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루스 | 로그인  


조선이 왜 마차, 도로가 발달 못했는지 뭔가 납득(응?)

말 편자 이야기에 대한 보충

[리뷰] 세상을 바꾼 수레 - 수레의 문명사

예전에 [세상을 바꾼 수레] 책을 리뷰하면서 조선의 마차 사용이나 그에 연관된 도로 건설이 미약했는지에 대해 대강이나마 이리저리 궁리한 적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궁리한 것 외에 들꽃향기님과 델카이저 님이 댓글로 좋은 지적들을 남겨주셨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2% 부족한 듯한 찝찝한 기분이 남았다. 그런데 아빠늑대님의 글을 보고 모든게 납득이 되었다.



그리고 왜 조선에서는 말을 꽁꽁 묶어 편자를 박았는가에 대한 힌트도 봤는데,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선의 말은 "성깔이 더러워서" 였답니다. 조선의 조랑말은 작은 크기이나 짐을 70~100kg을 짊어지고 산길 50km 정도를 갈 만큼 튼튼했다고 하는데 문제는 성질이 사나워서 다루기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서양인들의 기록에 따르면 조선의 조랑말은 엄청 나나웠는데, 왠만한 분은 아시는 비숍 여사도 조랑말과 함꼐한 여행동안 "단 한번도" 조랑말의 호의를 얻을 수 없었고 수없이 이빨과 발굽의 공격을 받았다고 하는군요. 새비지 랜더라는 서양인은 조랑말을 표현할 때 아래와 같이 표현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사실 내가 본 것 가운데 규모로 보아 가장 교활한 작은 악마이다. 심술궂고 싸움을 좋아하는..."

(...중략...) 심지어 이들은 사람 뿐만 아니라 자기들 끼리도 싸움질을 즐겼다는데 서로 짐을 싣고 가던 조랑말끼리 만나자 상대방을 노려보며 짐을 실었다는 것도 잊은 듯 서로 물고 뜯으며 싸우는 통에 한국인 마부들이 이를 진정시키려고 애를 먹는다고 하네요.




결론 : 말 성깔 드러워서 마차 안쓰고 사람 쓴당께!


.
.
.
.
.
.
.
.







....근데 진짜면 어쩌지?

by 한단인 | 2011/03/07 16:30 | 역사 | 트랙백 | 덧글(47)

트랙백 주소 : http://chiwoo555.egloos.com/tb/3130941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까마귀옹 at 2011/03/07 16:38
오오 그럼 조선의 선비들이 말이 아닌 나귀를 애용했던 것도 말이 너무 사나워서?(말이 되니)


그런데 그러면 조선군이 강력한 기병을 운영하였던 것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네다..
Commented by 커티군 at 2011/03/07 16:40
말이 사나우니 기마병의 공격력도 두배! (훗, 그래야 내 기수답지)
Commented by 한단인 at 2011/03/07 16:46
까마귀옹 님/...어? ...어?(2)

커티군 님/앞발굽으로 찍어버려~!
Commented by 청풍 at 2011/03/07 22:47
훗 그래야 내 기수답지에서 뿜ㅋㅋㅋㅋ
Commented by 윤현철 at 2011/03/08 10:40
선비들이 나귀를 애용하던 이유는 유지비가 싸고(말이 먹는것 보다 절반이하) 성질이 온순해서라고 합니다.
성질이 온순하다는게 무슨뜻인지 읽는 당시에는 잘 몰랐는데 아빠늑대님 글을 보니 과연 저런 말들과 비교하면 나귀가 훨씬 순하군요.
Commented by 델카이저 at 2011/03/08 11:24
그런데 절대 기준으로도 빈말라도 당나귀가 성질이 좋은 편은 아닙니다. ㅡ,.ㅡ;;; 유럽 우화에 빠짐없이 나오는 교활한 이지로 나오는게 당나귀죠..

그 당나귀가 성격 좋다면 대체 조랑말은;;;;;
Commented by Sakiel at 2011/03/08 14:23
저번에 TV프로에서 당나귀 타고 방송국으로 출근한 사람이 있었죠.

차타고 30분거리를 당나귀타니까 점심시간 넘어서 도착했는데...말을 듣기는커녕 지 가고싶을때만 가고 풀뜯어먹고[...]
Commented by Jes at 2011/03/07 16:40
어...일리 있는 듯?

농담은 차치하고 진지 모드로 들어서자면,
조선 왕조가 수운을 사용한데에는 생각지 못했는데 "강변 백성의 생업"을 위해서이기도 했더군요. 이들이 직접 공미를 올려 보내거나 이들의 배를 빌렸더니 강변 백성들의 삶이 나아졌다는 것이지요. 일득록에 보면 신료들이 민간 수운제도의 폐단을 지적하며 "군선 지어서 운반해요 징징징"하고 아뢰었더니 정조가 위와 같은 이유로 불가하다고 답변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Commented by Jes at 2011/03/07 16:53
아 그건 그렇고, 저 드뎌 밸리 제한이 풀렸슴다. 오오오 밸리에 올라간 제 글을 보자니 감개가 무량...
Commented by 한단인 at 2011/03/07 16:54
조선 후기에는 그랬는데 16세기에 경강상인이 본격적으로 등장을 했다고 하기에는 애매한 시점이라서요. 대립제와 수포제가 성행하면서 국역체제가 문란해지고 노꾼들이 역을 꺼리는 현상이 잦아졌으며 관장제의 붕괴로 선박 건조도 어렵게 되었다지만 이때는 '진행되어' 가는 시점이지 완결된 시점이라고 하긴 그렇습니다.

링크한 리뷰 글에서는 초점을 16세기로 잡았는데 강변 백성의 생업을 놓고 보기에는 관선의 조운체계가 아직 남아있는 시점이라..


=====================

답변을 하고보니 제 답변 핀트가 뭔가 이상하게 어긋나서 저도 OTL
Commented by 한단인 at 2011/03/07 16:54
오오.. 축하드린다능..
Commented by 까마귀옹 at 2011/03/07 16:50
Jes님// 과연! 조선 왕조는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을 통한 고용창출'에도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군요!

(끌려간다)
Commented by 한단인 at 2011/03/07 16:51
오오
Commented by 야스페르츠 at 2011/03/07 16:59
"조선"은 "조선"술이 발달하여 수레보다 수운이 더 편리했기 때문....(퍽!)
Commented by 한단인 at 2011/03/07 17:01
정답!(퍽!)
Commented by 초효 at 2011/03/07 17:10
조랑말이 사납고 깡이 좋아서 폭음에도 잘 놀라지 않았나 봅니다.
박통 시절에 박격포 운반용으로 사용하려던 적이 있었거든요.(폭음에 잘 안 놀란다고.) 근데 건초나 기타 등등의 이유로 그냥 보병들이 뺑이치게 되었는데...(실제로는 사나워서인가!)

Commented by 한단인 at 2011/03/07 17:11
아니! 그런!
Commented by Warfare Archaeology at 2011/03/07 17:28
사나워서!!!!!!!!

왠지 설득력이 있는 듯한...재밌는 답변이다!
Commented by 한단인 at 2011/03/07 18:03
허무맹랑한 건 아는데, 뭔가 촉이 꽂히더라고 ㅋㅋ
Commented by gg at 2011/03/07 17:33
마차를 사용하지 않았지 사람을 사용한건 아닙니다.
조랑말에 짐을 얹어서 사용했기 때문에 비효율적이었던 거죠. 마차 사용했으면 조랑말도 더 편했을지도?

함흥일대에서는 수레의 사용비율이 높은 편이었습니다. 사사로이 만들어진 도로가 적극 활용되었고 상업도 융성했다고 하더군요.

조선시대에 수레사용에 대한 논쟁은
산이 험해서 수레사용 못함 - ㅆㅂ 중국도 험한데에다가 길터가지고 잘만 사용하더만
이 두 의견의 충돌의 반복, 별 영양가 없이 끝나는 양상의 반복이었습니다.
아예 반도가 아니라서 수운이 어려웠거나 하면 도로라도 좀 닦았을텐데..
그냥 불편함 감수하면서 자족하면서 산 조선의 결과가 아닐런지..
Commented by 한단인 at 2011/03/07 18:15
->보부상을 두고 한 얘기였습니다. 마차 사용이라고 했는데 전반적으로 조랑말에 짐 얹어서 사용한 것까지 포함한 것이구요. 의외로 조랑말 사용도 그리 많았다고 보이지도 않습니다. 즉, 조랑말 부리는데 들어가는 '전체적인' 비용에 비해 육로 운송상에서 인건비 들이는게 상대적으로 낫게 본 요인 중에 '사나워서'도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개드립이었습니다. 뭐, 그게 아니더라도 조선 후기가 되면 전세계적으로도 인구가 증가하는 와중에 실질 인건비가 다른 지역에 비해 꽤나 낮았던 정황이 보인다더군요.

그런데 함흥 일대에서의 수레사용 비율이 높았던 사례는 저도 과문하여 지금 말씀하신데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아마 저렇게 된 데에는 함흥 일대는 그나마 평지인데 반해 다른 지역에 비해 인구 과소지역이라 인건비 vs 조랑말 유지비 차가 나아서인지도 모르겠군요.
Commented by rumic71 at 2011/03/07 18:02
애초에 '소통'을 좋아하지 않아서...
Commented by 한단인 at 2011/03/07 18:03
앗..
Commented by nighthammer at 2011/03/07 18:28
저런얘긴 일본에서도 있던데요.
배군님 블로그던가에서 봤지요.
러일전쟁때 일본군이 대포를 사람이 끌어서 '역시 인명무시!' 라고 했는데 바로 직후에
'말이 하도 성질이 사나워서 짐말로 쓸 수가 없었다(...)' 는 글이 올라오더군요.
Commented by 한단인 at 2011/03/07 18:38
억...!
Commented by 천지화랑 at 2011/03/07 19:02
그런데 정작 중일전쟁에서는 700만 마리의 군마를 동원하지 않았던가요?
Commented by B군 at 2011/03/07 21:07
아마 이 글을 보신 모양이신데요, (http://traxiane.egloos.com/4607024) 조금 잘못 이해하신 듯 싶습니다.

일본군이 청일~러일전쟁시 대포를 말이 아닌 인간이 끌어야 했던 이유는(...) 우선은 당시 가용 가능한 말의 정수 자체가 적었고, 그 다음은 말의 힘이 없어서(...) 마지막이 말이 난폭해서 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조선도 당시 사육된 말의 통계를 보면 비슷한 답이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전국에 말이 얼마나 있는지, 그리고 그 중 짐말은 얼마나 되는지 등등...
Commented by 한단인 at 2011/03/07 21:32
아.. 말이 힘도 없는데 승질만 드러우면 사용하기 참 껄쩍지근 하겠습니다.

그럼 조선에서 말을 경작용으로 쓰지 않은 것은 힘이 없...
Commented by Jes at 2011/03/07 21:43
힘도 약한 주제에 성질까지...
Commented by 解明 at 2011/03/07 18:52
그렇다면, 수레와 도로 '마니아'인 박지원과 박제가 등 북학파의 입장에서는 '조랑말을 죽입시다. 조랑말은 나의 원수!'라고 할 수 있게네요.
Commented by 한단인 at 2011/03/07 18:53
원쑤!!
Commented by .... at 2011/03/07 19:55
운송이 발달했다면 말을 교배해서 덜 사나운 말을 얻었겠죠.

유럽 등 다른 곳의 말들이라고 자연 그대로는 절대 아니니.
Commented by 그런데 at 2011/03/08 02:30
'말 교배시키면 그나마 멀쩡하던 말도 다리에 기운이 빠져서 후들후들해요 징징징' 이라고 징징대는 관리를 박지원이 한심하다고 깐 걸 보면 뭐라고 해야 할지...
Commented by dd at 2011/03/08 08:56
현대인도 얼룩말을 길들이려고 갖은 짓을 다 했는데도 못하던데, 그것을 보면 길들일 수 있는 동물과 길들일 수 없는 동물은 날때부터 정해지는 것이고 교배로도 그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상대적으로 아라비아 계통이나 유럽의 덩치큰 말 계통은 본체가 온순했던 것 같은데...
Commented by 만슈타인 at 2011/03/08 10:14
어... 일리가 상당히 있는 듯?
Commented by 한단인 at 2011/03/09 09:04
처음에는 개드립이었는데 이젠 저도 긴가민가해집니다.
Commented by 델카이저 at 2011/03/08 11:28
- 당나귀가 성질이 좋아보일 정도면(제가 아는 한 당나귀를 성질 좋다고 한 지역 자체가 없었습니다;;; 이솝 우화나 유럽 민화에서는 예외없이 당나귀는 교활한 이미지죠.. 잔꾀를 부려서 게으름을 피우던가요..) 대체 조랑말이 얼마나 성질머리가 드러븐 건지;;;

- 몽골말은 덩치가 작아도 기수에 순종하고 적게 먹어도 잘 버티고 한다넌데;; 뭐 무리질서를 어지럽히면 용서없이 물어버린다고 합니다만;;

- 저런 거 보면 말이 겁이 많다는 것도 서양마 기준이지 모르겠습니다.;;;;

- 이종 교배는 외부에서 많은 종자를 영입해야 가능한데, 말은 조선에서도 필수적인 상품은 아니라 쉽게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과거에 동식물을 이종교배해서 결과를 얻으려면 거의 100년 이상 걸리는 작업인데, 이걸 정치적으로 추진이 가능할지는;;

아마 유목민족 같은 경우는 저절로 자연선택 되어지겠습니다만, 한국같은 케이스에서는 적용이 힘들지 않을까 싶네요..
Commented by 한단인 at 2011/03/09 09:11
저는 당나귀 하고 나귀하고 같은 건지 다른 건지 아직도 긴가민가 해서...;;;

그리고 당나귀도 지역따라 품종이 좀 다르지 않겠냐능? 말도 다 다르던데.. 그럼 성질 유순한 당나귀도 있긴 한가보죠.(엉?)

몽고말도 땅딸막한데 과하마의 후예들하고는 영 딴판이라 좀 의아하긴 합니다. 하긴 몽고말은 외부에서 품종 유입이 쉬울테니까 상대적으로 유순한 품종이 만들어지긴 할텐데 왜 땅딸막한 건 같은 건지.. 거기는 호마가 들어오기도 쉽지 않음?

과하마는 대체 뭐지...OTL
Commented by 다크엘 at 2011/03/08 21:26
옛 이야기에 말타고 달리는 선비보다 느긋하게 당나귀 타고 다니는 선비들이 나오는 것은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Commented by 한단인 at 2011/03/09 09:05
음..선비들이 나귀를 타는데에는 나귀가 얌전한 탓도 있겠지만 나귀가 선비의 풍모 어쩌고 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확실히 기억이 가물하군요.
Commented by physik at 2011/03/09 03:50
위에서 어느 분이 말씀하셨던 것 처럼, 조선이나 그 이전의 한반도에 말이 얼마나 많았는지가 관건이지 않을까요. 산악지형에 말이 다닐 수 있는 길을 닦는 것도 문제였긴 했겠습니다만, 애초에 말이 (흔하진 않더라도) 귀한 동물이 아니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사용처를 궁리했을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한단인 at 2011/03/09 09:08
과하마의 후예들이 딱히 힘이 소에 비해 센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먹는게 까다롭질 않나.. 상대적으로 기피대상이긴 한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미스트 at 2011/03/09 05:23
.............그럴싸한데요?!
.....거, 유럽권에서였나 야생 당나귀가 성질이 워낙 더러워서 가축화에 실패했지 않나요. ;;;

조선 조랑말은 가축화에는 성공했지만 선호하진 않았던건가! (.................)
Commented by 한단인 at 2011/03/09 09:07
처음에는 개드립이었는데 이젠 저도 긴가민가해집니다.(2)

뭐, 다른 품종의 말에 비하면 과하마의 후예들은 꽤나 성질이 더럽긴 했나보더군요
Commented by 베리타스 at 2011/03/18 01:43
자 이 주제로 진정한 교수의 반열에 오르시는 겝니다.(어?)
Commented by 한단인 at 2011/03/18 01:44
저는 그럴 깜이 못 되는지라..OTL
Commented by 청림도사책사풍후 at 2017/02/28 07:00
소를 쓰면 되는데 무슨 말타령이야 안악고분벽화도 제대로 안봤나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