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22일
잡담 38 - 여행(?)의 끝에서...
이글루스 역사 밸리 최고의 조합
1. 원래는 어제 11시에 집에 도착하고서 써야했을 포스팅입니다만, 어떻하다보니 이제야 쓰는군요. 뭐.. 제가 한 두번 이런 것도 아니니.....(퍽)
2. 집에 도착해서 컴을 켜고 마이에 들어갔습니다. 읽지않은 구독 포스팅들이 6페이지나 되더군요.
....메일함을 열어보니 읽지않은 메일이 120개... 뭐든 미루면 뒷수습이 어려운 듯..;;
3. 언제나 그렇듯 늘 궁상짓을 해대는 저는 이번에도 천안역에 내려서는 지하철로 서울에 접근하는 삽질신공을 운용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하면 돈이 만원이나 굳는데 저같은 백수가 안할 리가 있나요?
그런데 이번 서울행에는 액이 꼈는지 별 일이 다 있었습니다. 제가 탄 객차에서 싸움이 두번 있었거든요. 하나는 할머니 한분과 아저씨 한분이 의자 뒤로 홱 제낀 걸 두고 10분간 욕설을 동원해서 싸우더니 20분 있다가 아침부터 술에 불콰하게 취한 아저씨가 자리 때문에 한 청년과 쌈이 붙더군요. 이 아저씨가 진상인 것이 혼자서 30분 동안이나 오만 쌍욕을 다 하면서 중간에 그 청년에게 계속 침을 뱉더란 말입니다.

이건 말리고 싶어도 더러워서 말리지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근데 더 문제는 제가 그 진상 아저씨 바로 앞 좌석이었단 점입니다. 불똥이 튀는게 아니라 침이 저한테 튈까 걱정이었습니다. 살다살다 그런 진상은 첨이라 부득불 자리를 옮겨야 했지요. 결국 그 아저씨는 역무원 아저씨에게까지 진상을 부렸습니다. 술을 먹으면 곱게 쳐먹던지...
암튼 이번에는 정말 간만에 서울에 올라가는 거라 무궁화호에 변화가 생긴 것을 모르고 탔는데, 늘상 있던 홍익회 아저씨 대신, 처음보는 '카페 객차' 란게 생겼더군요. 열차 방송에서 10분 간격으로 뻔질나게 방송을 하길래 책 읽다가 짜증나서 뭐 어떤 건지 보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나중에 봤는데 피시방 시설, 노래방 시설, 스넥 코너가 한 객차에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지 뭡니까? 달리는 열차 안에서 스타를 하고 있는 한 중생을 보고 할 말을 잃어야 했습니다.

역시 세상은 오래 살고 볼일입니다.
4. 원래 토요일에는 역사문 송년회 정모 이전에 어떤 분과 만날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연락을 드렸더니 마침 사정이 계셔서 무산이 되었습니다. (뭐.. 하루 전날에 연락을 드린 제 불민함이 개념없는 짓임을 자각하긴 했어야 하겠습니다만 암튼..)
시간이 중간에 비는지라 국박이나 들를까 하다가 이미 자주 갔던 곳을 또 가기에는 그렇고 마침 고려대 박물관 칼 전시회가 생각이 나서 새벽에 위치와 시간을 파악했습니다. 이거야 말로 밑도 끝도없는 관람이겠죠. 천안에 도착해서는 아는 동생에게 고려대 박물관 같이 가자고 꼬시는 만행까지 저질렀습니다. 지금 이자리를 빌어 그 동생에게 사과를 합니다. (뭐..그 녀석이 이 글을 본다는 보장은 없지만요.)
대략 10시 즈음에 천안에 도착을 했기 때문에 급행열차를 타면 12시 이전 고려대역에 도착하겠다는 계산을 하고는 그 동생에게 12시까지 고려대역으로 나오라고 했지요. 그런데..




막상 고생하며 관람을 했으나.. 뭐 아는게 있어야 보이는게 있죠. 그냥 '오오 멋지다' 란 표현 밖에는...
거기다 원래 12시 전에 도착해서 3시간 반 동안 느긋하게 봐야 할 것을 늦게 온거+ 다른 모종의 일로 인해 대강 보고 나와야 했습니다.
..대체 저 왜 갔던 걸까요?

5. 4시 반에 박물관 같이 갔던 동생이랑 선생님 연구실에 도착을 해보니 선생님은 부재중...;;;

분명 시작을 4시 반에 하신다고 했는데..(나중에 알고보니 초청 강의가 좀 늦게 끝나셨더군요.) 잠깐 아노미 상태로 15분을 기다리고 있다가 사모님께서 연구실 문을 따주셨습니다. 가보니 절 포함해서 3명만 있는 형국.. 사람이 적어서 심심하긴 하겠지만 대신 엄청 포식하겠다는 기대감으로 충만했습니다. 5시 즈음에 선생님이 오신 후 치킨세트와 피자를 두판이나 시키셨거든요. 사람들이 늦게 오는 걸 감안해서 1시간 뒤에 갖다 주기로 되었습니다.

사람이 많아 재미는 있었지만 뭔가 2% 부족한 느낌이더군요. 배가 아주 살짝 고팠더랬습니다.(먼산)
뭐.. 그날 공짜 책을 5권이나 얻어 매우 만족스럽긴 했으나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능..(퍽)
6. 그렇게 토요일 모임이 끝나고.. 일요일에 경군님이 주최하신 저의 대부흥회(?)에 참석하기 전 잠자리를 위해 찜질방으로 갈려는 찰나.. 고려대에서 저의 만행을 견뎌낸 아는 동생이 자기 집으로 오라더군요. 민폐인 줄 알고 있었지만, 백수가 이것저것 가릴 처지는 아니구요....예.. 뭐.. 암말 안해도 아시겠죠?(어흠)
다음날 아침에 좀 일찍 일어나 동생 녀석집에서 나온 뒤에 약속장소인 강남역에 2시간 일찍 도착했습니다. 아는 형의 요청으로 교보문고에 들러 한국사특강 개정판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좀 봐달라고 하더군요. 저도 좀 궁금하터라 보긴 했는데.. 이건 개정 수준이 아니라 완전 다른 책이란 느낌이었습니다. 좀 황당했던 것은.. 한국 불교사 서술이라고 해놓구서 일본불교와 한국불교를 비교하는데 지면을 3분의 1이나 할애한 점이었고 예전에 있었던 사학사 부분은 완전히 날려먹은 채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음악사를 넣어버리더군요. 좀 황당했습니다.
더 황당한 것은 시간이 다되어 교보문고를 나서려는데 교보빌딩에서 소방관들이 들이닥치는 걸 목격한 것이었습니다.

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죠. 제가 대구에 살다보니 중앙로역 화재사건 같은 일을 제가 겪을 뻔 했다라는 망상이 드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위층 사무실에서 쓰레기 통에 담배불이 번진 거더군요.

담뱃불 하나에 대형 소방차 3대와 수십명의 소방관들이 들이닥친게 좀 아햏햏 했습니다. 그래도 조기 진화한게 다행..
7. 그렇게 황당함을 가슴에 안고 부흥회(?) 장소로 도착을 했지요. 근데 생각치 않았던 분이 참석해주셔서 살짝 놀랐습니다. 나츠메님이 오셨더군요. 오프라인에서는 처음 뵙는지라 반가우면서도 놀랐습니다. 왜냐면 이전에 포스팅 올리신 거 읽으면서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저보다 월등한 필력이나 지식으로 봐서 저와 동년배거나 혹은 좀 더 나이가 있으실거라 생각했는데, 제 동생과 동년배시더군요. 게다가 후덕한 인상이라.. 전 좀 날카로운 인상이 아닐까 상상을 했었는데 말입니다. 상상과 실제는 같지 않다는 걸 망각하다보니 이렇습니다.
뭐..저의 글빨이나 지식이 나이에 걸맞지 않게 일천해서 나츠메님의 글을 보고는 그런 오해를 했을 가능성도 있겠습니다만..
암튼 그날 모임은 그야말로 배꼽이 빠질 뻔 했습니다. 그날 대운하, 군단 떡밥의 탄생과 '소중교' 창립은 그야말로 인상적.. 특히나 생일이 20일이나 지난 시점에서 생일날에도 보지 못한 케익과 촛불끄기 스킬을 제가 시전한 점은 감동이었습니다.
촌철살인으로 모두를 배잡게 만드신 rumic71님과 간간히 빵빵터지는 시크한 발언으로 모두를 뒤집어주신 shaw님, 그리고 레진님의 후계자인 자중자애님과 그 방면(응?)에서 쌍벽을 이루는 발언을 계속 해주신 나츠메님 등... 떡밥춘추에 오프라인으로 참석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날의 모임은 재밌었습니다. (참.. 자중자애님. 그때 주신 시디는 잘 듣겠습니다.)
8. 그렇게 웃음으로 배가 땡기며 집으로 내려가는 길, 언제나 그렇듯 천안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무궁화호를 타는 극악삽질을 시전하던 중에 집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동지팥죽 먹었냐구요. 어느새 동지가 왔나 싶더군요. 시간 참 빨리간다 싶었습니다. 문득 지인들 생각이 나서 '동지팥죽 잘 자셨나 들?' 이라고 떡밥 문자를 날렸지요. 거기에 낚인 사람들 몇명과 통화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녀석과의 통화에서 모종의 발언으로 인해 '떡줄 놈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 모드가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즈음에야 그 지인에 대한 소식을 모종의 경로로 알게 되고서는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쪽 방면으로는 차갑게 식은 줄 알았던 심장이 (비록 그런 의도가 아님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말 한마디에 다시 뛰는 것에 저도 놀랐습니다만 나중에 소식을 듣고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어둠 속으로 침잠하려는 제가 더 싫더군요. 암튼 그녀석 말 한마디에 오늘 하루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경험했습니다. 분명 그녀석은 자신의 어떤 말이 절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를 거에요. 사실 그걸 알면 되게 쪽팔린 거겠죠.

결론은 뭐.. 그날 떡밥 춘추에서 말로만 하겠다고 했던 '크리스마스 이브의 용자놀이'를 시전할 수 밖에 없겠다 싶었습니다. 혹, 저처럼 크리스마스 이브에 커플 지뢰를 피해서 영화를 관람하실 용자 없으신지?

이건 본햏의 현재진행형

OTL...
1. 원래는 어제 11시에 집에 도착하고서 써야했을 포스팅입니다만, 어떻하다보니 이제야 쓰는군요. 뭐.. 제가 한 두번 이런 것도 아니니.....(퍽)
2. 집에 도착해서 컴을 켜고 마이에 들어갔습니다. 읽지않은 구독 포스팅들이 6페이지나 되더군요.
....메일함을 열어보니 읽지않은 메일이 120개... 뭐든 미루면 뒷수습이 어려운 듯..;;
3. 언제나 그렇듯 늘 궁상짓을 해대는 저는 이번에도 천안역에 내려서는 지하철로 서울에 접근하는 삽질신공을 운용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하면 돈이 만원이나 굳는데 저같은 백수가 안할 리가 있나요?
그런데 이번 서울행에는 액이 꼈는지 별 일이 다 있었습니다. 제가 탄 객차에서 싸움이 두번 있었거든요. 하나는 할머니 한분과 아저씨 한분이 의자 뒤로 홱 제낀 걸 두고 10분간 욕설을 동원해서 싸우더니 20분 있다가 아침부터 술에 불콰하게 취한 아저씨가 자리 때문에 한 청년과 쌈이 붙더군요. 이 아저씨가 진상인 것이 혼자서 30분 동안이나 오만 쌍욕을 다 하면서 중간에 그 청년에게 계속 침을 뱉더란 말입니다.

이건 말리고 싶어도 더러워서 말리지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근데 더 문제는 제가 그 진상 아저씨 바로 앞 좌석이었단 점입니다. 불똥이 튀는게 아니라 침이 저한테 튈까 걱정이었습니다. 살다살다 그런 진상은 첨이라 부득불 자리를 옮겨야 했지요. 결국 그 아저씨는 역무원 아저씨에게까지 진상을 부렸습니다. 술을 먹으면 곱게 쳐먹던지...
암튼 이번에는 정말 간만에 서울에 올라가는 거라 무궁화호에 변화가 생긴 것을 모르고 탔는데, 늘상 있던 홍익회 아저씨 대신, 처음보는 '카페 객차' 란게 생겼더군요. 열차 방송에서 10분 간격으로 뻔질나게 방송을 하길래 책 읽다가 짜증나서 뭐 어떤 건지 보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나중에 봤는데 피시방 시설, 노래방 시설, 스넥 코너가 한 객차에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지 뭡니까? 달리는 열차 안에서 스타를 하고 있는 한 중생을 보고 할 말을 잃어야 했습니다.

역시 세상은 오래 살고 볼일입니다.
4. 원래 토요일에는 역사문 송년회 정모 이전에 어떤 분과 만날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연락을 드렸더니 마침 사정이 계셔서 무산이 되었습니다. (뭐.. 하루 전날에 연락을 드린 제 불민함이 개념없는 짓임을 자각하긴 했어야 하겠습니다만 암튼..)
시간이 중간에 비는지라 국박이나 들를까 하다가 이미 자주 갔던 곳을 또 가기에는 그렇고 마침 고려대 박물관 칼 전시회가 생각이 나서 새벽에 위치와 시간을 파악했습니다. 이거야 말로 밑도 끝도없는 관람이겠죠. 천안에 도착해서는 아는 동생에게 고려대 박물관 같이 가자고 꼬시는 만행까지 저질렀습니다. 지금 이자리를 빌어 그 동생에게 사과를 합니다. (뭐..그 녀석이 이 글을 본다는 보장은 없지만요.)
대략 10시 즈음에 천안에 도착을 했기 때문에 급행열차를 타면 12시 이전 고려대역에 도착하겠다는 계산을 하고는 그 동생에게 12시까지 고려대역으로 나오라고 했지요. 그런데..

하필이면 급행열차인 줄 알고 탔던 그 열차는 급행이 아니더군요.

천안행 급행시간을 용산행 급행시간으로 잘못 본게 화근이었습니다.(..이놈의 난독증)

결국 12시 40분에 고려대 역에 도착..
아는 동생은 역 근처에서 찬바람 맞으며 얼어가고 있었습니다.....
아는 동생은 역 근처에서 찬바람 맞으며 얼어가고 있었습니다.....

막상 고생하며 관람을 했으나.. 뭐 아는게 있어야 보이는게 있죠. 그냥 '오오 멋지다' 란 표현 밖에는...
거기다 원래 12시 전에 도착해서 3시간 반 동안 느긋하게 봐야 할 것을 늦게 온거+ 다른 모종의 일로 인해 대강 보고 나와야 했습니다.
..대체 저 왜 갔던 걸까요?

5. 4시 반에 박물관 같이 갔던 동생이랑 선생님 연구실에 도착을 해보니 선생님은 부재중...;;;

(아풀싸!!! 이럴 줄 알았으면 고려대 박물관에 더 있다 오는건데!!!)
분명 시작을 4시 반에 하신다고 했는데..(나중에 알고보니 초청 강의가 좀 늦게 끝나셨더군요.) 잠깐 아노미 상태로 15분을 기다리고 있다가 사모님께서 연구실 문을 따주셨습니다. 가보니 절 포함해서 3명만 있는 형국.. 사람이 적어서 심심하긴 하겠지만 대신 엄청 포식하겠다는 기대감으로 충만했습니다. 5시 즈음에 선생님이 오신 후 치킨세트와 피자를 두판이나 시키셨거든요. 사람들이 늦게 오는 걸 감안해서 1시간 뒤에 갖다 주기로 되었습니다.
...그러나 1시간 뒤...
인원수는 갑자기 6배 로 증식..
인원수는 갑자기 6배 로 증식..

시킨 두판의 피자와 치킨세트는 각각 한조각씩 뜯는 것으로 만족..어흙...
(최종적으로 7시 반에는 인원이 20명으로 늘어나 있었습니다.)
(최종적으로 7시 반에는 인원이 20명으로 늘어나 있었습니다.)
사람이 많아 재미는 있었지만 뭔가 2% 부족한 느낌이더군요. 배가 아주 살짝 고팠더랬습니다.(먼산)
뭐.. 그날 공짜 책을 5권이나 얻어 매우 만족스럽긴 했으나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능..(퍽)
6. 그렇게 토요일 모임이 끝나고.. 일요일에 경군님이 주최하신 저의 대부흥회(?)에 참석하기 전 잠자리를 위해 찜질방으로 갈려는 찰나.. 고려대에서 저의 만행을 견뎌낸 아는 동생이 자기 집으로 오라더군요. 민폐인 줄 알고 있었지만, 백수가 이것저것 가릴 처지는 아니구요....예.. 뭐.. 암말 안해도 아시겠죠?(어흠)
다음날 아침에 좀 일찍 일어나 동생 녀석집에서 나온 뒤에 약속장소인 강남역에 2시간 일찍 도착했습니다. 아는 형의 요청으로 교보문고에 들러 한국사특강 개정판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좀 봐달라고 하더군요. 저도 좀 궁금하터라 보긴 했는데.. 이건 개정 수준이 아니라 완전 다른 책이란 느낌이었습니다. 좀 황당했던 것은.. 한국 불교사 서술이라고 해놓구서 일본불교와 한국불교를 비교하는데 지면을 3분의 1이나 할애한 점이었고 예전에 있었던 사학사 부분은 완전히 날려먹은 채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음악사를 넣어버리더군요. 좀 황당했습니다.
더 황당한 것은 시간이 다되어 교보문고를 나서려는데 교보빌딩에서 소방관들이 들이닥치는 걸 목격한 것이었습니다.

'헉..좀만 잘못해서 늦게 나왓으면 불에 타죽었을지도 몰랐겠군'
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죠. 제가 대구에 살다보니 중앙로역 화재사건 같은 일을 제가 겪을 뻔 했다라는 망상이 드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위층 사무실에서 쓰레기 통에 담배불이 번진 거더군요.

담뱃불 하나에 대형 소방차 3대와 수십명의 소방관들이 들이닥친게 좀 아햏햏 했습니다. 그래도 조기 진화한게 다행..
7. 그렇게 황당함을 가슴에 안고 부흥회(?) 장소로 도착을 했지요. 근데 생각치 않았던 분이 참석해주셔서 살짝 놀랐습니다. 나츠메님이 오셨더군요. 오프라인에서는 처음 뵙는지라 반가우면서도 놀랐습니다. 왜냐면 이전에 포스팅 올리신 거 읽으면서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저보다 월등한 필력이나 지식으로 봐서 저와 동년배거나 혹은 좀 더 나이가 있으실거라 생각했는데, 제 동생과 동년배시더군요. 게다가 후덕한 인상이라.. 전 좀 날카로운 인상이 아닐까 상상을 했었는데 말입니다. 상상과 실제는 같지 않다는 걸 망각하다보니 이렇습니다.
뭐..저의 글빨이나 지식이 나이에 걸맞지 않게 일천해서 나츠메님의 글을 보고는 그런 오해를 했을 가능성도 있겠습니다만..
암튼 그날 모임은 그야말로 배꼽이 빠질 뻔 했습니다. 그날 대운하, 군단 떡밥의 탄생과 '소중교' 창립은 그야말로 인상적.. 특히나 생일이 20일이나 지난 시점에서 생일날에도 보지 못한 케익과 촛불끄기 스킬을 제가 시전한 점은 감동이었습니다.
촌철살인으로 모두를 배잡게 만드신 rumic71님과 간간히 빵빵터지는 시크한 발언으로 모두를 뒤집어주신 shaw님, 그리고 레진님의 후계자인 자중자애님과 그 방면(응?)에서 쌍벽을 이루는 발언을 계속 해주신 나츠메님 등... 떡밥춘추에 오프라인으로 참석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날의 모임은 재밌었습니다. (참.. 자중자애님. 그때 주신 시디는 잘 듣겠습니다.)
8. 그렇게 웃음으로 배가 땡기며 집으로 내려가는 길, 언제나 그렇듯 천안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무궁화호를 타는 극악삽질을 시전하던 중에 집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동지팥죽 먹었냐구요. 어느새 동지가 왔나 싶더군요. 시간 참 빨리간다 싶었습니다. 문득 지인들 생각이 나서 '동지팥죽 잘 자셨나 들?' 이라고 떡밥 문자를 날렸지요. 거기에 낚인 사람들 몇명과 통화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녀석과의 통화에서 모종의 발언으로 인해 '떡줄 놈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 모드가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즈음에야 그 지인에 대한 소식을 모종의 경로로 알게 되고서는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쪽 방면으로는 차갑게 식은 줄 알았던 심장이 (비록 그런 의도가 아님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말 한마디에 다시 뛰는 것에 저도 놀랐습니다만 나중에 소식을 듣고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어둠 속으로 침잠하려는 제가 더 싫더군요. 암튼 그녀석 말 한마디에 오늘 하루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경험했습니다. 분명 그녀석은 자신의 어떤 말이 절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를 거에요. 사실 그걸 알면 되게 쪽팔린 거겠죠.

결론은 뭐.. 그날 떡밥 춘추에서 말로만 하겠다고 했던 '크리스마스 이브의 용자놀이'를 시전할 수 밖에 없겠다 싶었습니다. 혹, 저처럼 크리스마스 이브에 커플 지뢰를 피해서 영화를 관람하실 용자 없으신지?
덧. 현실은 시궁창

이건 본햏의 현재진행형

OTL...
# by | 2008/12/22 22:02 | 일상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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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쌍화점이 개봉했더라면, 크리스마스 이브에 남자끼리 가서 쌍화점을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_-
악희님은 진정한 용자라능..
메일이 많으셨다니... 제가 메일 드린 것이 방해가 된 것 같아 죄송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