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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전 : 애기살의 기원은 무엇일까?

밀덕도 아닌 제가 어줍잖게 무기를 가지고 토론을 요청하는 건방진 글을 올려봤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주 사소한 이유와 계기로 편전에 대해서 살펴볼 일이 있어 두세 시간 자료를 뒤져보다가 한 생각을 정리한 조잡한 글입니다. 밀덕 분들 중 활에 대해 아시는 것 많으신 분들의 비판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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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살
, 즉 편전은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주인공이 즉석에서 적의 화살을 부러뜨려 암살용으로 사용하여 세간의 이목을 끈 바가 있다. 짧은 길이의 화살임에도 통아라는 간단한 도구만 더해졌을 뿐인데 보통 화살보다 더 빠르고 관통력도 향상되며 짧은만큼 쉽게 보이질 않아 대응하기 어려운 스텔스적 성격이 있는 이 우수한 병기는 더군다나 세간에 알려지기로는 한국 전통의 유일한비밀병기라고 알려지는 통에 편전의 존재가 일반의 사랑을 받는데는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세계사에서 생각보다 꽤 다양한 지역에서 유사한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 가장 오래된 것은 6세기 비잔틴에서 경장보병들에게 지급되었다는 솔레나리온이란 것이 있는데 현재 복원된 바를 보면 거의 편전의 운용 형태와 생김새가 동일하다. 그 외에도 중동에서 투르크(11세기)와 인도(필자가 시기를 파악 못함)에서 마즈라라고 불린 무기를 쓴 것이 확인된다.(이 역시 편전과 거의 동일하다) 이집트의 맘룩 왕조에서도 편전과 유사한 무기가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짐작컨대 맘룩 왕조의 성립 배경을 따져봤을 때 이전시기 중동에서 용병으로 활동한 투르크에 의해 전승된 것으로 생각된다. 

시기상으로 따져보면 비잔틴의 솔레나리온이 가장 빠르기 때문에 개인적인 짐작으로는 마즈라 역시도 투르크가 비잔틴과 상대하면서 운용기술이 전파된 경우가 아닐까 생각해봤으나 같은 무기를 인도에서도 사용하지만 필자가 정확한 시기를 파악하지 못해 짐작컨대 비잔틴에서 솔레나리온이 투르크를 통해 인도로 전파된 것인지 아니면 솔레나리온과 별개로 인도에서 발생한 것이 투르크가 중앙아시아에서 북인도를 거쳐 중동으로 이주해가는 과정에서 습득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마즈라가 인도어에서 이나 바다를 의미하는 단어와 같은 것임 것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좀 더 찾아보니 인도에서 마즈라는 6세기부터 사용된 것으로 나온다. 다만 웹문서에 지나지 않고 정확한 출전이 명기되지 않아 그대로 신뢰할 수는 없을 듯 싶다.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bullpen&mbsIdx=2554065 )



아무튼 그렇다면 한국의 편전은 비잔틴이나 인도의 그것이 전파가 된 것일까? 확언하긴 어렵다. 직접적으로 편전의 유래를 설명하는 것은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서 대몽항쟁기에 중경유수 김강신이 몽골군에 포위되어 병기가 모두 떨어졌을 때 적의 화살을 넷으로 잘라 통편에 넣어 쏘았다는 것을 기원으로 들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고 전제했을 때 한국의 편전 시작은 13세기 중엽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에서 보면 태종 때 편전을 언급하며 [김여지 등이 산당고색(山堂考索)을 고찰하니, 곧 당()나라 무후(武后)가 만든 통사(筒射)이었다. 이에 연습하라고 명하였다.] 라는 기록이 있어 이덕무가 언급한 13세기 고려 자생설이 맞는지, 혹은 무측천이 생존한 7세기 말 중국에서 시작되어 한반도에 전파된 것인지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이덕무는 정조 때 규장각 검서관으로 지낸 적이 있어 실록을 직접 볼 순 없다고 할지라도 규장각에서 관련 서적을 봤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그가 규장각의 모든 서적을 다 열람했다 할 순 없고 규장각에서도 김여지 등이 본 산당고색을 소장하고 있었다고 할 순 없다. 그러나 왕실에서 특별히 편전의 운용법을 외국에 유출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고 무과에서도 편전을 필수로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아 편전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산당고색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 이미 태종 때라는 상당히 이른 시기임을 감안하면 이덕무가 편전에 대해 언급하려 했을 때 참고하고자 하는 병기서나 무인들에게서 이런 사실을 듣지 않았다고 보는 것은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덕무가 청장관전서에서 산당고색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간단하게 그가 관련 기록의 존재를 몰랐거나 혹은 양란을 전후하여 실록을 제외한 중앙의 기록물 대부분이 소실되어 전승되지 않았을 가능성이다. 그러나 실록을 제외하고라도 성호사설에 인용된 당 희종 건부 4년 유거용이 통전으로 적을 쏘아 죽였다는 기록이 남은 것을 볼 때 성호 이익이 벽지에서 성호사설을 저술할 때도 확인할 수 있었던 사실을 이덕무가 몰랐을까 생각해보면 납득하기 어렵다.(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limys777&logNo=40022506513

둘째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이덕무가 판단하기에 산당고색에 실린 무측천 시기 중국 유래설이 별로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다. 전자를 따지고 보면 중국 유래설인지 고려 자생설인지 확인하기가 어렵지만 후자라면 고려 자생설이 좀 더 힘이 실리게 된다.(물론 엄밀히 따지면 그것은 이덕무의 판단일 뿐이니 어느 것이 맞는 것과는 별개다.)

짐작컨대 이덕무가 그렇게 판단한 것에는 다음 같은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무측천 때에 통사가 시작되었다곤 하지만 본고장이라던 중국에서는 무측천 기원설과 당 희종 기록을 제하면 정작 편전의 운용형태가 나타나질 않는다. 명에서 조선의 편전 개념은 알고 있었으나 사용하진 않고 임진왜란 때는 그 위력에 놀랐다는 것을 볼 때 이덕무가 판단하기로는 일종의 카더라 통신으로 생각하거나 중국에서는 무측천 시기에 잠깐 등장했다가 실전하고 이후 그와는 별개로 13세기 고려에서 자생한 것으로 판단한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의 편전 기원은 정말 자생한 것일까? 그렇다고 보기에는 편전의 운용형태를 살펴봤을 때 너무 급작스럽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다.

편전은 기본적으로 짧은 화살을 운용한다. 짧은 화살을 발사하기 위해서 통아라는 가이드 레일에 놓아 발사하는데 숙련된 사람이 아닐 경우 화살이 통아에서 벗어날 위험이 발생하여 위험해 처할 수 있다.(화살 길이가 짧으면 짧을수록 가이드 레일에서 벗어날 확률이 커진다.) 임란 때 의병장이 쓴 고대일록을 보면 편전을 연습하다 활을 잡고 있던 자기 팔목에 화살을 꽂아버리는 웃지못할 위험한 사고가 벌어지는 일이 있었다고 하고 최근에도 궁술동아리에서 편전을 연습하다가 사고가 난 적이 있다고 한다. ( http://www.atarn.org/letters/dec01/dec01_krn.htm )

꼭 사고 위험이 아니더라도 편전이 가이드레일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목표한 지점에서 벗어나거나 근거리에서 떨어질 확률이 큰 만큼 편전의 기본 전제는 숙련된 사수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청장관전서에 등장한 중경유수 김강신의 사례는 어떻게 보면 말 그대로 갑툭튀에 가깝다. 편전을 한 번도 쏴 본적이 없는 사람이 갑자기 천재성을 드러내서 사고 없이 적을 상대했다면 누가 쉽게 믿을 수 있을까? 그런 면에서 본다면 김강신의 사례는 한국사에서 문자로 기록된 편전 운용의 최초 사례일 뿐 이전부터 편전을 조금씩 사용하던 것이 김강신 사례부터 효용이 입증되었거나 사용이 보편화된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말에 당으로부터 전파되어 고려에서 명맥이 이어진 것일까? 정확한 것은 상고할 수 없다. 다른 전파경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비잔틴의 솔레나리온이나 투르크, 인도의 마즈라가 고려에 전파되었을 가능성을 우선 생각해볼 수 있을텐데 이 경우 바닷길이나 비단길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비단길과 초원길을 장악하고 활을 잘 운용하기로 유명한 유목민족의 경우는 11세기 투르크 사례를 제외하면 편전 비슷한 것이 전혀 나타나질 않는다는 것이다. 11세기 투르크도 중앙아시아에서 인도를 거쳐 중동으로 오는 과정에서 유목전통이 상당히 희석되어 정주화 단계를 밟아나가고 있었다. 또한 투르크 사례는 자생이 아니라 인도의 그것을 수용했을 혐의도 있다. 그런 면에서 개인적으로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비잔틴이나 활과는 상대적으로 인연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던 중국, 인도 등에서 편전같이 고도로 숙련된 활 숙련 기술이 등장했다는 것은 아이러니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잠시 눈을 돌려 이 공통점과 관련하여 편전의 운용 원리에 대해 눈을 돌려보게 된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편전은 짧은 화살을 통아라는 덧살, 즉 가이드 레일에 올려놓고 발사한다. 동일한 이치에서 쇠뇌도 가이드 레일에 화살을 올려놓고 쏜다는 메커니즘은 같다. 다만 차이가 있는데 편전은 보다 더 멀리 날리려는 목적에서 작은 화살을 쓰기 위해 가이드 레일을 활용한다는 것이고 쇠뇌는 팔과 다리를 써서 시위를 당겨야 할 정도로 강한 활을 시위에 걸어놓은 상태에 화살을 걸어놓기 위해 가이드 레일을 활용한다는 차이일 것이다. ( https://mirror.enha.kr/wiki/%EC%95%A0%EA%B8%B0%EC%82%B4 ) 이 가이드 레일이란 공통점에 주목해보자.

이때 재밌는 점은 개인용 쇠뇌라도 온 몸으로 당겨야 할 정도로 강한 활을 쓰는 것은 사실이지만 당기는 사람의 힘은 한계가 있으므로 활의 장력이 강한 만큼 상대적으로 일반 활에 비해 활 시위를 당기는 거리, 드로우 렝스가 짧아지게 되는 것이 보편적이라는 것이다.(사람 힘의 한계를 넘어서는 장력의 활을 쇠뇌에 사용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시위를 당길 수 있는 기계장치를 써야하는데 이 경우 가뜩이나 연사속도가 느려터진 쇠뇌가 우울해질 정도로 더 느려지게 되므로 흔하게 나타나는 형태는 아니다.) 이렇게 되면 실제로 화살에 전달되는 활의 장력이 쇠뇌나 활이 큰 차이가 없게 된다. 결국 쇠뇌의 장점은 화살의 관통력이 아니라 비숙련자도 쓸 수 있는 무기라는 것 밖에 없게 된다. ( https://mirror.enha.kr/wiki/%EC%87%A0%EB%87%8C )

따라서 쇠뇌의 속도와 사거리, 관통력을 높이려면 활의 장력을 높이거나(드로우 웨이트) 시위를 당기는 거리를 늘리는(드로우 렝스) 방법이 있는데 이 경우는 비숙련자가 시위를 당기지 못하게 되는 주객이 전도된 사태가 벌어진다. 때문에 남은 방법은 필연적으로 활의 장력을 깎아먹는 화살 무게를 줄일 수밖에 없게 되어 개인용 쇠뇌 기술이 발전할수록 화살 길이는 짧아져 볼트나 쿼렐이라는 짧은 전용 화살이 등장한다.

결국 짧은 화살을 사용하는 이유는 활의 장력은 그대로 해야하면서도 관통력과 사거리, 속도를 높인다는 목적에 충실해야 했던 환경적 압력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유목세계건, 정주세계건 수요가 있는 것은 둘 다 같은데 공급이란 측면에서 그것을 해결할 조건이 두 세계에 갖춰진 것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정주 세계는 유목 세계에 비해 활의 숙련이란 측면에서 일부 계층을 제외하면 상당히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영토국가를 지향하는 시점에 구성원 대부분을 대규모 병력자원으로 활용해야하는 군사기술의 발달 상에서 정주세계는 쇠뇌라는 기계식 활을 활용했고 이 과정에서 짧은 화살을 사용한다는 발상과 함께 가이드 레인이라는 개념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유목세계는 다르다. 모든 집단 구성원이 활의 숙련에 있어서는 생활상에서 익숙하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영토국가를 지향하는 시점에도 기계식 활에 대한 필요도, 수요도 발생하지 않는다. 때문에 짧은 화살을 쓴다는 발상을 하기 어렵고 마찬가지로 가이드 레일에 대한 개념도 나타나지 않았고 접한다고 해도 익숙치가 않았다.

그렇다고 화살의 장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활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은 합성궁 이상으로는 발달하기 어려울뿐더러 개인이 수련을 통해 감당할 수 있는 활의 장력은 기본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그런 방향의 활 기술 발달은 침체되고 대신 기마상에서 자유자재로 활을 쓸 수 있게 하는 방향으로 활 기술 관련 전술이 발전하게 되거나 혹은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파르티안 샷의 원류는 유목세계인지, 아니면 명칭에서 나타나듯 파르티안에서 시작되어 유목세계에 수용된 것인지는 정확히 상고할 수는 없지만 기술체계가 극명히 다른 방향으로 진행된 것에는 이러한 요인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잠시 삼천포로 떠난 논의를 다시 편전으로 돌려보자. 그렇다면 짧은 화살과 가이드 레일이란 개념을 쇠뇌를 통해 갖춘 정주세계는 모두 편전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만약 개나 소나 다 편전을 쓸 수가 있었다면 세간의 오해처럼 편전이 한국 고유의 비밀병기라는 잘못된 인식이 쉽게 정착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위에서 말을 했듯 편전이 생각보다는 꽤 세계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지만 주로 사용된 지역이 비잔틴과 중동, 인도, 한반도에 국한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당 중엽에 등장하긴 했지만 이후 시대로 유지되지 않았다. 이 말은 기술이 등장한다고 해도 유지가 되거나 전파가 되는데에는 일정 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않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편전은 고도로 숙련된 활 기술의 일종이다. 활 자체만 하더라도 일상에서 익숙해지지 않으면 무기로 활용하는데 운용의 제약이 일정부분 있는 숙련 무기다. 하물며 짧은 화살을 가이드 레일에서 벗어나는 사고를 겪지 않고 목표물에 명중시키려면 얼마나 고도로의 숙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인가? 결국 편전은 유목세계 수준의 활 숙련도와 정주세계에서 등장한 짧은 화살, 가이드 레일 개념을 가질 정도의 쇠뇌 기술을 동시에 가진 곳에서나 발생하거나 받아들여도 유지가 가능한 기술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그러한 요건을 아주 충실하게 가진 곳이다.

고구려는 집단 구성원 대부분이 습사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고조선 시기부터 축적된 쇠뇌 운용을 했고 신라에서는 영토국가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활 숙련을 대신이라도 하듯 구진천으로 대표되는 천보노 제작 기술을 축적할 정도로 발달된 쇠뇌기술을 보유했다. 고구려에서의 습사 전통은 한국사에서 문약 이미지를 가진 조선조에서도 끊임없이 이어져 선비들의 체육활동은 말할 것도 없이 아동들은 물론이고 때론 일부 부녀자들도 가벼운 죽궁이나 목궁으로 유희를 즐기곤 한다는 풍습이 있다. 한편 임진왜란 때 부인노라고도 불린 연노를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쇠뇌기술도 끊임없이 발달시키거나 받아들였다. 활의 숙련과 쇠뇌 기술에서는 각기 탑클래스에 속하는 수준인 것이다.

때문에 한반도에서의 편전 등장은 한반도에서 자생했을 가능성도 있고 무측천 이후 당으로부터 전파된 것일 수 있다. 다만 전자라면 적어도 고구려 때는 아닐 것이다. 그 정도로 무서운 무기라면 고수 전쟁이나 고당 전쟁에 분명히 중국 측에 기록으로 남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요 전쟁기인 고려 전기에도 마찬가지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은데 이것은 고려나 요 자체의 사료가 많지 않은 탓도 있겠거니와 김강신 사례 이전에는 편전이 있더라도 두드러지게 알려질 정도로 보편된 기술은 아닌 탓도 있을 것이다. 쓰임새가 얼마나 크냐가 알려질 계기가 없다면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편 동아시아에서 기록상으로는 가장 먼저 편전이 등장했던 무측천 때의 당나라 사정을 같은 시각에서 살펴보자. 당은 기본적으로 북위 말 성립된 관롱집단의 후예들이 세운 국가로서 선비귀족의 상무정신이 강하게 남은 집단이었다. 비록 선비귀족들이 북위 효문제 이래 한화를 겪고 관롱에서 한족 호족과 융화과정을 거쳐 관롱집단으로 성립되어 갔다고 하더라도 선비기병의 군사기술과 기풍은 당 건국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뿐만 아니라 태종 대에는 다수의 돌궐족을 포섭하여 정복전쟁에 활용할 뿐만 아니라 북변의 한족들에게 전쟁기술을 전파시키는 숙련화 과정을 거치게 했다. 결국 그 힘으로 마침내 동돌궐을 무너뜨려 돌궐인들에게서 천가한의 칭호를 받게 될 정도가 되었다. 호(胡)의 뿌리를 가졌으며 또한 호의 세계를 완전히 제패하고 한(漢)의 피와 정신을 가진 당은 정주세계와 유목세계의 문명 정수를 가졌다고 할 수 있는 국가였다. 즉, 두 세계 활 기술의 정수를 동시에 가질 수 있었던 당 대에 두 기술의 집약이라 생각되는 편전이 나타난 것은 어쩌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측천 이후 관롱집단으로 대변되는 선비 기풍은 과거제에 의한 관리임용 변화를 통해 당의 지배구조에서 점차 퇴색되어 갔다. 더불어 변방의 절도사들이 부리는 용병들을 제외하면 전쟁을 경험할 수 없던 중앙은 병사들이 활을 숙련할 수 있는 기회를 점차 상실할 수 밖에 없었다. 5대 때 군사력 주축은 유목민인 사타족이었긴 했지만 송이 건국되고 나서는 더이상 그렇지 않았다. 양 세계 활 기술의 정수는 다시 분리된 것이다. 이후 송은 요, 금, 서하 등과 잦은 전쟁을 겪었지만 군사기술 축적의 보편적 형태인 병사 숙련화가 아니라 도구 발달과 양으로 승부하는 방식으로 군사기술을 축적, 발전시켰다. 이처럼 당 이후 송대에는 편전에 대한 개념은 알고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실제로 운용할 수 있는 병력과 집단을 찾기란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한국에서의 사정과 비교해보면 동아시아 편전의 발상지였던 중국이 한국과 달리 기술이 실전된 까닭을 그런 점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물론 이것은 본인의 가설에 불과하다
. 이것이 입증되려면 기록 상 가장 먼저 편전 기술을 보유한 비잔틴의 솔레나리온의 경우도 앞서 언급한 조건에 충족한지 검토해야한다. 솔직히 비잔틴사에 대해서 굉장히 무지하기 때문에 비잔틴의 활 숙련도를 가늠할 습사 전통을 확인할 깜냥이 되진 못한다. 결국 확인이 쉬운 것은 솔레나리온이 처음 기록에 등장하는 6세기 마우리키우스 황제의 스트라테기콘 이전의 쇠뇌기술 수준인데 웹상으로는 이것을 확인하는 것조차도 대단히 어려웠다. 심지어 어떤 웹문서를 보면 [비잔틴 황녀 안나 콤네나가 자신의 저술에서 12세기 이전까지 비잔틴제국에서는 서구에서 사용되던 형태의 석궁이 사용되지 않고 있었다] 라고 인용하는 것을 보고 완전히 잘못된 생각을 했구나 싶어 이 가설을 접을까 싶기도 했다.( http://www.joysf.com/?page=6&document_srl=3919715&mid=board ) 그러나 6세기에서 12세기는 상당한 시간 차이가 있고 일단은 앞서 언급한 이덕무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안나 콤네나가 알기로는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 그런 것인지는 별개일 수도 있기 때문에 좀 더 자료를 찾아보기로 했다.

6세기 이전의 동 지중해 지역에서 쇠뇌 기술을 웹상에서 확인하기로는 고대 그리스에서 처음나타난 쇠뇌인 가스트라페테스라는 것이 있는데 알렉산드리아의 헤론의 기록에 의하면 기원전 420년 경에 개발된 무기라고 한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522315&cid=42159&categoryId=42159 )

여기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진 않지만 아무튼 이 기술이 6세기 비잔틴까지 유지가 되었는지는 별개이긴 한데 12세기 비잔틴황녀 안나 콤네나의 말을 다시 상기해보자. 그녀의 말을 전적으로 믿을 수가 없는 것은 앞서 언급했듯 6세기의 시간 차가 있고 내우외환으로 비잔틴 황실이 몇 번 교체가 된 과정이 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6세기 마우리키우스 황제가 경장보병들에게 솔레나리온을 지급했다는 것은 일반 보병들의 활 숙련이 상당한 수준에 이른 것임을 반증하며 이런 병사들에게 쇠뇌를 지급할 필요는 없을 정도로 사산조 페르시아, 불가르인 들과의 전쟁이 잦았던 전쟁 경험에 주 요인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런 상황은 이후 시기인 헤라클리우스 왕조 때 군관구제를 도입하여 병농일치를 이루어 사라센과 슬라브인을 상대했던 시점에는 더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어찌되었든 중요한 것은 편전이 등장하기 이전 시기에 쇠뇌에서의 짧은 화살 사용과 가이드 레일에 대한 개념이 있느냐 없느냐고 활 숙련은 잦은 전쟁을 통한 강요된 상무 정신의 유무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역시나 무지한 비잔틴사 지식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고작이다. 더 참담한 것은 투르크나 인도에서 쓴 마즈라에 대해서는 아예 알 수 있는 게 없더란 것이다. 고작해야 2~3시간 웹을 뒤적거려 나온 자료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활에 정통하신 분, 혹은 비잔틴사나 투르크, 인도사에 밝으신 분들의 질정과 비판이 필요한 듯 싶다.

by 한단인 | 2014/09/11 11:50 | 역사 | 트랙백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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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ㄴㅇㄹ at 2014/09/11 13:18
야 너 오랜만이다.
이제 되지도 않는 임용고시 꿈은 당연히 접었겠지.
슈타인호프인가 걔도 이제 주제를 알고 다른 직업찾은 모양이던데.
장사라도 해서 열심히 살아라.
Commented by 마광팔바보 at 2014/09/11 16:05
마광팔 이 한심한 놈 ㅉㅉㅉ
Commented by 한단인 at 2014/09/11 19:25
참.. 너는 아직 하는 짓이 똑같구나. 세월호 유족들 단식투쟁하는 걸 보고 일베충들이 폭식투쟁하며 약올리는 유치찬란한 짓과 지금 니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Commented by 애기살 at 2014/09/11 14:21
잘봤습니다. 최종병기활과 애기살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영화에서 청나라 장수가 조선 활더러 우리 활과 뿌리가 같다는 얘기를 하는데 근거가 있는 이야기 인가요?
Commented by 연성재거사 at 2014/09/11 19:02
주인장은 아니지만 대신 답하자면 근거있는 소리 맞습니다. 둘 다 북방민족 계열의 각궁입니다.

문제는 17세기 청나라 애들이 거기까지 알았느냐는 겁니다만......
Commented by 한단인 at 2014/09/11 19:24
아! 연성재거사님이 대신 답변을 주셨군요.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Commented by Lee at 2014/09/11 18:31
투르크에서 11세기부터 마즈라에 대한 기록이나 유물이 나타나는지요? 15~16세기경 맘룩왕조에서 쓰여진 Kitab fi bayau fadl al-qaws w-al-sahm wa-awsufihima("Arab Archery"라는 제목으로 영역본이 나온 바 있는데, http://www.archerylibrary.com/books/faris-elmer/arab-archery/ 여기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에서는 마즈라의 기원에 대해, 무슬림들이 투르크인들과 싸울 때 투르크인들이 빗맞은 화살을 다시 되돌려 쏘아 피해가 크자,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통아를 이용해 작은 화살을 썼다는 아랍 기원설과, 투르크인들이 페르시아를 침공할 때 새로운 양식의 방패를 개발해 기존의 화살이 소용 없게 되자, 기존의 화살보다 더 긴 화살을 써 이를 극복하고자 하였고, 한편 긴 화살을 쏠 힘이 없는 노인과 소년들도 같은 위력의 화살을 쏠 수 있도록 마즈라를 개발하였다는 페르시아 기원설의 두 가지 설을 제시하기에( http://www.archerylibrary.com/books/faris-elmer/arab-archery/docs/xliii.html ) 막연히 아랍이나 페르시아 기원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군요. 인도에서도 마즈라가 사용되었는지는 몰랐고요. 본문에서 적으신 바대로 11세기 즈음에 투르크족을 통해 도입 된 것일지, 아니면 페르시아나 맘룩왕조 등 다른 경로나 시기를 통해 도입 된 것일지 궁금해집니다.

그나저나, 언급한 책에서는 활의 종류에 대해 논하는 장( http://www.archerylibrary.com/books/faris-elmer/arab-archery/docs/iv.html )을 보면 활을 '손으로 쏘는 활'과 '발로 쏘는 활'로 나누어 구분하는데, 이 중 발로 쏘는 활, 즉 십자궁에 대해 서술할 때 투르크나 페르시아인들은 강궁에 마즈라를 고정시킨 뒤 방아쇠를 달아 쏜다고 기록해 두었더군요. 역자는 역자주를 통해 이것을 마즈라가 십자궁의 원류라는 증거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이 마즈라가 통아 형태의 마즈라를 의미하는지, 아니면 십자궁 몸통의 화살이 지나가는 홈을 그냥 마즈라라고 표현한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후자라면 한단인님 글처럼 오히려 마즈라가 십자궁의 영향을 받아 발생했다고 볼 수 도 있을 듯 합니다. 하긴 터키에서 주로 사용했던 arrow guide인 siper(다만 이쪽은 마즈라와는 달리 군용보다는 멀리쏘기 경기용으로 주로 사용되었던 것 같긴 합니다)를 보면 반 고정적이라는데서 십자궁과 꽤 유사하긴 하군요.....
Commented by 한단인 at 2014/09/11 19:47
아! 그렇지 않아도 이런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리도 긴 장문의 댓글을 달아주셔서 감읍할 따름입니다.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이 글은 편전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던 제가 웹 검색 2시간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나름 전문가 분들의 도움을 받고자 어그로 아닌 어그로를 끌어 도움을 받으려던 것인데 이렇게 낚여주시니(뭐 임마?) 부족한 저로서는 다시 한번 감읍할 따름입니다.

말씀드린대로 이 글은 정식 책이나 논문을 참고 한게 아니라 웹문서만을 대략 참조한 것에 지나지 않아 제대로 된 교차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막글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한문사료 쪽은 웹문서가 상대적으로 풍부해 사료나 자료의 교차검증이 어느 정도 가능했고 솔레나리온의 경우도 어떤 자료에서는 9세기 것이라고 된 것을 교차검증해 6세기가 맞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까지는 가능했으나 마즈라의 경우는 정말 자료를 찾기가 어렵더군요. 끽해야 인도쪽 자료는 인도 마즈라 라고 검색을 해서 나온 것이 다입니다.

투르크 쪽 마즈라의 경우는 제가 참고한 웹문서를 링크하는 것을 잊었는데 주소는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bullpen&mbsIdx=2554065 입니다. 여기 글을 참고하면서 자세히 보질 않았는데 여기 걸 보니 인도도 6세기로군요. 물론 인용한 이 글에서도 정확한 출전을 밝히고 있질 않아 알 수가 없습니다. 솔레나리온의 경우는 그래도 출전이라도 명기된 웹문서가 많았는데...

그리고 마즈라의 어원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니 페르시아 쪽과 인도는 같은 아리안 계열이라 언어를 공유할 수 있다는 걸 깜빡했지 뭡니까?
Commented by 한단인 at 2014/09/12 01:11
그리고 아마 아시는 얘기시겠지만 인용하신 책은 맘룩 왕조의 인식이 저러했다는 것이지 실제로 저러했다는 보장은 이덕무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없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기원설이 2개라는 것은 기록을 전승한 주체도 직접 겪은 경험의 전수가 아니라 카더라 통신일 개연성이 높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니다.

가까운 지역인 인도는 물론이고 이웃인 비잔틴도 동시기인 6세기에 편전을 사용하고 있으므로 양 세계에 끼여있다고 할 수 있는 중동 지역에서 11세기 즈음에 그것을 운용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다만 투르크의 편전 이름이 마즈라 인 것이 인도와 같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비잔틴에게서 기술을 훔쳐온 것이 아니라 본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중앙아시아에서 인도를 거쳐 페르시아와 소아시아로 전파되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Lee at 2014/09/12 04:20
14세기 경에 쓰여진 또 다른 맘룩 왕조의 책 Munyatu'l-guzat( http://medieval.ucdavis.edu/130/ARCHERY.HTML )에서도 아랍 기원설을 확인할 수 는 있었는데, 확실히 말씀하신 바대로 당대의 인식이 그러하다는 것밖에 설명하지 못하는군요;;

그나저나, 인도에서도 arrow guide(통아)를 마즈라라고 불렀던것이 확실한지요? 주신 링크에서는 단순히 arrow guide라고 언급하고만 있고, 마즈라의 어원에 대해서 따로 찾아보니, 끌다, 당기다, 내던지다 등의 의미를 내포하는 아랍어 어근 JR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설도 있더군요( https://groups.yahoo.com/neo/groups/AncientBibleHistory/conversations/messages/42619 ).

참고로, 페르시아에서는 통아류를 navak이라 불렀고(홈, 배수로 등을 의미하는 nav-가 어근이라는데, 어근에 대해서는 출처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또 호라산 지역, 즉 지금의 이란 동북부와 투르크메니스탄, 아프가니스탄 지역에서는 nazil이라 불렀다고 합니다(어근은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by 한단인 at 2014/09/13 23:59
아... 답변이 늦어 죄송합니다. 실은 제가 어제 오늘 집에 없고 담양에 있어놔서 주신 댓글에 답을 드리기가 애매한 상황이었습니다. 휴대폰으로 답글을 장문으로 달기가 어려워서요. OTL

아무튼 영어가 안되다보니 제가 검색해서 참조할 수 있는 자료도 참 한정될 수 밖에 없더군요. 특히나 전근대 무기사의 경우 국내 밀덕층이 그리 두텁다고 할 순 없는 편인데다 지역도 편중된 형편이다보니 영어자료를 참조할 수 밖에 없게 되는데 그럼 저같이 영어 맥주병은 아무래도... OTL

그런 젼챠로 인하야 또 변명을 할 수밖에 없네요. 제가 참조할 수 있었던 것이 엔하미러와 간간히 검색되는 자료인데 출전이 명기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 참 뼈 아픕니다.

인도에서 '마즈라' 라는 표현은 확실히 지명에서 반영이 되고 있고 직접적인 뜻은 '용', '바다'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왜 편전을 지칭하는 용어로 활용되는지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군요. 참조한 자료를 보면 문맥상으로는 '통아'를 마즈라로 지칭하는 듯 했습니다. ( http://blog.naver.com/hopeater/196544323 ) 역시 출전을 밝히진 않네요.

다만 흥미로운 것은 말씀하신 것처럼 [페르시아에서는 통아류를 navak이라 불렀고(홈, 배수로 등을 의미하는 nav-가 어근이라는데] 라는 것은 인도에서 마즈라의 직역이 물과 관련된 '용', 혹은 '바다'인 것과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인도 동북부와 아프가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지역에서 이란식 통아류 용례와 관련하여 nazil라고 불렀던 것이 좀 아리까리하면서도 시사적이라고도 생각되는데 이유는 이렇습니다.

일단 투르크인들이 중앙아시아에서 북인도 근방을 경유하는 과정에서 마즈라를 습득했다고 한다면 그 경로가 바로 이 지역을 통과하게 되는데 만약 인도에서 강이나 배수로를 당시에 마즈라라고 표현했고 그것이 '홈'이라는 측면에서 통아류 또한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면 정작 이것이 페르시아에서 통아류를 지칭할 때 인도식 용어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자기네 언어 표현으로 직역한 결과가 navak 이 아닌가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럴 경우 웃기는 것은 투르크인들이 경유한 지역인 아프간, 이란 동북부, 투르크메니스탄 지역에서는 nazil이라 부르면서 정작 투르크인들은 인도식 표현을 쓰고 있더란 것이죠. 그렇다면 페르시아에서 마즈라라고 표현하면서도 navak 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면 투르크인들이 통아류를 마즈라라고 표현하는 것이 이해가 안간다는 거죠.

...저도 참 헷갈립니다.
Commented by moduru at 2015/11/26 10:51
오랜만입니다.

저.. 태종실록에 당 무후때 통사가 있었다는 기록을
저도 이게 궁금해서 예전에 몇가지 찾아봤는데,
출처로 되어 있는 "산당고색"의 원문을 보지 않는 이상 저 정도 말로는 정확히 모르겠더군요.


다만, 신당서 선거지에,
".... 그외에 또 무거(武舉)가 있었으니, 대개 무후때 시작된 것이다. 장안 2년(702녀), 처음 무거를 두었다. 그 제도에, 장타, 마사, 보사, 평사, 통사가 있었다"
"其外,又有武舉,蓋其起於武后之時。長安二年,始置武舉。其制,有長垜、馬射、步射、 平射、筒射"

는 구절을 봐서, 활쏘기 방식 혹 활(화살)의 일종인 거는 유력해 보입니다.


당나라 유래설의 확실한 거는, 아무래도 일단 산당고색을 뒤져봐야...

중화서국 산당고색이.. 160위안이군요...
http://www.zhbc.com.cn/book_view.asp?bid=2810

이 구절 하나 확인할려고, 28,000원 투자하는게.. 약간 억울.
Commented by 한단인 at 2017/03/02 21:02
하..하하.. 댓글 쓰신 걸 이제야 봤군요.

1년 3개월 만인가...;;;

그간 잘 지내셨나요?
Commented by moduru at 2017/03/10 21:44
ㅎㅎㅎ 옙.
뭐 다 그런거죠. 먹고 사느라 바빠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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