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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43 - 최근의 고질병 : 책 지름

1. 사실 최근의 고질병이라기보다는 학부 시절부터 있었던 버릇인데 요즘 들어 더 심해진 경우라고 할 수 있겠죠.

2. 누구에게나 욕심은 있습니다. 기본적인 욕구라는 식욕, 색욕, 물욕 등등이 있겠지요. 그 중에서 저는 다른 욕심은 심하다라고 할 정도로 강하진 않습니다만 '책' 지름에 대해서는 주변에서 과하다란 얘기를 듣곤 합니다. 다른 물욕은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돈 자체나 옷 욕심같은 건 남들보다 너무 적어서 탈인데 반해 괜찮다 싶은 책이 보이면 그렇게 사고 싶어서 사족을 못씁니다.

서점에서 사야할 책을 찾다가 우연찮게 제목에 이끌려 한 두장 넘기다가 '이거다!' 싶어 그 자리에서 지르기도 하고, 혹은 주변에 누군가가 '이 책 괜찮다더라' 라고 추천해주거나 모 블로거들이 괜찮은 책이다..라고 추천해준 책들을 보면.. 그야말로 그 순간은 사고 싶어 미칩니다. 그래서 없는 돈이지만 생기는 족족 갖다 붇곤 하지요.(학부 1~2학년 때는 책값에 충당한다고 점심을 안먹고 다니는 통에 과 동기들에게 본의 아니게도 왕따 비슷하게 된 적도 있었습니다. 게을러서 알바는 안하고 용돈 쪼개기를 최적화 한 것이죠. 덕분에 01학번 동기 내에 괴짜 전설로 남고 말았지요. 점심 같이 먹자란 동기 녀석에게 '난 원래 점심 안먹어' 라면서 거절을 한 사건이..;; 원래 아침 저녁을 왕창 먹고 점심을 자주 거르는 식습관이 있긴 했습니다만 지금 생각해보면 제대로 미친 짓..) 최근에는 학교 도서관에 일반회원으로 등록한 뒤에 책을 반납하러 가면서 신간 서적으로 들어오는 책들을 확인하고는 흥미에 끌리는 책들을 한 두권씩 사서 모으는 고질병이 생겼습니다.

...그러면 그 책을 사서 다 읽느냐? 라고 한다면 '절대' 그건 아니란 거죠. 제 블로그를 찾으시는 분들은 제 천성이 대단히 게으르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현재 임용고시 3수째에 돌입했습니다. 게으름과 현재의 할 일이 분명하게 주어진 상황에서 산 책들은 쌓이고 있고.. 이왕 산 책이니까 읽긴 읽어야 할텐데 시간 내에 읽히진 않고.. 란 부담감으로 도리어 책 산 것을 점점 멀리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지요. 정신을 차려보니 그렇더군요.

그야말로 "여긴 어디? 난 누구?" 인 셈입니다.

그래서.. 작년에만 산 책들이 대략 3~40권은 되는 거 같은데 이 중에 완독한 책은 채 5권이 안되는 사실을 깨닫고는 경악하고 말았지요. 물론 산 책들을 책장 한장도 넘기지 않은 건 아니긴  합니다. 부분적으로는 조금씩이나마 읽었지요. 읽다가 잘 이해가 되질 않아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임고 공부 핑계대고 나중에 보잔 식으로 넘어간 것이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남아 다시 보려고 하면 시간이 꽤 흘러 책의 앞 내용이 기억이 나질 않아 뒷 내용이 이해가 안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더군요.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보다 시간이 없으면 중도 포기.. 그리고 악순환의 무한루프를 달렸던 것이죠. 정신을 차려보니 그렇더군요.


3. 블로그를 시작하고서 다양한 관심을 가지신 분들을 접하다보니 저도 모르게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관심은 책 지름에 반영이 되더군요. 최근에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심리학과 경제학 때문에 그쪽 관련한 교양서적을 한 두권씩 사 모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과학 일반에 꽂혀있는 저를 발견했지요. 달마다 시내 나갈 일이 있으면 교보문고에 들러 신간 서적이 뭐가 나왔나 짓거리를 몇년째 하고 있는데 최근 반년간은 과학잡지 뉴턴을 달달이 읽고 있었습니다. 이해하지도 못할 내용들을 몇시간에 걸쳐서 읽고 있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나 싶기도 합니다. 제 생활과 이론 물리학의 '초끈 이론'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놈의 호기심이 뭔지... 그걸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고 하는 제 자신이 우습기도 하고 무모하기도 합니다. 그걸 제대로 이해하려면 적어도 Shaw님 같은 그 부류의 전공자 레벨은 되어야 할텐데 말입니다.

철학에 대한 관심도...있는데 이 부분은 도저히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더군요. 살림지식총서에서 나온 90쪽짜리 미셀푸코 단편집을 산지 1년이 다 되었는데도 40쪽 이상의 진도를 나가보진 못하더군요. 물론 교양철학서적조차 제대로 다 읽어내려가지도 못했지요. 가끔 sigmund님 블로그에 들르는 까닭은 제 자신이 세상을 살면서 생각없이 살았던 것에 대한 반성으로 인해 관심을 가졌던 철학이 가면 갈수록 이해불가의 영역이 되어가는 것에 대한 열등감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다행이랄지 불행이랄지 모르겠지만 아직 문학에 대해서는 관심만 있고 책을 사모으진 않았달까요..

결과적으로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 가랑이 찢어질 지경에 온 셈입니다.

교양으로써 다방면으로 지식을 쌓는게 나쁜 건 절대 아닐테고 권장해야할 일이겠습니다만 현재의 저에게는 맞지 않은 생활 패턴임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자신이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한 묘한 경외감이라던가 열등감 비슷한 걸 가지고 그걸 해소하려고 자꾸 찾아보더군요.. 아마도 이 나이 먹도록 무엇을 이뤄놓은게 없다는 것에 대한 자괴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도 학부 졸업 전까지 조금씩이라도 깨작거리던 것은 '고대사' 밖에 없던 저라서 더 그런건지도... (아주 사소한 것이긴 하지만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데 있어서 말할 거리가 없다는 건 별거 아닌거 같으면서도 꽤 중요한 거 같습니다. 28년의 그리 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살면서 과연 나에게 남은 건 뭔가란 질문을 던지면 고대사 공부가 전부란 느낌은 뭔가 허전하더군요.) 무언가 목은 마른데 쉬이 갈증은 해소되지 않아 초조하고.. 거기에 천성인 게으름 병이 겹치니 책만 사서는 대리 만족을 느끼는 걸지도요.

문제가 꽤나 심각하다는 걸 깨닫고 보니 이걸 어떻해야 하나 싶습니다. 블로그를 끊는다고 해서 이미 생겨버린 관심이 사라지는 건 아닌 거 같고.. 좀 난감하네요. (결론은 임용 합격인가..OTL 교사 임용이 제 인생 전부인 거 같아 문득 씁쓸해집니다.)


4. 사서 읽다가 만 것 중에 당장 제 눈에 띄는 것

복잡계개론(세상을 움직이는 숨겨진 질서 읽기)
: 프랙탈이 뭐다, 카오스 이론이 뭐다, 사이버 네틱스가 뭔지는
이제 이해를 할 수 있지만 4장의 실제적 적용부터는 더 이상 이해불가 ;;; 
사회학에서 요즘 거론된다길래 역사학에는 어떻게 적용될까 싶어 읽었다가 피 본 사례..
그래도 3장까지는 재밌는 있었다능..;;
(예전에 쥬라기 공원에서 말콤박사가 카오스 이론 운운한게 있는데 그거더군요.)

스키너의심리상자열기 
: 그래도 이건 생각보다 어렵진 않아서 거의 다 읽긴 했네요.
수필적 글쓰기라서 딱딱하지도 않았습니다.
부의이동(화물의 흐름을 통해 추적한 세계경제의 흥망사) 
: 1월 카페 정모 갈 때 기차에서 읽고 나머지 3분의 2는 덜 읽었네요;;
 경제사 방면으로는 거의 깡통이나 다름없어 읽어보긴 했는데...
기본 개념이 없어서인지 잘 읽히진 않더군요.
한국의 식민지근대성(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을 넘어서)  
: 근현대사는 맥주병이나 다름없어 사긴 했지만 감당이 쉽지 않은 책..;;
괴물의탄생  
: 88만원 세대 완독 후 한국경제진단 시리즈는 다 사서 읽어보려 했으나 '시도'만 했을 뿐...
결착은 아직 못냈(...)
폭력과상스러움(진중권의 엑스 리브리스)
: 산지 1년이 넘었는데 말이 너무 어려워 여태 손을 못대고 있는 책..;;
학과 후배의 꾀임에 넘어간 업보..;;;
철학의 뒤안길  
: 학부 4학년 때 사고는 시험 핑계대고 거의 손을 대지 못한 책..
철학에 대해서 기본 개념을 가져보려 샀지만 어떻하다보니 계속 안 읽게 되더군요. 
한번 손 안대니까 계속 안대게 된 경우... 하아..
최초의남자  
: 초록불님 블로그에서 보고 꽂혀서 샀다가 아직 반절이나 못 읽음..;;
무문자사회의 역사(서아프리카·모시족의 사례를 중심으로)  
: 문화인류학적 지식없이 겁도 없게 덤볐다가 피본 사례....
70쪽까지 읽다가 넉다운;;;

...이 외에도 수십권 있음..;;;

덧 1. 그래서 가끔 고율님이나 슈타인호프님, 초록불님 같은 분들의 다방면에 걸친 독서를 보면 뭔가 ㅎㄷㄷ 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덧 2. 신세한탄이나 넋두리 하려고 쓴 글이 아닌데 묘하게 결론이 이상하게 나버렸군요. 과연 삼천포 대마왕..

by 한단인 | 2009/01/22 08:00 | 일상 | 트랙백 | 덧글(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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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rumic71 at 2009/01/22 08:12
저도 사다 쌓아둔 책이 읽은 책보다 많군요. 주로 중고로 사서 부담이 아주 크진 않지만...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01/22 08:26
음..중고라.. 그러고보니 중고 서적을 지른 적은 별로 없는 거 같네요.
Commented by 야스페르츠 at 2009/01/22 09:17
저는 술로 01학번의 전설을 썼다는.... (그렇다고 술을 잘마시는가 하면 그건 좀....)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01/22 09:21
...대충 알 거 같군요. 금방 취하거나, 주사나, 혹은 오바이트.. 제 경우는 첫번째입니다. 그러고보니 그쪽으로도 전설을 쓰긴 했군요. 맥주 반잔에 취하는 놈이 세상에 흔치는 않으니까요.
Commented by 야스페르츠 at 2009/01/22 09:22
하하... 저는 술마신 다음날에 전설을 썼다는.... 마실 때는 별일이 없는데 숙취가 심해서... ㅡㅡ;
Commented by 소시민 at 2009/01/22 10:26
저도 최근 책지름의 유혹에 빠져든 것 같습니다. 이번에 한번에 9만원을 투자했습니다...

저는 이전에 도서관에서 읽고 괜찮다 싶은 책들을 산다는 주의를 견지하랴고요...

이미 게임에서 한단인님과 같은 난감한 상황에 빠졌으니 책에서는 이와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려 합니다.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01/22 17:09
쿨럭..게임..
Commented by 耿君 at 2009/01/22 10:59
괜찮아요 포기하면 편해요!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01/22 17:08
그..그럴까요..;;
Commented by leopord at 2009/01/22 11:50
흐름을 하나 정해놓고 죽 따라가보는 것도 좋지 않을런지요? 기왕이면 경제 하나만 잡게서 뭐 이렇게;;;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01/22 17:10
음..그런데 그게 잘 안되더군요.;;;
Commented by 自重自愛 at 2009/01/22 14:14
[폭력과 상스러움]은 진중권씨가 기존에 써 뒀던 글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어야 재미있을 겁니다. 지적 유희(?)가 너무 지나친 것도 진중권식 글쓰기의 단점 중 하나라는 생각.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01/22 17:08
사전지식이라..확실히 그런거 같군요.
Commented by 두막루 at 2009/01/22 23:37
저도 책을 사놓고도 정작 정독을 별로 못했습니다. 그래서 책 사는 것에 좀 제동을 걸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책이 품절, 절판될까봐 좀 걱정되기도 합니다.;;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01/22 23:38
책 절판될까 겁나서 산 책도 꽤 되는 군요. 그렇지 않아도 호미바바의 '문화의 위치'는 제가 읽기에는 아직 벅차긴 했지만 품절 위기란 얘기가 떠돌아 사버렷지요. 아니나다를까 제가 산 책이 마지막이더군요. 그때는 ㅎㄷㄷ 했었다능..
Commented by 나츠메 at 2009/01/23 05:40
1. 오오 책덕후 오오. 에고 탄환이 없어서 빌려 보는 저야 뭐.... ㅠ.ㅠ 음.... 한단인 님은 속독이 되시는 거 같아요. 저는 속독이 안됨 + 난독증이라 책읽기가 힘듬.

2. 저도 아는 게 없지만, <식민지 근대화론>은 크게 국내와 국외로 나누어 집지요. 그 중 국외의 식민지 근대화론, 즉 <콜로니컬 어프로칭>을 대표하는 책이 <<한국의 식민지 근대성>>입니다. 국내의 식근론인 <<해방전후사의 재인식>>과 논지가 약간 다르니 비교해서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01/23 05:48
1. 책 덕후라뇨? 그게 뭔가요? 그거 무섭군요?(응?)

...슈타인호프님 같은 분들도 있는데 저에게 그런 표현은 가당치도 않.. 저도 탄환이 없어서 주로 도서관에서 빌려 봅니다. 그리고 반도 읽지 못하고 다시 반납..(먼산) 단지 책 지름신이 자주 강림하여 딴데 돈 안쓰고 거기에 몽땅 때려박는 거지요. 전 술 담배를 안하니 다른데 나가는 돈은 없거든요.

그리고 저 속독 절대 아닙니다. 글 읽는 속도가 대단히 느려요. 단지 난독증끼가 좀 있어 글을 대강대강 훓어 보는 버릇 때문에 그때 그런 일이 가능했던 겁니다. 그래서 옛날에 남의 글 잘못 읽고는 헛소리를 많이 했어요. 진짜 속독하고는 좀 다른 거지요.


2. 아..또 그런 차이가 있군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은 아직 접해보진 못했습니다. 기회되면 비교해서 읽어봐야겠군요.
Commented by 초록불 at 2009/01/23 17:42
인문학 책들은 통독을 해야 읽었다..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필요할 때마다 들여다보면서 읽어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무문자사회의 역사를 보니, 재밌네요. 저 책은 읽다가 잃어버려서 다 읽지 못했던...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01/23 20:27
에..전 앞뒤 문맥이 이어져야 그나마 이해를 하는 타입인데 또 제가 건망증 말기 환자인지라 필요할때마다 필요한 부분만 찾아보면 앞 내용을 까먹고는 '이게 뭔 소리야?' 이럽니다. 데헷~

고대사 책들은 말씀하신 것처럼 읽는데 별반 불편함을 못느끼는데 고대사 외의 인문 서적들은 보면 죄다 저런 현상들이..

...독서의 폭이 짧았던 탓이겠죠 뭐..

무문자 사회는 제가 읽은 부분까지는 재밌었죠. 그 뒷부분부터 무슨 말인지를 이해를 못해 넉다운해서 문제였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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