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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군 떡밥에서 주의해야할 전제들

http://cafe.daum.net/alhc/ALGC/3175

읽다읽다 참기 어려운 순간이 가끔씩 찾아올 때가 있다. 어지간하면 귀찮아서 쓰지 않을 일이지만 보다보다 할말이 없다보니 게으름을 무릅쓰고 중언부언하는 비루한 글임에도 쓰게된다.

워낙 진부한 주제라 다시 꺼내기도 민망한 한사군 위치 떡밥이지만 계속 언급이 되는 것이니 그래서 떡밥일 것이다. 떡밥인 고로 사람들이 낚이는 건 어쩔 수 없다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당시 상황에 대한 판단을 하는데 있어 '자신의 상식'에 근거한 전제나 가정 들 중 자주 오해하기 쉬운 부분에 대한 지적을 하고 넘어갈까 한다. 물론 개인적 경험(본햏이 아주 미숙했을 때 항상 벌인 실수들)에 의거한 것이고 아주 일부분이기 때문에 단편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은 어쩔 수 없음을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전제 1. 한나라 식민지 낙랑군과 독립국가 낙랑국은 동시대 동일 지역에 공존할 수 없다.

=>고로 두 지역은 멀리 떨어져있고 낙랑국은 현 평안도 지역에, 낙랑군은 만주, 혹은 중국 대륙에 있다.


위의 전제는 '지배 주체'와 '체제'가 다르면 이는 동시대 동일 공간에서 공존할 수 없이 따로 존재해야한다는 발상에서 비롯된다. 고로 한 지역에서 A 계통의 문화유물이 등장한다면 B 계통의 지배가 관철되지 않은 근거로 활용한다. 때문에 서북한 지역에서 한사군 시기에 고조선계 유물의 출토가 대다수를 점하고 한계 유물유적이 적게 나온다면 한 공간에 이원적인 체제가 중첩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는 단순히 문화전파의 흔적에 불과한 것으로 해석, 이 지역을 낙랑국으로 보고 이를 한사군 대륙설의 주요 입론으로 삼는 경향이 많이 발견된다. 그러나 이 관점은 근대 영토국가의 관념을 국가관의 당연한 상식이라고 한 것에 근거한 오류로서 어느 한쪽이 누군가를 정복하면 반드시 그 체제와 문화가 고스란히 복제되고 이전의 고유 문화는 사멸하게 된다는 식의 논리로 발전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문화전파 양상이 이렇게 단순하게 진행되는 식이라면 고고학의 도움없이 역사학자들이 발굴해서 대충 해석하고 때우면 그만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떤 학문이든 그렇겠지만 고고학자들의 치열한 학설 싸움은 비전공자들이 대충 눈 대중으로 덤비기에는 변수가 많이 개입함을 간과해선 안된다. 이미 그것은 학자들의 머리에서 변수의 계산이 끝났기 때문에 '아마추어같이 굴지 않고' 몇개의 단어와 정황을 언급하는 것으로도 상대방이 무슨 추론을 하는 것인지를 대략 다 알아채기 마련이고 따라서 굳이 세세한 것을 아마추어처럼 언급하지 않을 뿐이다. 관전하는 비전공자들이나 아마추어들은 자신이 보기에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보이는 것이지만 말이다. 학자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바보가 아니다.


잠깐 삼천포로 빠졌는데 문화전파같은 인류학 얘기나 고고학 얘기는 어차피 본햏도 비전공자인고로 자세한 얘기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근본 전제인 국가관에 관한 얘기로 돌아가서 논의를 전개해보자. 근대 국가관에서는 대체로 1국가 1체제가 당연한 상식인 것으로 생각된다. 한 국가 안에 이중적인 체제가 공존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근대의 주류 국가관에 불과하다. 그것도 우리는 중앙집권형 국가에 익숙한 나머지 다른 시간, 공간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무의식중에 사고한다. 따라서 그에 파생되는 사고들 역시도 그 기준은 중앙집권형 1국가 1체제에 고정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은 과거에 현재의 틀을 그대로 끼워맞추는 꼴에 지나지 않는다. 즉, 현재의 국가관을 전근대의 '변군'체제에서 동일하게 다룰 수 없음을 간과하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이 '변군'은 중국 내지에 설치된 군현처럼 일일히 관료를 통해 민을 통제하진 않는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변군은 중국 내지의 제민지배를 겪어보지 않은 (부족, 씨족적 질서)이민족을 정복해 군현을 설치한 것이다.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이라 중앙의 지원도 힘겹고 비록 지금은 정복당했다지만 생활방식, 사고방식이 다른 이민족이 언제 반발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강고한 부족적, 씨족적 질서를 깨트려가며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이유는 없다. 따라서 씨족, 부족의 장이나 현지 유력자들을 포섭하여 구슬리는 식의 간접지배가 바로 변군의 지배방식이다. 씨족, 부족을 몇개 묶어 특정 현이나 군에서 그 부족장들을 '관할', '통제'하는 형식이라는 점을 주지해야한다. 때문에 지배체제나 지배 주체는 1원적이 아닌 2원적 형태를 띈다. 지배 주체가 군 태수나 왕 1명(혹은 부족장)이 아니라 동시에 양자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가질 않는다면 다음의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간호조무사로 일하다 '왕' 된 미국인


서구의 식민지배를 거치고 독립 후 공화국의 형태를 띄었다고는 하지만 부족적 질서가 완전히 일소되지 않은 아프리카의 한 나라에서 정치 권력은 2원적으로 구성된다. 1국가 1체제 상에서 입헌군주가 형식적으로 내각을 임명하는 형태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이 공화국 내에서 '중앙정부'의 내각과 '지방'의 왕정은 엄연히 별개의 권력 준거에서 비롯되는 독립적 정치 구조를 가진다..(물론 이 기사에서 언급된 경우는 왕이 실질적인 행정권력을 행사할 수는 없게 되어있다. 초기 고구려에서 5부의 고추가들이 별도의 제사권와 관료 임용권을 갖고 있지만 교전권과 외교권을 별도로 가지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즉, 현대에도 지역과 상황에 따라 다른 지배 주체와 체제가 병존할 수 있다는 충분한 예가 된다. 하물며 전근대 변군 체제 내에서는? 고로 낙랑군의 영역 내에서 낙랑 태수의 통제나 간섭을 받으면서도 독립적인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낙랑 소국 왕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즉, 양자는 반대항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데 그렇다라고 보는 이분법적 사고 때문에 벌어지는 오해인 것이다.

정치체제에서도 이렇듯 이원적 구성이 얼마든지 드러난다면 첫번째 전제에서 파생된 문화전파의 논리 역시도 허구일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지배 주체로 등장한 한 계통의 문화유적이 굉장히 적은 것은 정복 이후에도 아직 문화적 침식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고 이런 논리 전개는 학자들에게 이미 계산이 끝난 부분이기 때문에 굳이 언급하지 않는 것이다.(이걸 일일히 쓰자니 쓰는 본햏도 참 답답하다) 고로 서북한 지역에서 다수의 고조선계 유적 발견을 낙랑군 한반도설을 부정할 근거로 삼는 것은 대단히 설득력이 낮은 얘기가 된다.




전제 2. 현재 낙랑군 치소라고 알려진 토성은 그 규모가 '수천 명'을 수용할 규모 밖에 되지 않아 '수십만'이 거주한 낙랑군 치소라고 볼 수 없다.

=>고로 한반도 낙랑군설을 입증하진 못한다. ->고로 대륙설이 맞다.(어째서?)


꼬투리를 잡아야할 곳이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까야할 지 참 난감한 전제라고 할 수 있다. 낙랑 토성이 정말로 낙랑군치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한반도 낙랑설을 부정한다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은 여기서는 중요한 게 아니니 일단 넘어가자. 이 전제는 말 그대로 사료를 읽을 때 어느 수준으로 정신줄을 놓고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여러 형태로 갈라지는데 가장 어처구니 없는 인식은 낙랑군 치소 '내부'에 수십 만의 인구 수용이 가능한 거대 규모의 성을 가정하는 형태다. 직접적으로 이 전제를 깐다면 '군의 인구=토성에 수용 가능한 인구' 가 절대 아니라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 (아마도 이런 오해를 하는 까닭에는 아래에서 설명하겠지만 대강 어렴풋이 생각하여 나타나는 논리오류거나 아니면 사료를 읽으면서 낙랑군 전체 인구가 수십만이 아니라 낙랑군 치소의 인구로 오독한 까닭도 있겠다 싶은데 개인적으로는 둘다 OTL 이라고 생각한다.)

군에는 군 치소만이 아니라 그에 딸린 현이 몇개 있고, 고로 군의 인구수를 논했다면 아주 당연한 얘기지만 그 현에 딸린 인구까지를 포함될 것이다. 물론 이 현은 현성 내부의 인구만을 따지는 것이 아니다. 또 아주 당연한 얘기이지만 성 외각에도 사람은 산다. 오히려 제한된 공간인 성 내부보다야 성 외곽에서 더 많이 살 것이다. 우리가 가끔씩 언급하는 '통일신라 금성 인구 90만' 드립이라던가 '고려 개경 인구 50만' 드립, '조선 한양 인구 20만' 드립은 성곽 내부 인구만 추산한 것이 아닌 해당 '행정구역'에 속한 인구수라는 점을 명심해야한다. 따라서 낙랑토성의 면적이 수천명 밖에 수용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인구 수십만의 낙랑군치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OTL 이다. .('그러고보면 본햏도 소싯적에는 저렇게 어렴풋이 생각을 했으니 누워서 침뱉는 꼴이지만...)


뭐, 이건 아주 당연한 얘기지만 세심하게(이걸 세심이라고 까지 해야할지는 의문이지만) 고려하지 않고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는 사람들은 일단 제외하자. 단지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나마 고등적으로 사고하지만 그래도 낚이는 분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래도 인구 수십만을 통할하는 대형 행정 구역 치소라고 보기에는

너무 작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뭐,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것 또한 '자기만의 상식'이 만들어낸 논리 상의 오류다. 특정 집단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그에 수반되는 모든 것도 '당연히' 클 것이라는 믿음에 불과하다. 수반되는 모든 것이 왜 커야하는지에 대한 고찰은 찾아볼 수 없다. 당연한 얘기지만 가장 큰 논리 오류는 토성 내부 공간 면적이 군의 규모를 담보해주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전제 1에서 제기된 중앙집권형 국가의 틀에 묶여 국가 규모가 크면 중앙으로 집산되는 물류와 인구 역시 많을 것이고 따라서 도시나 성곽 규모도 '당연히' 클 것이라고 '지레 짐작'을 하기 때문인데 이건 어디까지나 중앙집권적 정치 집단에게나 통용될 얘기고 그 조차도 예외는 많다는 점은 알지 못한다. 예외가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변수에 대해서 생각할 여지가 있을텐데 변수에 대해서 이들은 너무도 무감각하다.


성 안에 인구를 수용하는 까닭은 유사시 결코 손실되면 안되는 핵심 인원(고위 관료, 귀족, 기술자, 상인 등등)을 방어시설 내에 수용하여 보호할 목적에 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모든 인원의 수용이 전제되진 않는다. 중국 내지에는 세금과 노역을 징수해야할 군현민 보호에도 역점을 두지만 변군은 사정이 다르다. '전제 1' 까기에서 언급했다시피 낙랑군은 변군 체제에 근간해 있다. 중국 내지의 제민지배처럼 일일히 관료의 통제에 의해 민이 관리되는 것이 아니라 피지배층의 재지 유력자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통제하는 형태다. 때문에 세금과 노역 징수에 있어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 이상은 대규모 성곽을 설치하는 등의 적극적인 보호를 할 절실한 이유는 없다.(새롭게 짓는답시고 이민족 피지배민들을 닥달하다가 반란이라도 일어나면 태수는 모가지 신세가 된다.) 정 외부 위협이 닥친다면 거점방어하고 있는 군의 병력을 동원하면 그 뿐이고 그 외에는 부족장들에게 방어와 치안 책임이 전가되는 것이다. 쉽게 얘기해서 기업 경영으로 친다면 직접 생산에 개입하고 결과물에 책임을 지는가, 아니면 하도급 업체에 맡긴 후 책임은 그들에게 전가하고 결과물만 챙기면 그만인가, 라고 한다면 적절한 예가 아닐까 싶다.


씨족장들만 적절히 관리하고 삥땅치지 않나 감시할 수준이면 족하기 때문에 필요한 관료의 숫자는 적어도 상관없고 물리적 통제 역시 거점 방어와 견제에 필요한 최소한의 병력이면 가능한 고로 군대 규모는 그렇게 많을 필요는 없다. 부가적으로 이들에게 필요한 물자를 제공하는 수공업자와 상인 또한 그렇게 많은 수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이들을 수용할 방어 시설 역시 대규모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현도군 같이 전투 다발지역의 변군이었다면 '혹시나' 상황이 좀 달라질지는 모르겠지만 낙랑군은 현도군만큼 군 내부 전투가 벌어지진 않았다.

또한 방어거점으로 군 치소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성이라던가 다른 소규모 군사거점으로 군대와 호구가 '분산배치'된다는 점 또한 잊어서는 안된다. 낙랑군에 있는 한족계 인구가 낙랑 목간의 통계대로 4만 명이라면 낙랑군에 딸린 25현의 현성에 분산배치한다고 가정했을 때 한 성 1개당 평균 2천 명 이하의 수용인원으로도 이들 전원의 수용이 가능하다. 

만약 '그래도 군 치소인데 일개 현성과 동급으로 취급할 수는 없다'라고 반론을 제기한다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들이 반드시 성곽 내부에만 거주하고 있다고 가정할 수 없다는 점을 떠올렸면 한다. 성의 면적은 유사시를 대비한 것이기 때문에 핵심인원이라도 평시에는 성 외각 근교에 거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제민지배체제가 아닌 간접지배형태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중앙권력(군 치소)이 힘을 쓴다기 보다 중간기구(현성)들의 역할이 커질 수 밖에 없음을 상기한다면 군 치소와 현성의 규모 차이가 그렇게 크게 난다고 보기도 어렵다. 고로 낙랑군치가 필요 이상으로 커야할 이유는 없다. 되려 돈낭비다. 그렇게 본다면 인구 수천명 수용이 가능한 현 낙랑토성의 규모가 작기는 커녕 도리어 적절하다고 해야하지 않을까?


이도 저도 없이 이해를 하기 어렵다고 가정을 해서 가장 쉬운 예를 들어보자.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인 '폴리스'의 공간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떠올린다면 전제 2가 얼마나 허황된 얘기인 것인지 확연히 깨달을 것이다. 하긴, 그걸 알고 있다면 저런 떡밥에 빠질 이유도 없을테지만...


결론 : 자신의 상식이 언제 어디에서나 통용될 것이라는 믿음은 지적 오만에 가깝다. 상식이 왜 상식이 되는지를 성찰하지 못한다면 상식은 상식이 아니라 고정관념일 뿐이다.


덧. 사석에서 말로 하면 간단히 1~2분 내에 할 수 있는 얘기임에도 이렇게 긴 글로 쓰는 것은 쉬운 말도 희안하게 어렵게 쓰는 극악한 글빨인 탓도 있겠지만 이렇게 자세히, 풀어서 얘기를 해도 희안하게 못 알아듣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by 한단인 | 2009/11/23 15:14 | 역사 | 트랙백 | 덧글(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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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야스페르츠 at 2009/11/23 15:26
어차피 그래도 안믿어효. ㅠㅠ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11/23 15:27
ㅋㅋㅋ 그 양반 글에 낚일 분들을 위해서 썼다능...
Commented by 消爪耗牙 at 2009/11/23 15:44
왜론곡필과 같은 링크가 걸려있어 !

뭐 역사문의 그분이야 그곳의 왜론곡필(...) 같은 분 아니었남여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11/23 15:51
.......? 눈치가 쥐뿔도 없어서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 1인
Commented by 消爪耗牙 at 2009/11/23 16:03
왜론곡필과 같은 링크 => 간호조무사로 일하다 '왕'된 미국인
http://engjjang.egloos.com/10207548

Who => ...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11/23 16:07
아.. 그거 말씀이셨군요. 눈치가 없다보니 손발이 고생하는 1인

저도 처음에 그거보고 엄청 뿜었...
Commented by 들꽃향기 at 2009/11/23 15:52
잘 읽고 갑니다. 확실히 '국'과 '군'의 차이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다른 체제, 다른 지역이라는 논리로 연결 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만 개인적인 견지에서 의문이 있는 것이, 중국의 한제(漢制)에서도 그러한 군현 밑에 '왕' 혹은 '국'이 병존하는 이중적 체계였던 적이 있는지 의문이긴 합니다.

물론 후한대 베트남의 경우...그런 이중적 체계를 일원적 군현체계로 만드려다가, 쯩 자매의 반란크리를 맞고, 복파장군 마원의 주도하에 종래의 이중적 체계를 어느 정도 인정하는 그런 추세가 있기는 하지만요;;;
Commented by 들꽃향기 at 2009/11/23 16:04
공감합니다. ^^ 일례로 서하의 전신인 영하부가 당말에 당의 기미주 통치를 인정하면서도 스스로 이미 내왕(內王)제를 칭하고 있던 양상이 한대라고 크게 다를것 같지는 않습니다. 사실 말씀드린 쯩자매의 사례도 그러한 변군에 대한 이중적 체계의 일원이 아닐까 합니다.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11/23 16:04
본문에서는 그 얘기를 넣으려다가 얘기가 쓸데없이 길어질거 같아서 굳이 쓰진 않았는데 당연히 법제적으로 그게 용인될 얘기는 아닐겁니다. 단지 변군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중앙에서도 손쓸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주변 소국들 사이에서 왕을 자칭한다거나 아니면 후대에 관념적으로 왕으로 기록되는 형태를 얘기한 것이죠. 삼국사기에서 낙랑왕 최리라고 기록된다고 해서 실제 왕호를 선언했을지는 그야말로 '알게 뭐야' 아니겠습니까? 신라 왕호를 혁거세-차차웅-이사금이라고 한걸 죄다 '왕'으로 통일해서 쓴 양반인데요 뭘..

뭐, 저도 일단은 해당 문제에 아는 것이 별로 없는지라 최대한 일반론에서 서술한 것에 불과합니다.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11/23 16:05
아앗..답글을 고쳐쓴답시고 지웠는데 답변을 바로 올려주셨군요. ㅎㅎ;;;
Commented by 消爪耗牙 at 2009/11/23 16:07
우리쪽 고고학 책 중에 요서 ㅡ 요동 ㅡ 한반도의 선사시대 신석기 ㅡ 청동기시대를 연결해서 차근히 비교해가며 짚어주는 개설서가 제대로 없는 게 사이비들이 고고학가지고 판을 치는 요인인 듯.

오강원 선생님 책도 시대적 ㅡ 지역적으로는 한정된 편이고, 4대마왕 후보는 뭐...
게다가 '스승과 합체하면 ㅄ력 10만배' ㅂㄱㄷ선생께서 계시니...

솔까말 홍산문화는 커녕 하가점 상층문화조차도 우리쪽하고 최소 2~3단계쯤 떨어진 문화권 아님?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11/23 16:15
확실히 그런듯... 저같은 귀차니스트는 그래서 고고학 건드릴 엄두를 못낸다능...(엉?)

근데 말씀하시려던게 하가점 하층 아니시냐능? 상층은 산융 동호계열 아니냐능?
Commented by 消爪耗牙 at 2009/11/23 16:20
아니 '상층' 맞아여
하층까지가면 더하니.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11/23 16:24
그거야 뭐,, 애저녁에 갈라졌으니 우리하고는 별 상관이 없...

하긴 하층도 그렇겠다능.. 뻥 좀 쳐서 아담과 이브 수준인듯..(응?)
Commented by 초록불 at 2009/11/23 17:30
전제1에서는 제 소설책 <자명고>를 보면 설명이 잘 나와 있다능... 어차피 역사책은 안 믿는다 치면, 소설책을 믿으라고 하시라능!
Commented by 야스페르츠 at 2009/11/23 17:36
이, 이런 식으로 책 홍보를 하시다니... 역시 본좌... (응?)
Commented by 초록불 at 2009/11/23 17:42
본좌는 무슨... 안 팔려서 책장사 하는 거임... ㅠ.ㅠ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11/23 18:15
ㅋㅋ 조만간 사보겠다능..ㅋ
Commented by rumic71 at 2009/11/23 18:03
캐나다 총리와 총독이 따로 있는 것과 비슷...하지는 않군요.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11/23 18:15
저는 캐나다 사정을 모르는지라...
Commented by 베리타스 at 2009/11/23 20:08
저 글을 여기서 이렇게 또 보게 되는군요-_-;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11/23 21:48
아하하.. 그런가요?
Commented by 군인지 국인지 at 2009/11/24 14:48
긍데 중국 사서에는 낙랑군이 요동에 있다고 나온다능...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11/24 15:03
진서 모용황 재기인지 뭔지에 나오는 낙랑군민을 요서에 옮겨 군을 새로 설치한 걸 말씀하시나 보군요. 근데 그거는 이거랑은 상관없는 얘기입니다만...
Commented by 무식하면 at 2009/12/20 00:34
무식하면 병이라


본인의 무식함을 모르면서 글만 계속되니 .. 쯧.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12/20 09:24
저 자신은 제가 무식한 걸 자각하고는 있습니다.

그럼 당신 자신은 어떠한가요?






Commented by 어이없네 at 2010/03/08 15:27
그냥 공상과학소설을 쓰슈.
대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나참
Commented by 한단인 at 2010/03/08 15:29
제가 쓴 이 잡글이 허술하기 그지 없다는 것은 자각하는 바입니다만 공상과학소설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육하원칙에 맞게 써야 상대방이 귀를 기울일 거라고 생각하진 않나 보군요.
Commented by 어이없네 at 2010/03/08 15:42
이건 뭐 깔거리가 너무도 풍부한 한마디로 망상과 같은 글이라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까야할지 감을 못잡겠네.
내가 조만간 이글을 반박하는 포스트를 하나 따로 만들어서 역사 밸리에 올리테니 조금만 기다리쇼.
이글 복사해서 인용해도 되지요?
Commented by 한단인 at 2010/03/08 15:45
차라리 트랙백을 하시지요.
Commented at 2011/06/07 00:2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한단인 at 2011/06/07 01:55
음.. 변군의 성격 규정을 가방끈이 짧은 제가 뭐라 말할 수는 없다보니 저도 긴가민가하군요.
Commented by 파랑나리 at 2011/06/07 12:23
요지는 중국에서 이 동방변군을 어떻게 볼까 하는 거죠. 일본에서 임나일본부가 어떻 의미를 지녔죠? 동방변군은 임나일본부와 달리 레알 있었던 것입니다. 일본이 임나일본부라는 떡밥으로 펼친 식민사관을 중국이 동방변군으로 하지 않을까요? 저는 나중에 동방변군이 중국의 대한국 식민사관의 아주 중요한 소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청림도사책사풍후 at 2017/02/28 08:46
'옥저동예낙랑후국'으로 말하면 되잖아 간단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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