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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분향소의 표정, 그리고 상념

시내에 볼일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저녁 즈음에 분향소로 향했다.

뭐.. 사실 볼일이 아주 없었던 것도 아니었고..






분향소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7시 즈음, 2시부터 대구 2.28 공원에서 추모행사가 벌어지고서 5시간이 지난 시점에서도 헌화하러 온 시민들의 줄은 생각보다 짧진 않았다.

헌화하는데 줄서서 기다린 시간은 20분 남짓, 반노감정이 꽤나 있는 도시에서 고사리 손을 잡고 가족 단위로 헌화하러 온 사람들이 꽤 많이 보였다는 것에서 여러가지 상념이 교차한다. 바로 그 시각 불과 5분 거리에 있는 동성로에서는 연례 행사인 동성로 축제가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렴풋이 들려오는 축제 소리와 상점 호객꾼의 호객소리, 그리고 분향소 바로 앞 버스 정류장에서의 찻소리가 뒤섞여 들려오는 2.28 공원에서의 헌화 의례는 뭔가 모순적이었고 그래도 일상은 흘러간다는 상념에 빠지게 된다. 나조차도 그랬으니 누굴 욕하고 말고의 게제는 아니었다. 그래도 작은 분향소에 찾아온 사람들이 제법 있다는 점은 딱히 규정하기 힘겨운 부끄러움에 대한 위안이 되게 한다.


헌화를 하고 나서 있던 볼일을 보려 잠시 분향소에 머문 눈길을 거둔 뒤 촛불추모제를 지내려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분향소를 빠져나왔다. 대략 3시간 남짓 정도 시간이 지나 볼일이 다 끝나고서는 다시 찾은 분향소에는 처음 분향소를 찾았을 때만큼의 줄이 그대로인 채로 사람들을 맞고 있었다.

(마침 찍은 사진이 집에 와서보니 찍혀있지 않은 상태, 뭔가 아쉬웠다.)






볼일 끝나고 난 뒤 찾아간 분향소 앞에는 도착하기 불과 2~30분 전 쯤에 끝이 난 촛불 추모제의 흔적이 늦은 시각에라도 헌화하려는 사람들의 길을 밝히려는 것인지, 아니면 떠나간 그의 넋이 길을 잃고 헤메이질 않길 바라는 것인지는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무언가의 바램을 담고 남아있었다. 다시 사진을 보며 뒤늦게 드는 감상으로는 저 촛불 길이 한치 앞을 알수 없는 우리들의 앞날을 밝힐 이정표이길 바랬다.


그리고 그나마 대구에서는 이런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모르는 짓거리가 내 눈에 띄진 않았다. 천만 다행이다.









그랬다면 겁쟁이인 나도 어떻게 돌변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지...



덧. 사실 어제 대한문 분향소를 찾았다가 전경에게 포위당했던 아는 동생의 문자를 받고 난 후라 조금 쫄아든 마음을 가지고서 나름 긴장하며 분향소로 향했는데 그런 일은 벌어지진 않았다.

작년 촛불 시위 때도 비겁하게 방구석에 누워만 있었는데 소심한 나는 1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소심하고 겁쟁이다. 사실 헌화할 자격도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간 것은 가슴이 바위를 눌러놓은 마냥 계속 무겁고 답답했기 때문이다. 어제 하루의 충격 속에서도 이런 저런 평상시의 일상을 보내면서 스스로 느낀 모순적 행동이 내 가슴을 짓눌러 왔기 때문이다. 사실 내 마음 조금이나마 편하자고 한 비겁한 짓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분향소 바로 옆에서 축제를 즐기며 깔깔대는 사람들에 대한 눈 찌푸림조차도 나에게 허용되지 않음에 나는 부끄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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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단인 | 2009/05/25 00:06 | 시사 | 트랙백(1)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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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한단인의 빈수레 at 2009/05/26 12:36

제목 : 남의 일, 그리고 변함없는 일상의 반복
대구 분향소의 표정, 그리고 상념 그 특수한 상황.. 즉, 정신적인 충격과 인적 피해의 규모에 비해 물적 피해가 거의 없었단 낙차는 1월 5일 시무식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 일본, 특히 수도권 내 사람들 사이에 두 가지 기묘한 특징으로 나타났다.이만한 대재해면 세계적인 대사건, 사람들의 충격은 컸고, 당연히 시시각각 갱신되는 뉴스에 모두가 예민하게 촉각을 기울였다.한편, 20여만 명의 행방 불명자는 수도권 인구로서도 수십 명에 한 명 비율, ......more

Commented at 2009/05/25 00:1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05/25 00:24
분향소 바로 근처에서 벌어지는 축제를 지나치면서 '그래도 일상은 흘러가는 구나' 하는 상념이 제 머리 속을 뒤집어 놓더군요.
Commented at 2009/05/25 00:2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05/25 00:35
개인적으로는 축제가 벌어지는 동성로에서 좀 떨어진 곳에 분향소가 있었으면 했습니다.
Commented by 소시민 at 2009/05/25 00:37
저도 오늘 덕수궁 분향소에 다녀왔습니다. 조문객분들이 정말 많더군요. 여기에 전경의 통로 통제까

지 있어 역에서 내리고 분향소에 이르기 까지 4시간이나 걸렸습니다. 다시 한번 노 전 대통령의 명

복을 빕니다.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05/25 00:41
음..어제만이 아니라 오늘도 통제를 했군요. 어쨌거나 수고하셨습니다. 저 또한 다시 한번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
Commented by sksna at 2009/05/25 18:22
제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소심했던 내모습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05/26 12:52
누구나에게나 있을 법한 일상입니다. 일단은 부끄러움을 인지했다는 것에서 위안을 삼아야지요
Commented by leopord at 2009/05/26 12:43
그래도 수고하셨습니다.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05/26 12:51
사실 전 헌화드릴 자격도 없었어요.
Commented by 소하 at 2009/05/26 23:47
저도 3시간을 기다렸습니다...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05/27 08:00
수고하셨습니다. 3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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