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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장성(長城) 축조에 대한 사소한 단상

용어의 의미 (Warfare Archaeology 형) 

낙랑군에 중국의 장성은 존재했는가? (소하 님)

1. 글을 보고서 '아..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던가' 하는 느낌이었다. 예전에 전근대 국경에 대한 오해 - 만리장성의 경우 란 글을 통해 장성 이미지에 대해 일종의 편견을 언급한 적이 있으면서도 정작 아차산 보루군에 대해서는 그리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뭐, 난 고고학 전공한 이 형이나 소하님처럼 고전에 정통한 것도 아닌 흔하디 흔한 듣보잡이니까 생각 못해도 상관은 없...(읍)

2. 물론 이것은 아직까지는 작업가설(?) 단계 정도로 뭐라 섣불리 말할 단계는 아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작업가설은 상당히 설득력 있게 들려 흥미가 돋는다. 전국 시대의 전국 장성들도 그 시작은 우리가 생각하는 긴 선의 형태라기 보다 보루 시설과 그것을 보조하는 토벽 줄기들로 구성되는, 시작은 꽤나 미약한 형태였기 때문이다. (아차산 보루군이나 전국장성의 축조 형태에 대한 고고학적 지식을 전혀 갖추지 못한 본햏이기 때문에 차마 '유사' 하다거나 가깝다는 표현을 함부로 쓰기는 뭣하긴 하지만은...) 


3. 사실 장성의 이미지는 농경국가로서 중국의 '나약'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사납고 야만적인' 북방민족을 방어하기 위한 수동적 수단으로서... 하지만 최근의 연구는 되려 이 장성을 모루로 삼아 융적을 공격하고 그 안에 가두어 지배하는 유용한 능동적 수단으로 재인식되고 있기도 하다. 아무튼 고구려라는 정주 기마문명에서 '장성'의 이미지는 '기마'라는 이미지와 양립할 수 없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 셈이다. 하지만 기록상으로도 고구려에서 장성은 존재했다. 바로 영류왕 때 축조된 천리장성이다.

비록 천리장성은 우리의 상상속에 존재하는 만리장성의 '선'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기존의 요동 산성 방어체계에서 취약점을 보완했다고 보는 평가나 연구가 주류인데 명청대의 장성이 선적 이미지였던 것과 고구려 천리장성은 확실히 거리가 있긴 하다. 굳이 그렇게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요동반도를 가로지르는 천산산맥 자체로 이미 훌륭한 방벽이 되기 때문에 산맥을 통과할 수 있는 주요 길목에 산성을 축조하고 그 주변을 보조할 보루나 토벽을 만들면 그만이다. 문제는 이런 방어라인이 다중으로 설치되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학계(정확히는 고구려사)에서 천리장성의 이미지를 정확히 어떻게 잡는지는 듣보잡인 본햏은 정확히 가늠하기 어렵지만(더 정확히 말하면 전국 장성 방어체계와의 차이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일반에 알려진 고구려 천리장성의 이미지는 '상식에 존재하는' '중국의' 만리장성과는 다른 체계라는 식의 거리를 두고 상상된다. 그런데 난 과연 그게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앞서도 언급했듯 '상식에 존재하는' 만리장성 이미지는 명청대에 형성된 장성을 통한 것이고 실제로 초기 장성은 저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 북방에 존재하는 각종 산맥의 산줄기를 따라 취약지를 중심으로 보루와 토벽들이 건설되었으며 (질적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정도 다중 방어선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기본 정신 자체는 고구려 천리장성이나 전국 장성이나 다르지 않다. 물론 양측의 시공적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축조 체계의 하부구조에서 완전히 같다고 할 순 없지만(아무래도 고구려는 길목의 병목 지역 요충지의 산성을 중심으로 하는 방어체계와 종심방어 체계라는 포인트 차이는 있지 않을까 싶다) 상통하는 면이 많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고구려 천리장성의 축조 체계와 전국 장성 축초체계는 비교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후자로부터 전자가 영향을 받았다.. 이런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라 비교사적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4. 영류왕의 대당 외교정책상 꽤나 수세적인 면모를 보였기 때문에 이런 장성을 예외적인 것으로 보고 주목하지 않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구려에서의 장성은 이것만 존재한 것이 아니었다. 문헌에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고고학적으로 드러난 것인데 바로 동북장성이다. 역사에 관심많은 일반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이 장성은 고구려가 5세기 즈음에 동북방 경영을 위해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동북 경영의 센터인 책성 주변, 그러니까 연해주 부근에 주로 설치되었는데 이 장성의 축조 양상에 대해서는 고고학 지식이 전무한 본햏이 아는 바가 전혀 없기 때문에 논할 게제는 아니다. 다만 흑룡강성에서 고구려계로 추정되는 보루가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혹 이 동북장성과 관련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있다. (혹시나 해서 집에 있는 북방사 논총을 뒤적거렸는데 7호인가 8호에서 백종오 선생님의 글에 그런 내용이 있는데 자세한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지명이 언급되긴 했는데 듣보잡인 본햏이 뭐 알 수 있나...)  


5. 고구려의 동북장성이 5세기 즈음에 축조가 되었다면 아차산 보루군을 고구려의 남방 경영을 위한 초기 장성으로 보는 이 시각은 꽤나 큰 시사점을 준다. 아차산 보루군도 그즈음  축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결국 고구려의 지배 체계 전략이 이 시기에 중대한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전국 7웅과 진제국부터 만이융적을 제압하기 위한 모루-망치의 전략이 고구려에서도 등장한 것일까? 위험한 얘기일 순 있지만 어쩐지 이 가설이 끌린다. 

다만 한가지 의아한 것이 있다. (일단 아차산 보루군도 고구려의 남부 장성체계 흔적으로 볼 수 있다고 전제했을 때) 동북지역과 남부는 장성 축조를 5세기 경부터 시작을 했는데 서북 지역의 장성은 7세기에나 등장하는 것이다. 아직 유적이 발굴이 되지 않은 탓인지, 아니면 그렇게 보는 시각이나 연구가 아직 없는 것인지, 혹은 고구려가 거란 경영상에서는 장성을 통한 망치-모루 전략을 시공적 차이로 인해 쓰지 않은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거란의 주무대인 요서 일대를 고구려가 장성을 건설할 수 있을만한 험준한 산맥이 의무려라산 외에는 요하 인근에 부재한 탓인지 어떤지...음..(근데 그렇게 따지면 한강 유역에서 남방 장성을 건설할 산맥 찾기가 애매하다는 점이 역시 걸리긴 하게 된다. 이건 뭐, 모 아니면 도도 아니고..)

생각을 좀 더 해보니 어쩌면 4세기 말 5세기 초에 요동반도를 확고히 확보하면서 서북변 장성 체계를 천산산맥에 이미 형성하기 시작한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최종 완성판이 영류왕 대의 천리장성이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확장버전을 요서쪽에 축조하기에는 거란 경영이 꽤나 녹록치 않은 탓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긴 한데 음..


어차피 이 글은 가벼운 단상에 지나지 않아서 세부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어디서 개소리 하니?'란 소리 듣기 딱 좋다는 건 알지만 이렇게나마 글을 쓰는 것은 일종의 문제제기를 위함이다. 본햏이 밝힐 수 없기 때문에 남의 힘을 빌리는 비겁한 짓이긴 하지만은...3류 듣보에게 많은 걸 바라지 말자.(응?)


덧 1. 그.. 정확한 명칭이 지금 생각이 안나는데 로마 제국에서 브리튼 지배할 때 북변방어용으로 건설했다는 하... 어쩌고 하는 장성의 축조 과정도 좀 궁금하긴 하다. 전국 장성과는 또 어떤 공통점이나 차이가 존재할런지..


덧 2. (사실 이 부분은 그리 중요하지 않으니 안 읽고 넘어가도 상관은 없지만 형은 읽고 내 궁금증 좀 풀어주기 바람.)

혹시 이전에 아차산 보루군을 '초기' 장성 형태로 보거나 개연성을 암시한 연구가 있나 키워드를 검색해봤다. 논문까지 검색해본들 어차피 학부생도 아니라서 KISS에서 다운은 불가하고 고고학 논문은 봐도 까막눈이라 엄두가 나질 않아 간단히 인터넷에 유포되어 있는 찌라시들을 검색해서 필터링하는 수준이었다.

검색을 해보니 뭔가 눈을 거슬리는 표현이 나온다. '아차산 장성' 이란 표현이다.(http://ace4558.blog.me/120119733835) 해당 링크된 곳의 사진을 쭉 훓어보면 안내 표지에 저런 게 나온다.

에.. 그럼 아차산 보루군을 학계에서는 초기 장성형태로 보는 게 정설 내지는 일반적이란 말인가? 라며 잠시 혼란에 빠졌다. '그럼 이 형이 이럴 리가 없는데..' 라며 의아한 생각이 이어졌다. 그럼 이 아차산 '장성'이란 표현이 우리가 이미지하는 '장성'에서 나온 표현이 아닐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좀 더 찾아보니 이런 글이 나온다.

장성의 유구는 본래 뚝도 부근의 한강변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 고지를 따라 아차산에 이르고 다시금 망우리에 이르는 산줄기를 따라 용마봉에 못미치는 벼랑바위산에 이르기까지 산마루를 따라 석성터가 있으며, 구리시 아천동까지 그 유구가 나타난다.
 이를 장성 또는 장한성이라 하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 한성부 고적조에 “장한성이 한강 위에 있는데 신라 때 여기에 중요한 진영을 두었으며, 고구려에 의해 점령당하였다가 군사를 동원하여 수복하고, 장한성가(長漢城歌)를 지어 그 공을 기리었다” 고 기록하고 있다. (...중략...)
 즉 왕성의 운명을 좌우하는 아차산성 일원의 방위에 그 목적이 있었던 장성(長城)으로 보는 견해, 그리고 장안평 이라는 지명을 지렛대로 이 유구를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장한성(長漢城)으로 보기도 하고, 그외에 면목동 일대에 남아 있는 ‘궁뜰’이라는 지명과 중랑천가의 ‘장안평’이라는 지명을 인용하여 이 일대를 백제 초기의 ‘하북위례성’으로 보기도 하였다
.


...뭐가 뭔질 모르겠는데 암튼 저 장성 표현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식의 장성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거 같은 느낌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되어 있는 장한성이란 표현에 주목을 해보고 싶었는데 장안평이란 지명에서 유래된거 같다니 뭔가 좆망...OTL

이건 아차산 보루군 발굴해본 적이 있는 형이 알텐데 뭐, 댓글로 대답을 해주겠지....(뭐야 임마?)

by 한단인 | 2011/02/23 17:17 | 역사 | 트랙백(1) | 덧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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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Warfare Arch.. at 2011/02/23 18:00

제목 : 아차산장성(오해하지 마삼)
고구려의 장성(長城) 축조에 대한 사소한 단상 by 한단인이 녀석...귀찮게스리.(그나저나 내가 논문 그때 안 줬냐? 거기 다 써 있는데...)암튼, 내가 논문 쓸 때 만든 지도 하나 첨부하마. 다운받아 쓸 일 있으면 여기서 다운받고. 클릭여기 보면...가운데 아차산을 세로로 가로지르는 파란색 선이 보이느냐. 범례표에 17번 아차산장성이라고 써 있는...그리고 16번에 아차산 관방유적이라는 녀석도 보이지. 아차산 3보루와 아차산 4보루......more

Commented by moduru at 2011/02/23 17:48
1. 로마 브리타니아 지배때 쌓은 것은, 하드리아누스 장벽(혹 방벽, 성벽).. 영문으로는 Hadrian's Wall 입니다.
이보다 앞서 안토니누스 장벽이 먼저 세워졌고요.(영문으로는 Antonine Wall)

Commented by 한단인 at 2011/02/23 17:50
아.. 맞다! 하드리아누스 장벽!!! 이제 생각났슴다.

근데 이거 이전에 세워진 장벽은 모르고 있었군요.
Commented by moduru at 2011/02/23 17:53
안토니누스 장벽은 하드리아누스 장벽보다는 규모도 작고, 현재 남은 것도 많이 없어서 안유명하죠.
결정적으로 관광용으로는 하드리아누스 장벽이 간지나죠.

Commented by moduru at 2011/02/23 17:54
아 실수가 있네요. 안토니누스 장벽이 후대에 세워진 겁니다.
(하드리아누스 후계자가 안토니누스예요)
Commented by 한단인 at 2011/02/23 17:56
아..ㅎㅎ 그렇군요. 암튼 제가 알던 것은 하드리아누스 장벽 밖에 몰라놔서..;;
Commented by Warfare Archaeology at 2011/02/23 18:00
트랙백으로 남겼다. 확인하삼~
Commented by 한단인 at 2011/02/23 18:07
ㅇㅇ
Commented by 들꽃향기 at 2011/02/24 16:31
그러고보니 러시아의 요새선 열결망인 우랄지역의 '체르타' 역시 키건옹에 의해서 만리장성, 리메스 등과 더불어 장거리 방어선의 사례로 언급되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

사실 굳이 우리가 생각하는 만리장성식의 이미지가 아니라, 요새망의 연결선 자체도 장성이 될 수 있고, 고구려의 천리장성 역시 그럴 가능성은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식의 장성"에 메달릴 필요는 없다는 지적말씀에는 공감합니다. ^^
Commented by 한단인 at 2011/02/24 17:09
과문한 저인지라 러시아의 그런 사례는 오늘에야 알게 되는군요.

그러고보니 마찬가지로 과문하여 오늘에서야 이름을 들어본 리메스의 경우 원래 어원이 '도로'였다는 사실과 연결망이라는 지점이 어쩐지 의미심장한 부분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http://100.naver.com/100.nhn?docid=57095

이를테면 보루와 보루 사이를 연결하는 군사 도로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에서 보조적으로 설치한 목책, 토벽 같은 것이 점차 장성으로 변모한 것은 아닐런지.. 하는 그런 엉뚱한 헛소리랄까..
Commented by Warfare Archaeology at 2011/02/24 17:49
흠...그것도 한번 생각해봄직 한 내용일 듯 합니다.

체르타와 리메스...저도 오늘 둘다 처음 알았네요. ^^;;
Commented by 호주장성 at 2011/02/25 16:57
호주의 '아웃백(Outback)'도 있지요 (패밀리 레스토랑 말고...ㅡㅡ;;)
물론 이건 '장성'이나 '장벽'이라기보단, 그냥 철조망이나 철책선 수준이지만.
만리장성보다 더 긴, 세계 최장의 인공 구조물이라네요.
Commented by 한단인 at 2011/02/25 17:01
호주장성/엌..
Commented at 2011/02/28 21:4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한단인 at 2011/02/28 22:14
아.. 말씀하신게 제 블로그에 있는 비루한 글들을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음..;;;

제 개인 공간에야 어차피 올려도 뭐라 할 사람이 없기에 싸질러 놓은 것입니다만 다른 곳에 내돌리기에는 창피한 글들만 가득하니 딱히 어떤 글을 복사할지 난감하군요. 연재도 하다 만 거 몇개가 다라서 거기에 올리기에도 애매하고..

하지만 모처럼 부탁을 해주셨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일단 올려도 최소한 욕은 덜 먹을만한 글 몇개나마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Commented by 한단인 at 2011/02/28 22:44
헛.. 말을 그렇게 해놓고 써놓은 글을 곰곰히 보다보니 정말 내놓을 글이 없다 싶어 OTL 입니다. 대부분 떡밥성 추측으로 쓴 것에 지나지 않는 글들만 있는데 이를 어쩐다...
Commented by 앨런비 at 2011/02/28 22:50
딱 좋자네요(....)
어차피 토론하면서 고쳐나가는 것이 역덕후의 자세인데(....)
Commented by 한단인 at 2011/02/28 22:53
근데 블로그를 햇수로 4년동안 해먹었으면서 정말 쓴 글이 별로 없다는 사실에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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