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6월 25일
잡담 70 - 이래서 말이란 무섭다.
그놈의 요사지리지 떡밥.. - 복기대 선생님.. 뭔가 안습.. 아아아..
1. 크게 의미를 두고 한 표현은 아니었는데 타인이 보기에는 굉장히 심각한 표현일 수 있는게 간혹 있죠.
2. 쓸 때는 저도 그렇게 의미를 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인강 한편 보고 난 뒤에 잠깐 쉴 요량으로 블로그에 들어와서 간단하게 남기다가 적당한 표현이 생각이 안나서 대충 쓰고 나왔는데 오늘 두분의 댓글 달린 걸 보고 제가 참 실수를 했구나 싶습니다.
일단 그 두분께는 제가 간단한 글이라도 신경써서 쓰지 않은 것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생각하시는 의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3. 그 글을 쓴 것은 개인적으로 면식도 있고 배움도 얻었던 고마운 분이 저렇게 되신 것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깔려는 의도거나 덮어두고 두둔하려는 의도는 아니란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전자가 되시는 분께는 그래도 학자로서 그 실수가 가볍지 않음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그리고 후자되시는 분께는 학문하는 학인도 일단은 '사람'이라 잘못 하나에 그 사람 전체를 규정해버리고는 하루아침에 돌아서서 비난하는 것은 해당 분은 물론 과거 자신에 대한 예의도 아니겠기에... 라는 변명만을 할 밖에요.
4. 이런 걸 두고 필화라고 하지요? 확실히 의도를 떠나서 말은 조심해서 써야 될거 같군요.

1. 크게 의미를 두고 한 표현은 아니었는데 타인이 보기에는 굉장히 심각한 표현일 수 있는게 간혹 있죠.
2. 쓸 때는 저도 그렇게 의미를 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인강 한편 보고 난 뒤에 잠깐 쉴 요량으로 블로그에 들어와서 간단하게 남기다가 적당한 표현이 생각이 안나서 대충 쓰고 나왔는데 오늘 두분의 댓글 달린 걸 보고 제가 참 실수를 했구나 싶습니다.
일단 그 두분께는 제가 간단한 글이라도 신경써서 쓰지 않은 것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생각하시는 의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3. 그 글을 쓴 것은 개인적으로 면식도 있고 배움도 얻었던 고마운 분이 저렇게 되신 것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깔려는 의도거나 덮어두고 두둔하려는 의도는 아니란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전자가 되시는 분께는 그래도 학자로서 그 실수가 가볍지 않음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그리고 후자되시는 분께는 학문하는 학인도 일단은 '사람'이라 잘못 하나에 그 사람 전체를 규정해버리고는 하루아침에 돌아서서 비난하는 것은 해당 분은 물론 과거 자신에 대한 예의도 아니겠기에... 라는 변명만을 할 밖에요.
4. 이런 걸 두고 필화라고 하지요? 확실히 의도를 떠나서 말은 조심해서 써야 될거 같군요.

라고 말씀하셔도 할 말이 없네요.
분명히 제 실수입니다.
분명히 제 실수입니다.
# by | 2009/06/25 20:36 | 일상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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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짢은 기분이 남아있으시다면 복기대 선생님이 발표한 논문의 내용을 소개하고 비판적으로 읽어보는 글이라도 한 편 써보시죠. 저는 고대사를 잘 모르는지라 말하기가 좀 어렵긴 한데, 한단인 님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요사지리지가 사료로서 활용가치가 적다는 점을 많이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학술논문에서 그것을 활용했다면 어떤 논거는 있는 거 아닌가요?
논문 발표가 며칠 전에 된 것이라서 언제 구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요사지리지와 원사를 인용했다는 것에서 대략 어떤 부분을 인용한 것인지는 짐작은 갑니다. 하도 예전에 사료라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데 아마도 평양에 세워진 안동도호부가 시간을 두고 다른 지역으로 이전되는 중 요양에 잠시 안동도호부가 이전해 있던 것을 두고 요사지리지 편찬자가 평양=요양으로 착각하고는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안동도호부 이동에 대해서는 이곳을 참조 - http://shaw.egloos.com/1828258)
복선생님이 문헌사학자가 아닌 고고학자라서 요사지리지 취약성에 대해서는 몰랐을 수도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명색이 학자임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사료비판을 하지 않은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이긴 한듯..
요사지리지의 경우는 제가 선생님 글을 본지 하도 오래되서 봤었는지도 기억이 가물한데 그런 것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발해를 멸망시키고 그 유민들을 무릎꿀리려면 그런 의도도 있었겠지요.
그런데 요사 편찬자가 원나라 말기 사람이라 그런 의도가 요사 편찬 당시에도 요대의 그런 의식이 배여있을런지 장담할 수 없었던데다 요에서 기록을 정밀하게 했다라고 보증할 수 없는 만큼 그렇게 생각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