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20일
친일파, 이완용에 대한 단상.
이사람, 꼭 만나보고 싶다!
라는 포스팅에는 이완용에 대한 글이 있었는데 그걸 보고 댓글을 다음과 같이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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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일본에 대한 이미지는 침략자라는 이미지보다 동양을 대표해 서양을 물리칠 문명개도의 상징으로서 인식됨이 컸습니다. 개화 세력이었던 이완용이 매국노가 된 건 스스로 나라를 팔아넘기겠다는 악의적 의도보다는 아마도 문명개도의 시도라고 스스로 착각을 했던 결과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실 이완용만 그런게 아니라 당시에 그렇게 낚인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아마도 스스로는 궁극적으로 조선 민중과 민족을 위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이건 아니다 싶었지만 이미 길은 틀어졌고 스스로에 대한 당위를 만들다보니 식민사관이니, 일제 찬양 어쩌고가 나왔던 겁니다.
흔히들 말하는 친일파에 대해서는 악질적 매국노가 있는가 하면, 이런 순간의 판단 착오로 인해 벌어진 경우나 현실의 어려움에 굴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의 틀로 이들을 규정하기란 어렵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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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친일파의 대표라고 알려진 이완용의 경우 초기에는 강력한 근왕파적 성향을 보인다. 그런 그가 왜 을사 5적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했는가는 아직도 연구자들 간에 정확히 규정되진 않고 있다.
사실 구한 말의 복잡한 세계 정세 속에서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때문에 고민하는 부류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주변에는 온통 강대국 뿐이고, 선택해야하는 길은 너무도 많은데 앞 일은 깜깜하여 보이질 않는다. 정치적 파벌이 다양하고 그들 간의 의견 통합이 어려워 단합이 되지 않는 상황과 혼란적 정국은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아마 초기 친일 세력도 그 시작은 앞일을 정확히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어떻하다보니 수렁에 휘말린 부류도 분명 있으리라. 그나마 현실적 대안에서 일본이 주는 안정감 같은 것은 그 선택지 중에서 가장 무난해 보였을 것이다. 게다가.. 본인한테 돌아가는 떡고물도 적지 않을테니 유혹에 넘어가기란 그리 어렵지 않을터..
분명한 건 당대인과 후대의 사람의 멘탈리티와 시대 이해는 분명히 같지 않다는 것이다.
ps. 1 근대의 다양한 일면을 고찰하기에는 본좌의 무식으로 인해 무리일 듯 싶다. 사실 본좌는 고대사 공부에만 치중한 놈이라 이런 문제에는 맥주병이다.
ps. 2 위에 친일파 이해가 자칫 그들에 대한 옹호라고 생각될 수 있으나 당대인의 행위 이해와 평가는 별개의 이야기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마치 이것은 살인자의 살인 멘탈리티를 이해한다고 해서 살인에 대한 동조가 되는 것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라는 포스팅에는 이완용에 대한 글이 있었는데 그걸 보고 댓글을 다음과 같이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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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일본에 대한 이미지는 침략자라는 이미지보다 동양을 대표해 서양을 물리칠 문명개도의 상징으로서 인식됨이 컸습니다. 개화 세력이었던 이완용이 매국노가 된 건 스스로 나라를 팔아넘기겠다는 악의적 의도보다는 아마도 문명개도의 시도라고 스스로 착각을 했던 결과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실 이완용만 그런게 아니라 당시에 그렇게 낚인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아마도 스스로는 궁극적으로 조선 민중과 민족을 위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이건 아니다 싶었지만 이미 길은 틀어졌고 스스로에 대한 당위를 만들다보니 식민사관이니, 일제 찬양 어쩌고가 나왔던 겁니다.
흔히들 말하는 친일파에 대해서는 악질적 매국노가 있는가 하면, 이런 순간의 판단 착오로 인해 벌어진 경우나 현실의 어려움에 굴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의 틀로 이들을 규정하기란 어렵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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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친일파의 대표라고 알려진 이완용의 경우 초기에는 강력한 근왕파적 성향을 보인다. 그런 그가 왜 을사 5적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했는가는 아직도 연구자들 간에 정확히 규정되진 않고 있다.
사실 구한 말의 복잡한 세계 정세 속에서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때문에 고민하는 부류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주변에는 온통 강대국 뿐이고, 선택해야하는 길은 너무도 많은데 앞 일은 깜깜하여 보이질 않는다. 정치적 파벌이 다양하고 그들 간의 의견 통합이 어려워 단합이 되지 않는 상황과 혼란적 정국은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아마 초기 친일 세력도 그 시작은 앞일을 정확히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어떻하다보니 수렁에 휘말린 부류도 분명 있으리라. 그나마 현실적 대안에서 일본이 주는 안정감 같은 것은 그 선택지 중에서 가장 무난해 보였을 것이다. 게다가.. 본인한테 돌아가는 떡고물도 적지 않을테니 유혹에 넘어가기란 그리 어렵지 않을터..
분명한 건 당대인과 후대의 사람의 멘탈리티와 시대 이해는 분명히 같지 않다는 것이다.
ps. 1 근대의 다양한 일면을 고찰하기에는 본좌의 무식으로 인해 무리일 듯 싶다. 사실 본좌는 고대사 공부에만 치중한 놈이라 이런 문제에는 맥주병이다.
ps. 2 위에 친일파 이해가 자칫 그들에 대한 옹호라고 생각될 수 있으나 당대인의 행위 이해와 평가는 별개의 이야기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마치 이것은 살인자의 살인 멘탈리티를 이해한다고 해서 살인에 대한 동조가 되는 것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 by | 2007/10/20 15:54 | 역사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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