데 요동군 치소인 양평현을 지나고, 그 지류인 백랑수의 발원지가
우북평군인 점과 또 한 지류인 요서군 임유현의 유수인 것을 감안하면 난수와 거의 흡사하여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확실한 것은 지금의 요하와는 다른 물길이며, 그 떨어진 거리가 대략 1500 리 이상은 되지 않을까 한다.
한서 지리지 현토군 서개마현조의 길고 큰 물길을 마자수가 아닌 염난수로 보아야 하는 이유는, 수경주의 난수 설명문에서 보듯이 첫째 경유 지역이 동일하고, 둘째 두 사서 모두 가장 길며 흐르는 방향이 같고, 세째 물길 이름의 어근이 같다고 보기 때문이다. 수경주의 濡水는 상류에서 難水로 불리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서의 `鹽難水`는 물길 경유지 일부 지역에서 소금과 관련된 어떤 일로 인하여 덧붙일 수도 있는 문제다.
한서의 마자수와 통전의 마자수 역시 동일한 물길이다. 통전의 마자수가 과연 압록수인지는 밝혀야 할 과제다. 한서 지리지 낙랑군 탄열현조의 본문 주에는 `열수`가 기록되어 있다. 이 열수가 낙랑군에서 가장 길고 큰 물길인 것으로 받아들일 만하게 리수가 표시되어 있는데 820 리다.
한서의 서개마현을 흐르는 주인공은 염난수이지 마자수가 아니었는데, 염난수와 마자수가 합쳐지는 곳도 서개마현이라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면 한서에서 마자수는 어디로 간 것인가?
한서의 마자수는 낙랑군의 열수라고 본다. 요동군의 동쪽은 낙랑군이었다. 위만은 번한현의 패수를 건너 진고공지, 즉 한서 지리지 낙랑군 본문 주인 有雲障에서 부역하다가 동쪽으로 세력을 확대하였기 때문이다.
통전은 마자수를 일명 압록수라고 하였고, 한서는 마자수를 열수라고 하였다고 본다.
난수와 염난수의 경우와 같이 물길의 일부 지역에 따라 이름이 달랐을 수도 있고, 얻는 정보가 모두 다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하고 확실한 것은 한서나 통전이 동일한 지역에 있는 물길로 보기 때문이다. 낙랑군이다.
이 압록수는 발해 북안 능원 부근에서 발원하여 서남 방향으로 흘러 노룡. 천안. 난현의 중간에서 거의 남류에 가까운 동남 방향으로 흐르는 난하와 만나는 것이다.
이 압록수가 지금은 어떤 이름으로 불리우는지 모른다. 지도에 파란 실선으로 표시만 되어 있고 강명이 없다. 열구가 있는 열수는 후대에는 그 이름이 지워졌고, 마자수 역시 잊혀졌고, 압록수 만 살아 남았지만 압록강이란 비슷한 이름 때문에 역시 죽었다.
지금의 압록강 하류에서 2100 리 길이의 염난수를 찾을 수 있는가?
# by | 2008/05/09 23:44 | 일상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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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아.. 삽질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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