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7월 24일
고구려 생활사 8회 강의 후기 - 한국 고대 종교와 생활
7회 강의 전쟁사 부분에 대한 후기 포스팅을 날리지 않고 바로 8회로 넘어가버렸군요. 이게 다 엉덩이가 무거운 탓.. 어쨌거나
생활사 강의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강의도 역시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주제가 인간의식과 관련된 것인만큼 상징, 사고체계와 연관있는 다른 주제들과도 연계될 수 있는 주제라서 그 이전 주제들에 대한 심화된 사고나 보충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주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예를 들자면 士의 등장과 문자, 의식주 문제, 전쟁 등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강의 내용의 큰 흐름은 '고대도시'를 쓴 쿨랑주의 견해를 상당부분 차용하였는데 이 책은 학부 때 서양 고대사 수업 때 접했던 것(무려 100년전에 쓴 책임에도 아직도 강의나 연구에 활용되는 고전 중의 고전)이라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까지 크게 충격을 받진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 알고 있던 얘기들이니까요. 하지만 쿨랑주의 견해를 접하지 못했던 분들에게는 다소 충격적인 내용이리라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의 역사 인식에서는 사적 유물론의 영향을 크게 받아(그 원인으로는 일제 시대에 한국 사회경제사를 집필한 백남운 때부터의 영향이 현대 연구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라 생각되지만) 경제적 관점에서 사회, 정치를 재단하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제가 얻은게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학부 시절에 무심히 듣고 생각하던 개념들을 다시금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미진했던 부분과 잘못 생각하고 있던 부분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생겼기 때문입니다.(뭐..매번 강의가 항상 그랬었지만 말입니다.)
일단 재확인한 것은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의식'이고 종교는 이 의식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인간에게 그 어떠한 정보나 지식도 허락되지 않은 '고대' 아니 선사 시대에는 모든 것을 종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과학이 발달한 시대라면 주변에서 흔하게 벌어지는 자잘한 자연현상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알수 없었던 그들은 그에 대한 대처방식을 구하는데 '신'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들에게는 '이 세상에 신의 숨결이 닿지 않은 것이 없다' 라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신의 의지'로 돌렸을 것입니다.(이 관점이 생활사 연구 전체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출발점이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이것은 별거 아닌거 같아도 아주 중요합니다.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신'과 '종교'는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고대와 선사에 대한 인식에서 '사적 유물론'적인 인식이 실제와 다를 가능성을 내비칩니다. 적어도 이때는 물질이 의식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이 물질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물론 완전히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비중과 직접적인 영향력을 따진다면 후자가 더 크다고 하겠죠.)
따라서 선사와 고대를 논하기 위해서는 '종교'에 대한 언급이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은 적어도 한국 고대사 연구자들 중에서는 사적 유물론에서 출발한 사회경제적 분석이 있었지만 의식의 관점에서 분석한 것은 지극히 미약했다는 점입니다. 최근에서야 박대재 교수가 고조선사 연구에서 융사공동체라는 관념을 설명하면서 의식과 관념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만 실은 대단히 늦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적어도 서양고대사에서는 100년전에 쿨랑주가 주목했던 것임에도 말이지요.
두번째로 재확인 한 것은 '철학은 종교의 연장선상에 있다' 란 것입니다. 이 부분은 강의 때 직접적으로 언급되진 않았습니다만 '유교도 종교다' 란 설명과 '종교의 체계적 정리 과정' 부분을 설명하실 때 간접적으로 캐치했던 것입니다. 좀 생뚱맞은 얘기지만 우리가 흔히 '철학'의 영역으로 생각하던 노장 사상이나 공자, 맹자의 사상 따위의 말씀들은 '신의 의지', 혹은 전해져 오는 '말씀'들을 보다 체계적,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정리하기 위한 종교의 일환이라고 말입니다. 그것이 직접적으로 '신'으로 표시되지 않고 '도'라는 형태로 전래되긴 했습니다만 어찌되었든 그것은 증명되지 않은 개인의 사고, 신념의 체계적 정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종교'의 영역으로 볼 수 있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 영역이라고 생각하던 철학조차도 종교의 영역으로 치환해서 생각해본다면, '철학과 체계가 가미된 고등종교'와 '원시종교'라는 구분이 정치,사회,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차이가 난다라고 분석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의미를 가질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발생할 것입니다.(물론 이 부분은 강의에서 언급되었습니다.)
어찌되었든 중요한 것은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사고, 사유체계로서 철학은 종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란 것입니다. 즉, 도교와 도가가 다른 것 같아도..어찌보면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되겠죠? 뿌리는 같으니까 말입니다. 단지 얼마나 더 사유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했느냐가 관건이 될 것입니다. 이 점은 2천년 전 처음 성립된 초기 기독교와 현재 기독교 (이것은 불교나 유교, 도교로도 치환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미신이라고 믿어지는 우리네 무당들이 얼마나 차이를 가지느냐란 의문과 그들 사이의 권력투쟁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도 할 것입니다.(물론 현재 우리나라 무당은 세번째 재확인한 것과 연계해서 아주 자잘한 찌꺼기만 남아있는 것이라 단순 비교하긴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세번째로 재확인한 것은 '사제왕'이란 개념입니다. 이 말은 제정분리가 전제되지 않은 왕을 의미합니다. 종교의 집전을 왕이 한다는 것에서 엄밀한 의미로 제정분리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면, 봉선제사를 지내는 중국의 천자나, 구한 말에 원구단을 복원하고 제천한 고종황제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요?
물론 그렇게 따진다면 전문적 '巫'(제정 분리된 무당)는 어떻게 해석을 해야하는가 란 문제에 봉착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의 말씀'에 독점적 권력을 가진 巫들의 권한이 커지고 발달하면서 사회적 분화와 역할분담으로 해석할 수 있단 말을 들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사제왕인 '은왕'과 그 주변에 점복을 맡은 '정인'이 될 것 입니다. 사실 어렴풋이 인지만 할 뿐 명확한 개념적 구분을 하지 못했는데 그날 확실히 정리가 되었습니다.) 농경인의 사회적 분화란 개념은 익숙한데 '巫'의 사회적 분화라.. 그렇다면 존귀한 '巫'도 존재할 것이고 천한 '巫'도 존재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권력 관계와 사회적 의미는 어떻게 되는 것이고 어떤 의미를 내려야 할까란 고민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두번째의 재확인한 것과 연계한다면, 종교국가로서 전근대 동아시아 왕조, 특히 한국사의 각 왕조들은 불교와 유교 도입 이전의 원시종교라고 지칭된 그것이 정말로 하등하고 원시적이며 비체계적인가 란 의문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또한 과연, 과학이 도입되지 않은 전근대 시대 통틀어서 '사제왕'이란 개념이 적어도 전근대 동아시아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은 적이 있었나 란 의문이 발생합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던 '제정분리' 란 관점에 대해서 우리는 다시 생각해봐야한다는 것이죠. 그렇게 된다면 아직도 그 시대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부분에서 종교의 영역을 분리시켜 따져볼 수 없다는 얘기가 될 것입니다. 뭐..그게 상호영향을 미치는 것이 당연하니 뭐 그리 대수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전근대 시대까지 종교가 이들 영역의 상위에 위치한다면 단순한 상호 영향을 미친다라고 하긴 어려울테죠. 적어도 현재까지의 연구 경향은 정치, 사회적 변화에 더 주목하고 종교는 찬밥신세입니다.(아직까지도 양천의 신분구조에 대해서 사회, 경제적 관점으로만 해석을 가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인데 그날 강의에서 종교적 원인이 실질적인 원인이란 말을 듣고 '아..정말 난 바보였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학부 때 서양고대사 수업에서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을 한국사에서 똑같이 사고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참고로 양천 신분구조에 대해 종교적인 원인을 따진다면 이것이 힌트가 될 것입니다. 현상에 대한 모든 이해를 '신의 의지'로 돌렸다는 것과 이교도란 관점 2개를 복합해서 생각하면 됩니다. 전쟁포로란 형태로 노예가 된 사람의 신이 그를 지켜주지 못한 것은 승자의 신이 더 강하여 패자의 신을 굴복시킨 것으로 이해하거든요.)
실은 아직도 근대인의 사고관념을 전근대 사람들의 사고관념과 같은 것이란 무의식에서 연구를 진행하거나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제대로 그 시대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서 '조공책봉'에 대해서 근대적 정치외교적 개념으로 이해하거나 설명하려는 사람은 조공책봉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왜냐면 이것은 천명(天命)이란 종교적 관념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쓰다보니 강의 내용을 상당부분 스포일러 하고 말았네요. 물론 스포일러 한 부분은 대체로 쿨랑주가 '고대도시'에서 언급한 것에 선생님이 살을 더한 것이고 선생님이 새롭게 언급한 부분은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자세한 것은 내년에 책이 나오면 참조하시는게..(도주중)
# by | 2008/07/24 12:25 | 각종 강의 후기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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