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6월 01일
..나이 27살에 통금이라니.. - 촛불시위 참가 못한 같잖은 변명..
금요일과 토요일에 서강대에서 전국역사학대회가 있었습니다. '역사상의 공화정과 국가 만들기' 란 주제였지요. 뭐..실은 그거보다 다음날 분과 주제들이 땡겨서 가고 싶었던 것이었지만요.
가기 전날 그런 쪽으로 정보가 느린 저는 출발하기 전날까지 대회 날짜를 정확히 알지 못하다가 학교 동기들이 그거 때문에 서울에 올라와 있단 전화를 받고는 탄력을 받아 새벽기차를 타고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정확히 새벽 4시 기차였지요. 사실 일주일 전에 역사문 강의 때문에 서울로 온다고 돈이 많이 깨져서 올라가기가 좀 망설여졌지만 촛불 시위 참가 내지는 '구경'이라도 할까하는 마음이 반반이었죠. 그래서 단돈 3만원에 서울-동대구간을 왕복할 수 있는 궁상짓거리 계획을 준비하고는 차비만 부모님께 손을 벌렸습니다.
...아풀사.. 그런데 이게 웬걸.. 새벽기차를 타기 위해서 일찍 자고 새벽 2시 반에 깨어 준비를 했는데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습니다. 기차에 오르기 전까지는 느끼지 못했는데 저녁 먹은게 체한 것이었죠. 원래 잘 체하지 않는 편인데 그날 촛불시위 인터넷 방송을 보면서 저녁을 먹었는데 흥분도 하고 긴장을 한 탓인지 위에서 안받았던 모양입니다. 체한 상태에서 새우잠 3시간을 자고 일어났을 때는 이미 체한 상태였는데 전 단지 창문열고 자서 머리가 띵한 건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겨 기차에 올랐습니다.
...기차에 오르고서 30분 지나고나니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더군요. 속이 더부룩한 것은 물론이었구요. 그렇다고 기차에서 잘 수도 없었습니다. 천안역에서 내려야하는데 자다보면 필시 서울역까지 논스톱으로 잘게 분명했거든요. 결국 안정을 취하지 못한 채로 천안역에 도착해 지하철로 신천역까지 1시간 30분 정도를 소모할 때까지 잠은 자질 못했습니다.
신천역에서 내린 후 서강대를 찾아가는데 거리가 꽤 있더군요. 마침 대회 시작 시간이 임박해서 중도에 약을 사먹을 생각은 하지도 못했습니다. 대회 시간을 약간 지체해서 도착을 한 뒤 두눈 시뻘건 상태로 발표를 들었는데 오전 발표는 거의 무슨 말인지 알아먹질 못할 어려운 얘기들이라 머리는 더 아파오더군요. 두통이 정말 심한 상태라 조는 것도 아니고 듣는 것도 아닌 희안한 상황이었습니다.
오후발표와 종합발표까지 끝난 뒤에 제 몸상태는 그야말로 엘롱이었습니다.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지요. 원래는 제 동기들과 그 행사가 끝난 뒤에 청계천으로 시위대 구경이라도 할 요량이었지만 제 몸상태가 장난이 아니어서 불가피하게 그녀석들까지 청계천에 가질 못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미안하더군요. 약국에서 약을 사먹고 숙소에 몸을 뉘이고서는 거의 쓰러지듯이 엎어졌습니다.
다음날 일어났을 때 두통은 어느 정도 진정되었지만 속 더부룩함은 남아 있었고, 엎친데 덮친 격인지 전날 저녁에 조금 먹었던 비빔밥이 잘못되었던 것인지 복통이 엄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건 뭐 머피의 법칙도 아니고.. 그러나 이왕 온거 학회 발표를 안들을 수는 없어서 아침에 급히 서강대로 향했습니다. 분과 발표를 다 듣고 난 뒤에도 복통은 완화되지 않았고, 두통도 다시 엄습해 오는 상황이었죠.
이틀째도 몸이 호전될 기미가 보이질 않았는데 마침 집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서울에서 시위규모가 커지는 걸 본 부모님께서 불안해하셨는지 집에 빨리 내려오란 것이었습니다.(마침 제가 대회 참석 때문에 전화기를 꺼놓고 있어서 연락이 안돼 더 불안하셨던 것 같습니다. 처음 서울 갈때만 하더라도 시위하려고 가는거 아니냐면서 어림도 없는 소리 말라고 하셨을 정도니까요.) 좀 보수적인 성향이 있으신 부모님이라 그런 시위의 정당성 여부보다는 시위란 개념 자체를 못마땅하게 여기시지요. 몸상태도 그렇고 집에서도 내려오라고 성화라 결국 저녁 기차를 잡아타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날 집에 도착해서 쉴새 없이 화장실을 왔다갔다 했지요.(지금도 복통은 간헐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왜..설사가 멎질 않을까요.. 약을 먹었는데.. 일요일이라 병원도 못가겠고..)
다음날 아침 일어나서 시위가 어떻게 되었는가 궁금해 뉴스창을 열어보던 저는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새벽 6시까지 이어진 비폭력 시위였는데도 불구하고 공개적으로 물대포를 발사하고 방패찍기와 곤봉사용을 통한 폭력 진압이 벌어진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흥분하고 있었는데..바로 뒤에 부모님이 서 계시더군요. 그러시더니 하시는 말씀..

???
가기 전날 그런 쪽으로 정보가 느린 저는 출발하기 전날까지 대회 날짜를 정확히 알지 못하다가 학교 동기들이 그거 때문에 서울에 올라와 있단 전화를 받고는 탄력을 받아 새벽기차를 타고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정확히 새벽 4시 기차였지요. 사실 일주일 전에 역사문 강의 때문에 서울로 온다고 돈이 많이 깨져서 올라가기가 좀 망설여졌지만 촛불 시위 참가 내지는 '구경'이라도 할까하는 마음이 반반이었죠. 그래서 단돈 3만원에 서울-동대구간을 왕복할 수 있는 궁상짓거리 계획을 준비하고는 차비만 부모님께 손을 벌렸습니다.
...아풀사.. 그런데 이게 웬걸.. 새벽기차를 타기 위해서 일찍 자고 새벽 2시 반에 깨어 준비를 했는데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습니다. 기차에 오르기 전까지는 느끼지 못했는데 저녁 먹은게 체한 것이었죠. 원래 잘 체하지 않는 편인데 그날 촛불시위 인터넷 방송을 보면서 저녁을 먹었는데 흥분도 하고 긴장을 한 탓인지 위에서 안받았던 모양입니다. 체한 상태에서 새우잠 3시간을 자고 일어났을 때는 이미 체한 상태였는데 전 단지 창문열고 자서 머리가 띵한 건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겨 기차에 올랐습니다.
...기차에 오르고서 30분 지나고나니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더군요. 속이 더부룩한 것은 물론이었구요. 그렇다고 기차에서 잘 수도 없었습니다. 천안역에서 내려야하는데 자다보면 필시 서울역까지 논스톱으로 잘게 분명했거든요. 결국 안정을 취하지 못한 채로 천안역에 도착해 지하철로 신천역까지 1시간 30분 정도를 소모할 때까지 잠은 자질 못했습니다.
신천역에서 내린 후 서강대를 찾아가는데 거리가 꽤 있더군요. 마침 대회 시작 시간이 임박해서 중도에 약을 사먹을 생각은 하지도 못했습니다. 대회 시간을 약간 지체해서 도착을 한 뒤 두눈 시뻘건 상태로 발표를 들었는데 오전 발표는 거의 무슨 말인지 알아먹질 못할 어려운 얘기들이라 머리는 더 아파오더군요. 두통이 정말 심한 상태라 조는 것도 아니고 듣는 것도 아닌 희안한 상황이었습니다.
오후발표와 종합발표까지 끝난 뒤에 제 몸상태는 그야말로 엘롱이었습니다.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지요. 원래는 제 동기들과 그 행사가 끝난 뒤에 청계천으로 시위대 구경이라도 할 요량이었지만 제 몸상태가 장난이 아니어서 불가피하게 그녀석들까지 청계천에 가질 못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미안하더군요. 약국에서 약을 사먹고 숙소에 몸을 뉘이고서는 거의 쓰러지듯이 엎어졌습니다.
다음날 일어났을 때 두통은 어느 정도 진정되었지만 속 더부룩함은 남아 있었고, 엎친데 덮친 격인지 전날 저녁에 조금 먹었던 비빔밥이 잘못되었던 것인지 복통이 엄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건 뭐 머피의 법칙도 아니고.. 그러나 이왕 온거 학회 발표를 안들을 수는 없어서 아침에 급히 서강대로 향했습니다. 분과 발표를 다 듣고 난 뒤에도 복통은 완화되지 않았고, 두통도 다시 엄습해 오는 상황이었죠.
이틀째도 몸이 호전될 기미가 보이질 않았는데 마침 집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서울에서 시위규모가 커지는 걸 본 부모님께서 불안해하셨는지 집에 빨리 내려오란 것이었습니다.(마침 제가 대회 참석 때문에 전화기를 꺼놓고 있어서 연락이 안돼 더 불안하셨던 것 같습니다. 처음 서울 갈때만 하더라도 시위하려고 가는거 아니냐면서 어림도 없는 소리 말라고 하셨을 정도니까요.) 좀 보수적인 성향이 있으신 부모님이라 그런 시위의 정당성 여부보다는 시위란 개념 자체를 못마땅하게 여기시지요. 몸상태도 그렇고 집에서도 내려오라고 성화라 결국 저녁 기차를 잡아타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날 집에 도착해서 쉴새 없이 화장실을 왔다갔다 했지요.(지금도 복통은 간헐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왜..설사가 멎질 않을까요.. 약을 먹었는데.. 일요일이라 병원도 못가겠고..)
다음날 아침 일어나서 시위가 어떻게 되었는가 궁금해 뉴스창을 열어보던 저는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새벽 6시까지 이어진 비폭력 시위였는데도 불구하고 공개적으로 물대포를 발사하고 방패찍기와 곤봉사용을 통한 폭력 진압이 벌어진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흥분하고 있었는데..바로 뒤에 부모님이 서 계시더군요. 그러시더니 하시는 말씀..
"너 오늘부터 저녁 통금이다"

???
"아니 왜요?"
"너 하는 짓을 보니 시위 참가할거 같아서 그런다"
"...제 나이가 27살입니다. 세살먹은 꼬맹이도 아니고 통금이라니요.."
"시꺼! 넌 네 한 몸 건사도 제대로 못하잖아. 자기 할일부터 제대로 하고서..(뒷 내용 생략)"
예전에 대선과 총선 때문에 정치적 입장이 달랐던 부모님과 저는 그것 때문에 잠시 가족 관계가 소원해질 뻔한 일이 있어 이후로는 정치 얘기는 암묵적으로 하질 않았기에 시위 그 자체에 대한 정당성에 대해서는 말하진 않았습니다. 또 말다툼으로 연결될 게 뻔했거든요.
뭐.. 곰곰히 생각해보니 자기 한 몸 건사도 못하는 건 맞는 말이긴 하더군요. 제 할일(임용공부)도 제대로 정돈을 하지 못했는데 다른 데 정신을 팔기에는 제 스스로가 너무 모자라긴 했습니다. 아직 서울에 남아있는 제 동기들은 그런 점에서 저보다는 나았기에 보다 떳떳할 수 있었고 제 할일을 제대로 준수 못한 저는 그런 점에서 부모님께 떳떳하지 못합니다. 결국 제가 부모님께 가질 명분이란 없는 거였지요. 말문이 막힌 저는 말할 타이밍을 놓치고 통금이란 통보를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사실 부모님이 많이 엄하신 편이어서 그걸 어길 시에 돌아올 뒷감당이 엄두가 안난다는게 정답이긴 합니다.)
뭐..모든 걸 포기하고서 시위에 참석한 사람들의 용기에 비하자면, 전 가족들간의 관계나 제 영역을 지키려는 사소한 욕심, 그리고 시위 진압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시위 진압장면을 보고 밥먹다 체할 정도의 새가슴이니까요) 참석을 하지 못해 많이 부끄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들에게도, 제 부모님께도 떳떳하지 못합니다. 그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렇게 컴 앞에 앉아 포스팅이나 끄적거리거나 블로그에 촛불달기 같은 것이 다일 듯 싶습니다. 시위하시는 분들에게 전 큰 빚을 지고 말았습니다.
ps 1. 그래도 그렇지.. 나이 27살에 통금이라니.. 에효..
ps 2. 역시 사람은 경제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나봅니다.
"너 하는 짓을 보니 시위 참가할거 같아서 그런다"
"...제 나이가 27살입니다. 세살먹은 꼬맹이도 아니고 통금이라니요.."
"시꺼! 넌 네 한 몸 건사도 제대로 못하잖아. 자기 할일부터 제대로 하고서..(뒷 내용 생략)"
예전에 대선과 총선 때문에 정치적 입장이 달랐던 부모님과 저는 그것 때문에 잠시 가족 관계가 소원해질 뻔한 일이 있어 이후로는 정치 얘기는 암묵적으로 하질 않았기에 시위 그 자체에 대한 정당성에 대해서는 말하진 않았습니다. 또 말다툼으로 연결될 게 뻔했거든요.
뭐.. 곰곰히 생각해보니 자기 한 몸 건사도 못하는 건 맞는 말이긴 하더군요. 제 할일(임용공부)도 제대로 정돈을 하지 못했는데 다른 데 정신을 팔기에는 제 스스로가 너무 모자라긴 했습니다. 아직 서울에 남아있는 제 동기들은 그런 점에서 저보다는 나았기에 보다 떳떳할 수 있었고 제 할일을 제대로 준수 못한 저는 그런 점에서 부모님께 떳떳하지 못합니다. 결국 제가 부모님께 가질 명분이란 없는 거였지요. 말문이 막힌 저는 말할 타이밍을 놓치고 통금이란 통보를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사실 부모님이 많이 엄하신 편이어서 그걸 어길 시에 돌아올 뒷감당이 엄두가 안난다는게 정답이긴 합니다.)
뭐..모든 걸 포기하고서 시위에 참석한 사람들의 용기에 비하자면, 전 가족들간의 관계나 제 영역을 지키려는 사소한 욕심, 그리고 시위 진압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시위 진압장면을 보고 밥먹다 체할 정도의 새가슴이니까요) 참석을 하지 못해 많이 부끄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들에게도, 제 부모님께도 떳떳하지 못합니다. 그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렇게 컴 앞에 앉아 포스팅이나 끄적거리거나 블로그에 촛불달기 같은 것이 다일 듯 싶습니다. 시위하시는 분들에게 전 큰 빚을 지고 말았습니다.
ps 1. 그래도 그렇지.. 나이 27살에 통금이라니.. 에효..
ps 2. 역시 사람은 경제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나봅니다.
# by | 2008/06/01 13:00 | 일상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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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색은 언젠가 드러낼 것이라 생각했는데 너무 빨라서 이것 뭐 ㅡ_ㅡ;; 그리고 이화여대에 사복경찰들이 떼로 진입해서 학생들의 소지품을 일일이 검사하고 학생들을 잡으러다니고 학교안을 통제했다는데 이 나라의 미래가 정말이지 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