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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 전환에 대한 사소한 뻘소리들

이란 대선 시위, 남의 일이 아니다

트랙백 걸린 글에서 노정태님이 쓴 물음에 대한 답을 하려는 건 아닌데.. 꽤나 생뚱맞은 원론 얘기겠습니다만 문득 예전 일이 생각이 나서 그때의 기억을 조금 정리할 요량으로 써봅니다. (게다가 3류 역덕이 시류 얘기를 해본들 제대로 된 얘기를 할 수 있을리도 없고..)

[무언가를 ‘축제처럼’ 하는 것은 하나의 방법일 뿐이지, 그 자체가 정치적 성격과 성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라는 문장이 노정태님 글에 쓰인게 눈에 띄더군요.

예전에 아는 동생과 얘기를 하다가 뭐 때문에 그런 삼천포로 빠졌는지는 기억이 가물합니다만 암튼 이녀석이 그럽니다.(아.. 뭐 그렇다고 이녀석이 운동권.. 뭐 이런 애는 아닙니다. 그저 조금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밀덕이에요. 멘슨 집권 이후에 사람이 이렇게도 바뀔 수 있구나를 얘를 통해서 알게되고보니 참 기분이 아햏햏합니다.)


"민주주의는 피로서 완성된다. 프랑스 대혁명 때가 그렇지 않았느냐? 4.19나 5.18 때도 마찬가지였다. 기득권이 말로 해서 어디 듣는 놈들이냐"


란 얘기를 하면서 촛불로는 답이 없다라는 식으로 얘기를 하길래 제가 그런 얘기를 했지요.


'간디의 비폭력 불복종이 대영제국한테 씨알이 먹힌 건 그럼 어떻게 설명해야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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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그녀석이 암말을 안하더군요. (물론 비폭력 불복종 사례는 좀 복잡한 요소들의 개입이 있어 인용사례로 언급하긴 좀 아햏햏한 면이 없잖아 있긴 합니다만..)

뭐.. 특수성이니, 예외적 상황이니라는 말로 비폭력 불복종 사례를 넘기면 될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어요. 무언가를 바꾸기 위한 방법이 반드시 '피', '운동', '폭력', '행동' 이란 구호가 문제 해결의 보편적 답일 수 있을까 하고 말이에요. 체제 전환 요소에 그런 것이 도리여 특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상 체제 전환을 위해 일어났던 밑으로부터의 유혈행위가 성공한 사례는 대단히 적은 편입니다. 그 중에 프랑스 대혁명은 어떻게 보면 우연히 조건이 딱딱딱 잘 맞아떨어져서 성공한 사례라고 하겠죠. 물론 4.19나 68 혁명 역시 마찬가지겠습니다. 그 사례가 성공으로 귀결된 것에는 여러가지 요소가 있을 것이고 그 요건 중에 실질적으로 '폭력'의 힘이 가지는 비중은 분명히 컸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만이 요건은 아니었겠죠. 이러저러한 정치적 역학 구조나 명분, 기득권층이 보유한 실질적 힘, 외부의 압력 정도, 사회 기층의 암묵적 인정 등 여러가지가 개입되어서 성공에 필요한 임계점을 뚫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유혈 행위를 통해 체제가 어느 정도 전환된 가장 최근 사례는 전또깡이 물태우를 허수아비 삼아 장기집권하려던게 실패한 일이겠죠. 그럼 20년 전과 지금은 상황이 같은지 되물어봅니다. 저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고, 그때 그녀석도 그때와 다른 변수에 대해서 고려해봐야하지 않겠냐라는 제 얘기에 공감해주더군요. 자발적으로 정권을 비호해주는 막장 언론의 존재나 정치적으로 파편화, 원자화된 대중, 그리고 '가시적인' 폭력과 억압이란 것에 대단히 민감해진 명분의 시대,,

무엇보다 80년대 중반에는 아직까지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되진 않은 시점입니다. 부칸도 지금처럼 추하게 체제를 유지하던 때는 아닌 만큼 '운동'이 암류에서 관념적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시대와 지금은 좀 다르겠죠. 어느덧 운동이 인기가 있었던 시대와 지금은 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때의 방법들이 지금에서도 통할지는 의문이겠죠.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그녀석에게 카운터를 날릴 요량으로 들어가는 '변수가 바뀌거나 보다 복합적으로 추가가 되었는데 예전 문제에 썼던 공식만을 되풀이하면 답이 나오겠냐란 얘기를 덧붙였지요.(응?)

무엇보다도 체제 전환에 일어난 행위들 중 '유혈'에 의한 것은 꽤나 소수였다는 점을 상기할 때 유혈은 방법론 중에 '하나'였다가 근대 이후로 '보편'인양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얘기했지요. 때문에 '피', '폭력', '행동', '운동' 이란 구호가 체제 전환에 대한 답이 된다는 얘기에는 심정적으로 끌리지만 동의는 못하겠단 얘기를 그녀석에게 했습니다. 폭력만이 답은 아니니 거기에 집착하고 그것에만 매달리면 도리어 문제해결에 장애가 될 수도 있을거다.. 그러니 일단 '폭력'은 하나의 '사례'에 불과한 것이란 걸 잊지 않고 길을 찾아봐야 하는게 우선이지 않을까라는 식으로 그 얘기는 결론을 맺고 또다른 삼천포로 빠진게 그날 일의 전부입니다.


무엇보다 기득권층도 일단은 사람이니까.. 라는 얘기에는 그녀석이 심드렁하게 받아들이긴 했습니다만..


그때의 일이 그렇게 생각이 났습니다. 위에 표시된 정태님이 쓴 문장 하나를 보다가 말이죠. 언급된 '축제'가 답이 되지도 않듯 '힘'도 역시 유일한 대안은 아닌 거 같습니다.

제가 게으름뱅이에 겁쟁이라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뭐야 이자식아?)


추가 : 소시오님이 인용한 최장집 교수의 다음 글(http://socio1818.egloos.com/3704046)을 참조하면  이 글을 쓴 본햏도 '운동'정치에 대해 일정한 환상을 전제하고는 어설픈 정치공학적 난제만을 지적했을 뿐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민중을 정치주체로 만들려는 운동이 되려 민중을 정치로부터 소외시키는 역설을 생각할 정도의 깜은 전혀 없었던 거죠. 즉, 어설픈 계산적 인간의 찌질한 행태일 뿐이지요.

다만 저로서는 정당정치로의 건전한 진입이 계기가 주어진다고 해서 바로 실현될 수 있는 성격인가 하는 문제는 또 별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미국의 양당제에서 나타나는 정당의 대중동원 사례를 생각한다면요. 미국의 최근 대선이 일종의 미디어 쇼에 가까운 형태로 발전된 양상이 있으니까요. 하긴, 거기는 상대적으로 운동의 역사가 두드러진 곳은 아니긴 했죠.(그렇다고 뭘 제대로 알고 지껄이는 것은 아니겠지만요.) 계기를 만들고 계기가 주어졌을 때 시민들이 '구체적'이고 '미시적' 사안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정치화될 수 있는가, 위에서 만들어준 정책들을 선거 때만 '표'로서 선택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스스로 고민하고 '요구'하고 합의하여 위와 아래가 함께 정책을 도출해낼 수 있는가, 하는 경험의 맥락이 이뤄져야 할 겁니다. 최장집 교수가 본문에서 언급한대로 5.18의 현재적 요구가 언명하는 바가 바로 그것이겠죠.



덧. 3류 역덕의 멋도 모르는 옛 기억의 반추이니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고보니 제가 말주변이 없는터라 횡설수설 하긴 했군요.


이러셔도 솔직히 할말은 없군요.(응?)

이거시 3류 역덕의 한계...(어?)

by 한단인 | 2009/06/19 00:25 | 사색 | 트랙백 | 덧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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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rumic71 at 2009/06/19 11:01
사실 오늘날에는 '피'나 '힘'보다도 '돈' 이지요. 인도 독립도 결국은 전쟁 치르면서 영국이 개털린 결과이고.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06/19 12:18
그건 그렇지요. OTL
Commented by Wizard King at 2009/06/19 20:39
흐흐 잘 읽었어요. 근데 마지막 짤방 ㅋㅋ 적절하고 귀엽군요.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06/19 20:56
별 얘긴 없었는데요 뭘.. 제목처럼 사소한 뻘소립니다. ㅎㅎ

3류 역덕에게는 기대할게 별로 없(...)
Commented at 2009/06/19 22:1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06/19 22:49
엉엉~ 이제야 말씀하시면 어쩌냐능~

내일은 토요일이라 우체국 문 안여는데.. OTL

방촌동에 사시면 제가 아양역 근처에 사니 직접 전해드리는 방법도 있다능..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06/20 01:13
박노자 선생님 블로그는 즐겨찾기 등록만 해두고 게을러서 거의 가보질 않는 편인데 최근에 이런 글을 쓰셨군요. 잘 읽었습니다.

뭐.. 저도 기본적인 논지에는 동감을 하는 편입니다. 솔직히 제가 저 위에 쓴 얘기는 뻘소리에 가까운 원론적인 얘기에 불과하죠. 근데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비폭력 옹호를 말하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방법론 상에서 반드시 '폭력'만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행위의 당위성을 따지는 문제가 아니라 계획의 실효성 문제를 생각해보고 싶었던 것이죠. 박노자 선생님은 악인이 악과가 된다고 하셨는데 그 말을 뒤집어보면 폭력으로 인한 반동이 어느 순간에 찾아오게 될지는 알 수가 없다는 점을 생각해볼 수 있지않나 싶습니다. 홍위병 사례는 좀 더 장기적으로 찾아온 것이지만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보다 단기적으로 악인이 악과로 발현될 경우가 염려된 것이었습니다.

사실 폭력이라는 방법은 어떻게 보면 가장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일지 모릅니다. 근데 제가 집안이 불교집안이라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과'에 대해서는 대단히 민감한 편이라 어떤 일에는 어떤 식으로든 '댓가'가 돌아온다는 사실을 항시 염두에 두고 살거든요. 그래서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론 중에 효율상으로는 가장 빠른 결론을 낼 수 있는 폭력이란 방법이 어떤 식으로든 리스크를 안고 나타날 가능성에 대해서는 꽤나 염려스러운 것입니다. 20년 전과는 보다 변수가 많아진 지금에서는 그 리스크나 반동이 언제 등장할지 알 수 없고 행위 실행 도중에 그게 등장해서 체제 변혁의 불길을 잠재울 변수로 자기 촉매할 가능성을 기우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걱정을 안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뭐..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근다는 얘기를 하셔도 할 말은 없긴 합니다만.. 그런 이유로 폭력이란 방법에 대해서는 행동 자체의 도덕적 당위를 떠나서 조금 신중해지게 됩니다.


간단히 얘기해서 방법이 '하나'일 수는 없으니 다른 길도 생각해 보자는 얘기였습니다. 좀 두서없으려나요?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06/20 01:15
아이고.. 이정민님. 댓글을 지우셔서 이렇게라도 남깁니다.
Commented by 이정민 at 2009/06/20 01:18
다시 글 올리느라 지웠습니다. 밑에 다시 글 남겼습니다.
Commented by 이정민 at 2009/06/20 01:15
안녕핫요 한단인님 전 진보신당 당원입니다. 이번에 한단인님이 쓰신 글과 관련해서 박노자 교수가 쓴 글이 있는데 이글에 데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21421 . 짧게 말씀드리자면 산업혁명 당시 자본가들은 8살난 아이들이 24시간 하루종일 석탄,철광석 공장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일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메이데이의 시초인 미국 노동자들의 시위인 헤이마켓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대가 변했어도 본질적인건 안변했다고 생각합니다. 시위라는건 축제할려고 하는게 아니라 지배게층에게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함입니다. 당장 이명박 정부는 촛불시위에 데해서 전여 두려움을 못 느낌니다. 그러니까 저러는거지요 프랑스에서는 자신의 임금을 깎는다니까 고등학생,대학생이 다 들고일어나 정부를 굴복시켰습니다. 순순이 말로 해서 역사상 뭔가 이루어 진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죄송하지만 그건 기회주의자들도 그런말을 합니다. 물론 한단인니미 그런다는게 아님니다. 다만 대가를 치루는게 두려워서 타협을 한다면 진보란 없다고 봅니다.

글 복사가 안되어서 따로 기사 하나를 올림니다.

[송경아] 지금은 폭력시위가 선진시위다
지금은 폭력시위가 선진시위다

세상사 2008/12/28 22:49

2008년 12월 말인 지금까지 비폭력 평화시위가 선진적이며 발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여러분, 당신들은 모두 틀렸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폭력시위야말로 선진적이다.

비폭력 평화시위가 선진적인 것은 '비폭력'이나 '평화'에 무슨 대단한 특권이 있어서가 아니다. 비폭력 평화시위가 선진적인 것은 그 사회가 비폭력 평화시위로도 시위가 주장하는 바를 접수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원래 시위란 군중이 모이는 것이고, 군중이 모이면 폭도가 되고 질서가 깨진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리고 하나의 이슈로 군중이 얼마나 크게 모이느냐는 그 이슈가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느냐, 사회가 그 이슈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느냐로 자연스럽게 치환된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결정이 이루어질 때면 군중이 크게 모였고, 그 결정에 반대하는 집회일수록 폭력이 뒤따랐다. 지배층은 피와 총탄으로 탄압했지만 자기들도 찔리는 바가 있었다. 일단 자기네 재산과 (가끔가다는) 생명도 위협을 받았고, 이 폭력이 끼치는 피해를 고스란히 맞받느니 미리 어느 정도 양보하는 것이 이익임을 깨달은 것이다. 왜냐, 탄압하면 폭력은 더욱 거세고 질겨지고 피해는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발전과정이란 지배층이 이것을 깨닫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였다. 아 솔까말 지배층이 1의 피해를 입게 하기 위해서 피지배층은, 민중은, 시민은, 뭐 하여간 뭐든 간에 힘없는 사람들은 10에서 100, 천, 만의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도 무시무시하게 물고 늘어지는 군중을 보면서 지배층은 깨달았던 것이다. "아! 웬만하면 쟤네들이 이정도 모였을때 대충 타협안 들고나와야 하는 거구나."

그렇다. 이것이 선진사회의 정체이다. 선진국이란 "씨발 폭력시위 무섭삼 사람 그만큼 모였으면 요구사항 걍 반쯤은 들어주겠으니 우리 여기서 타협하삼"을 지배층이 체화한 나라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도 이런 알흠다운 전통이 있었다. 물론 피로 키워온 전통이었고, 그만큼 우리는 선진적이었다.

그 전통이 어디서 깨졌는지는 불명확하다. 어느 분은 이른바 '잃어버린 10년' 동안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그 전통이라고 하고, 나는 2002년 월드컵 때 오십만 백만이 모여도 아무 해 없이 흩어지는 모습을 보인 것이 문제였다고 생각하고(그렇다! 우리에게는 훌리건이 필요했던 것이다! 세계가 우리를 놀라서 본 게 뭐 잘났다고 놀라서 본 게 아니었던 것이다!) 또 어떤 지인은 탄핵 정국때 얌전히 집에 돌아갔던 게 문제라고 한다. 언제가 기점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하여간 그 전통은 동네 여인네들이 경배하던 우뚝 솟은 남근석이 한번씩 은근슬쩍 문지르는 손길에 가루가 될 때까지 처절히 까여서

(바람직) 사람이 마구 모인다 -> 지배층 겁먹는다 -> 타협안 제시한다 -> 군중 속에서 약간 분열 일어난다 -> 타협안 그냥저냥 받아들여진다 -> 폭력사태 없고 타협안 정도에서 타결나서 아쉬운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대로 받아들여진다

에서

(지금 현재) 사람이 마구 모인다 -> 모여봤자 MB 기타 등등은 거북이처럼 청와대에 납죽 엎드려 버틴다 -> 변하는 바가 없자 사람들, 모이면 폭도가 될수있다는 본분을 망각하고 '어? 이제 우리 어째야 하나?' 하고 우왕좌왕한다 -> 종교계에서 선의로 나와서 정리를 한번 해주신다 -> 아 종교계까지 나왔으니 다 잘 될거야 하고 다들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간다 -> 정말 근성 질긴 사람들과 핵심 불평분자들(도대체 이 정권에서 누가 불평을 갖지 않을 수 있으리!) 빼고는 큰 행사 아니면 외면한다

로 변질되었다. 완전 변해서 팩 입구에서 뭉글뭉글 뭉쳐나오는 우유의 잔당처럼. 혹은 엘리베이터에서 '내가 아직도 네 엄마로 보이니?' 하고 돌아서며 씨익 웃는 달걀귀신처럼.

자, 여기서 끊긴 고리는, '민의는 폭력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능성이다!

쟤네도 바보 아니다. 한때 사람들이 화내는 게 그 규모로 4년 후 선거까지 이어질 거라고 생각 안한다. 또 이어진다 한들 그때까지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그때까지 어떤 이미지 조작을 할 수 있을지 모르는데 당장 자기네 스탠스를 양보해가며 굳이 4년 후의 불확실한 표를 잡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서울 도심에 모이는 거, 기껏해야 50만 백만이다. 그들이 정말로 몽둥이와 식칼과 횃불을 들고 강부자도 고소영도 다 때려잡고 찔러죽이고 불태워죽일 수 있다는 거 보여주기 전에는....타협이란 없다. 그래서 자기네 지지기반인 줄 알았던 강부자와 고소영들이 '야 웬만하면 좀 내줄 거 내주고라도 우리 맘놓고 살게좀 해줘' 하고 우는 소리를 하기 전까지, 우리가 얻어낼 바는 없다.

그래서,

2008년, 그리고 아마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대한민국에서, 선진 시위는 폭력시위다.

꽃병과 쇠파이프는 이미 금기가 아닌 추천사항이다. 청와대 앞에 민중의 탱크가 진군하는 그날, 대한민국에는 평화와 번영과 자유가 올 것이다!(이것은 한때 청년기자들의 전설이었던 몽골유목민족의 전사 월간조*의 조**옹 말씀을 빌린 것입니다)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06/20 01:23
제가 말하려던 '댓가'는 그런 종류가 아닙니다. 제가 설명을 제대로 할 요량이 못되는데 요는 그 '댓가'로 인해서 체제 변환의 목적이 실행되지 않을 가능성을 얘기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방법이 한가지에만 머무르게 된다면 그에 대응하는 것이 뻔한 메뉴얼에 의해서 대응된다는 점에서 방법론을 좀 더 다양하게 구사해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얘기지요. 그래서 촛불에는 거는 기대가 꽤 있었습니다만.. 결과가 썩 좋진 않긴 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한국고대사나 야매로 공부하던 3류 역덕이라서 '진보'라는 것에 대해서는 대단히 미숙합니다. 솔직히 이 글도 뻘소리에 가까웠던 것인데 관심을 보여주셔서 감사하다는 말 밖에는...;;;
Commented by 이정민 at 2009/06/20 01:29
한단인님이 무슨 말씀하시는지 알겠습니다. 제가 여태까지 느낀건 폭력외에 지배계층이 들을 말한 떡이 보이지 않아서입니다. 저도 폭력을 싫어하지만 불가피한 경우는 어찌 할것인가가 문제라고 봅니다. 전 축제같은 시위는 이미 광우병 시위 이후 실패했다고 봅니다.

이번 노무현 대통령 추모때 보면 알겠지만 경찰들도 막 나가는것은 대중들의 평화로운 시위가 자기들에게 별 피해가 안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단인님 말씀에 저도 동감합니다. 지금 시대에는 폭력이 잘 안통합니다. 그래서 고민입니다. 방법은 하나인데 쓰기가 어려우니까요 진보진영의 딜레마입니다.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06/20 01:32
뱀발을 하나 더 붙이고 싶은데...

체제를 변환시키기 위해서는 기득권이 그렇게 하게할만한 무언가를 건들여야겠지요. 그래서 그 기득권이 가장 겁내하는 것, 살짝만 찔러도 급소가 되는 곳을 찾아 한방에 푹 쑤셔주는 것이 방법이겠죠. 그 방법이 폭력이 될 수도 있겠지만 다른 방법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얘깁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폭력이 도리어 역린을 건드리는 경우가 될 수도 있겠지요. 저는 그걸 걱정하는 겁니다.

그리고 저는 폭력의 반대항으로서 '비폭력'을 두어서 사안을 이분법적으로 보려하지 않았습니다. 비폭력은 단지 절대항으로서 기능하던 '폭력'이 절대항이 아닐 수 있다는 걸 증빙하려는 하나의 '사례'였을 뿐입니다. 그 점은 오해가 없으셨으면 싶습니다. 정말로 그게 방법이라면 당위성을 떠나서 폭력이라도 필요하다고 저도 생각은 합니다. 하지만 그게 정말 정답이 될 수 있을지를 회의하는 것이지요.

저는 방법을 모르지만 다른 영민하신 분들이라면 그 방법을 찾아내실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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