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5월 22일
고구려가 왜 마한일까? 2
위 포스팅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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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번동아제님께서 위 포스팅에 대한 댓글을 남겨주셨었습니다. 그래서 아방강역고를 살펴봤지요. 정약용은 삼국지 동이전에 인용된 위략의 기사를 통해 그런 추론을 했었습니다. 위략에서는
라고 했습니다. 이것에 대해 정약용은 아방강역고에서
약용이 살펴보건대, 기준이 남쪽으로 달아난 직후 위만이 평양을 호시탐탐 바라보고 있는데 기준의 종족들이 어찌 그 고국에 머물러 있을 수 있었겠는가. 우거가 이미 멸망하고 나서 낙랑이 군을 설치한 초기에 만간에 도망해 숨어있던 기씨들이 비로소 감히 머리를 내밀어 스스로 한 부(部)를 만들고, 기준이 일찍이 한왕(韓王)이었기 때문에 멋대로 한씨(韓)라는 성을 쓰고 마침내 기씨의 제사를 모셨던 것이다.
한편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태조왕 69년조에서 태조왕이 마한, 예맥의 기병 1만으로 현도를 공격한 것에 대해
약용이 살펴보건대, 마한이 멸망한 지가 지금 114년이 되었다.(삼국사기 기준) 멸망했다가 다시 일어날 때가 아니요, 또 마한의 도읍이 본디 웅진의 남쪽에 있었으니, 어찌 백제의 경계를 넘어서 현도의 요동싸움에 좇아 전쟁할 수 있었겠는가. 기씨의 서쪽 땅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마한이라 일컬었다는 것은 <<위략>>에서 일컬은 것이니, 나라 안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이 한씨라고 사칭한 것이다.
번동아제님께서 언급하신 부분은 바로 이 두 부분을 두고 하신 말씀 같았습니다. 물론 조법종 교수님은 다산과 다른 방법으로 같은 결론을 내었던 것이었죠. 그런데 읽다보니 한가지 의문이 들더군요. 다산의 저 언급을 번동아제님의 지적을 통해 듣고보니 고구려의 마한 계승의식이라고 한 조법종 교수의 견해나, 다산의 언급이 뭔가 어색했던 것입니다.
즉, 위만에 의해 쫒겨간 준왕이 마한 땅에서 재건국했다고 해서 평양 쪽의 조선 유민들, 더 정확히 말해 준왕의 후예들이 스스로를 마한이라고 부를 정도로 마한에 대한 명칭에 대해 친근감을 가질 수 있느냐 하는 점이었죠. 문화적으로 삼한은 조선에 비해서 떨어지는 편이었고 위만 시대를 거치면서 중국의 선진문물도 받아들인 조선인의 입장에서 '마한' 이란 이름을 계승한다? 조금 어색합니다. 그 얘기인 즉, 페루의 후지모리 대통령이 일본인이었다는 이유로 100년 뒤의 일본인들이 페루를 일본의 새 국호로 사용해봄직하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지요.
거꾸로 마한으로 이주했던 준왕이 나라 이름을 조선으로 바꾸면 모를까.. 조선인의 입장에서 마한이라는 네임벨류가 그다지 힘을 갖지 못할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앞의 글에서 제가 고구려의 필요에 의해 기존의 고구려 천명 구조(조선 천명이 포함된)와 삼한 천명의 융합을 위해 마한 계승을 강조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준왕이 마한을 정복해 조선의 천명이 옮겨진 것을 빌미로 했다는 것두요. 그런데 둘 간의 연결고리가 별로 강하진 못한 것 같습니다. 왜냐면 마한과 조선의 연결고리라고 해봐야 준왕이 마한땅에서 왕 한번 해먹은게 다니까요. 또한 조선의 정통이 준왕에 의해서 마한으로 옮겨졌다고 하지만 그 얘기가 성립하려면 남천한 후 준왕의 후예(평양에 잔류한 후예말고)들이 계속 살아남아 마한지역에서 계속 왕을 차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조선의 천명과 삼한의 천명이 마한의 준왕을 통해서 연결되겠지요. 네임벨류를 무시한다고 치면 그런 점에서 평양에 잔류한 준왕의 후예들이 '한'씨 성을 운운할 수 있은 것일거고.. 그러나 실제로는 준왕 이후 기준의 후예는 삼한 지역에서 맥이 끊어졌습니다. 따라서 조선와 마한의 연결성은 거기서 없어진다고 할 수 있고 삼한 천명을 고구려에 연결시키는 것도 불가능해 집니다.
물론 고구려가 한강의 패권을 놓고 벌이는 전쟁에서 당위성을 얻기 위해 어거지로 그런 설정을 할 수 있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얼마만큼 실효가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위략에서는 기자의 후손들이 스스로를 '한씨' 라고 자칭했다는 점입니다. 위에서 제가 추론한 것과 달리 실제는 조금 다른 모양입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을 좀 달리해보기로 했습니다. 아무래도 준왕의 후예들이 스스로 '한'을 자칭했다는 점에는 모종의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
ps 1. 글이 조금 길어지는 관계로 인해 나머지는 내일 중에 올려볼까 생각 중입니다...(도주중)
ps 2. 글을 처음 올려놓고 찬찬히 읽다보니 앞뒤 연결이 안되는게 많아서 4~5번을 수정을 했네요. ...이 짓을 왜 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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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8/05/22 14:56 | 역사 | 트랙백(1) | 덧글(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