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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루스 지식인들 좀 도와주셈.. 세도정치 규정 이렇게 해도 되남요?

문제내는 임용 스터디에 합류한 다음에 제일 골치가 아픈 것은 2차 논술문제를 만들고 모범답안을 작성하는 일이다. 이번에 내가 맡은 파트의 범위가 세도정치기의 정치사인데 이 시기는 사회사(홍경래 난이나 삼정이정청, 임술민란)와 연결된 부분 말고는 정말 문제 낼게 없어서 참 곤란한 부분이다.
골때리는 것은 사전에 약속이 되어 있어 정치사에 한정해서 문제를 내야하는데 내가 아는 범위에서 뭐 낼게 있어야지.. 그렇다고 짜잘한거 내면 임용에 그딴거 안나온다고 욕을 먹을 껀 안봐도 비디오고..(설사 낸다고 쳐도 역사교육론 문제하고 연계해서 내야하기 때문에 짜잘한거 가지고 내기도 어려움)

문제의 요지가 세도정치의 구조적 원인을 조선후기 정치환경의 변화와 제도적 요인에서 찾는 것에서 냈는데 이건 뭐 문제를 풀기 위해 요하는 배경지식 범위가 '우주를 보고 있다' .........레베루인 건 둘째치고 상대적으로 조선사에 상당히 어두운 내가 이 부분에서 모범답안 작성한 게 말이 맞는지 조차도 모르겠다. 이 스터디의 최대 약점은 문제를 내놓고도 모범답안이 맞는지 틀린지 본인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뭐 임마?)

암튼 작성한 게 말이나 되는 것인지 누가 말이나 좀 해주셨으면 좋겠음.(응?) 대저 다른 역덕분들께는 상식적인 부분일지 몰라도 소햏같이 비루한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음을 이해하셨으면 좋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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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연간의 예송논쟁에서 드러나듯 17세기 이후의 사회적 변화 심화는 사상계에도 영향을 미쳐 추상적인 이기론에서 구체적·현실적 문제로 관심이 확산되었다. 따라서 붕당의 의리논쟁 상에서 벌어지는 상호비판의 수위가 높아지고 그에 따른 정치적 대립의 첨예는 공존균형의 붕괴로 이어졌다.

결국 숙종 연간의 극단적인 정치 보복으로 변질되고 승리한 세력은 일당전제화 되었다. 이는 왕권에 중대한 위협이 되어 숙종은 이를 견제하기 위해 친위세력을 찾았고 패한 비주류 측이 생존을 위해 영합했는데 이는 왕권에 대한 적절한 견제·비판을 포기하고 왕권에 기대는 기형적 형태로 변질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런데 새로운 정치 환경은 국왕권과 비주류의 야합이 공존의 복원이 아닌 새로운 일당전제적 전횡을 재생산하게 되므로 다시 왕권에 대한 위협이 되어 숙종이 앞선 과정을 답습하는 악순환으로 연결되었다.

따라서 정국 파탄과 그로 인해 왕권이 흔들리는 것을 막고자 영·정조의 탕평정치가 등장했으나 탕평이 비주류라는 점에서 탕평파 육성 역시 국왕권에 비호받는 야합적 형태일 수밖에 없었고 그 극단은 숙종 때부터 본격화된 척신의 권신화였다. 이런 정치 형태는 왕권이 공고할 때에는 큰 문제가 없었으나 국왕의 집권 당위나 정치적 기반이 약할 때에는 되려 친위세력에 국왕이 끌려가는 결과를 낳았다. 비록 정조 초기에 척신정치의 일시적 부정, 군사론, 의리에 기반한 준론탕평이 시행된 단절이 있었지만 청 옹정제가 붕당 자체를 부정한 것과는 달리 개별 당파형성을 인정하고 그 가운데서 옳은 것을 '취사선택'하는 것은 그 목표가 초기 붕당으로의 회귀에 지나지 않았다. 또한 강한 국왕권의 주관에 의해 '선택'된다는 점은 본질적으로 이전 시기의 야합이 보인 한계를 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주며 그마저도 정조 후기에는 척신정치의 단초가 등장하고 말았다 .(추가)

때문에 그런 과정이 반복될수록 비판의 언로는 막히고 전횡하는 집단 규모가 집약되어 최종적으로 일당전제도 거부한 채 특정 가문의 권력독점으로 악화되었다. 언관을 통한 전횡의 견제는 당파의 원인이라는 명목 하에 그러나 실제는 반 탕평파의 언로를 통한 견제를 막기 위해 영정조기에 크게 약화되어 이미 기능을 상실했다.

한편 조선 후기는 제도적으로 비변사(備邊司)가 국정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하급관료에까지 공개적이었던 6조 체제와는 달리 비변사는 그 명칭에서 드러나듯 원래는 군정에 관련된 행정상의 총체적 운영과 기밀을 위해 설치되었기에 구조적으로는 소수 고위관료에 의한 비밀 회의로 운영되어 국왕에 대해서도 상당히 자율성을 확보하였다. 따라서 외부에서의 견제나 비판이 가하지기 어려운 구조였는데 이후 권력을 장악한 세도 가문은 이 비변사를 장악함으로써 국정 운영 뜻대로 결정하고 국왕에게 후 보고한 후 그대로 수행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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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범위가 '우주를 보고 있다' 레베루인데 이걸 1000자 내외로 서술하라고 하니 답이 이따위 두루뭉술인 건 안 자랑

아무튼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 OTL

by 한단인 | 2012/05/05 16:57 | 역사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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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한단인 at 2012/05/05 17:04
생각해보니 이건 뭐 초딩 숙제 때문에 네이버 지식인들한테 물어보는 거 하고 뭐가 다른가 모르겠음

아흟 다롱디리...
Commented at 2012/05/11 23:2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12/05/11 23:2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12/05/11 23:2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12/05/11 23:2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아나키 at 2012/08/14 20:34
다른 거 뭐 찾다가 클릭하니 니 블로그이다니..ㅋㅋ 신기신기

적은 내용을 보면, 세도정치의 구조적 원인을 정치환경의 변화와 제도적 차원에서 접근한다고 했는데 핵심은 논점이 없다. 17세기부터 정치변화의 흐름을 단순히 나열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차라리 두괄식으로 서술해 나왔다면 더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이..그래서 논점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내용의 흐름을 너의 사유방식으로 너의 언어로 표현한 것은 깔끔하고 남이 따라올 수 없는 니가 가진 힘이다.

이미 끝난 스터디 내용이겠지만 몇자 적었다. 내 코가 석자지만 주제넘게 평가했다.
Commented by 한단인 at 2012/08/16 21:49
음..듣고보니 그 말이 맞는거 같다. 논점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은 거 같군. 두괄식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견적이 안 나와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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