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루스 | 로그인  


태그 : 환빠

보론(?) : 발해고 전에는 발해를 한국사로 생각한 적 없다?

환단고기 태백일사에 대해 사소하게 까는 글..(일부 수정)

트랙백한 포스팅에서 제가 한 언급 중에 16세기 조선 사족들은 삼한 정통론이란 일반적 인식 때문에 발해사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고 자국사 영역으로 생각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100% 그렇다라는 의미는 아니었고 예외는 있을 것이다 라는 뉘앙스를 풍기기 위해 '일반적 인식' 이 그렇다 란 표현을 썼지만 개인적으로 '그럴 가능성은 대단히 낮겠지' 란 게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그래서 멀쩡한 사람 하나를 가정 상으로라도 별종 취급하기도 했습니다만..)

그런데 제가 트랙백 포스팅을 조공으로 바칠 분으로부터 문제제기가 들어왔는데 그걸 본 저는...

이어지는 내용

by 한단인 | 2009/02/18 19:56 | 역사 | 트랙백 | 덧글(23)

환단고기 태백일사에 대해 사소하게 까는 글..(일부 수정)

초록불님과 악질식민빠님, shaw님들 같은 분들에 의해 환단고기 위서론이 더욱 공고해진 이 마당에 새삼스럽게 또 변변찮은 수준의 까는 글을 남기는 것은 많이 민망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나 선학들에 의해 이미 비슷한 내용이 이미 쓰여진 것이라면 더더욱..  그럼에도 굳이 사족을 남기는 까닭은 해당 분들의 글을 취합해서 나름 정리, 요약하려는 어떤 분께 조금이라도 이해에 도움이 되고자 함이니 독자제현께서는 이 점을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다능...

이어지는 내용

by 한단인 | 2009/02/16 14:19 | 역사 | 트랙백(2) | 덧글(17)

'요서=고구려 요동' ~썰 중에 하나까기? - 요서 백랑성=고구려 마미성?

문무왕릉비 투후 기사의 실체는...

발해 수령 포스팅에 쓸 사료를 찾을 게 있어 모처럼 역사문 카페에 들어가서 검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마침 제가 찾던 부분을 찾아서 읽긴 했는데 포스팅에 쓸 근거 사료로 쓰기에는 부적합하더군요. 이래서 야매로 공부하면 몸이 고생..;;;

그런데 사료를 인용하고 있던 글은 고자(응?) 묘지명 일부를 근거로 '요서=고구려 요동' 설을 지지하는 설이라 괴악함을 느껴 말싸움을 했던 글이었습니다. 문득 그때 옛 생각이 나서 그 글을 읽고 있었죠. http://cafe.daum.net/alhc/51q2/4458

엄밀히 말하면 디시에 떠돌아다니던 썰의 하나였는데 아직 미혹함에서 벗어나기 전의 저인데도 불구하고 꽤나 괴악스럽게 여겼던 글입니다. 별 생각을 않고 몇가지 미심쩍은 걸 걸고 넘어졌는데 글 쓴 본인이 찾아와서 반론을 쓸 줄은 몰랐지요. 그런데 이 글을 언급하는 까닭은 그 읽다보니 야스페르츠님이 언급하셨던 '고사의 수사적 인용을 실제 사실과 관련 있는 것으로 연결짓는 중증 난독증' 과 유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그 글 본문에서는


만세통천(萬歲通天) 2년(697) 5월 23일 마미성(磨米城) 남쪽에서 죽으니 춘추 33세였다.” (寇賊憑陵晝夜攻逼?孤?闊糧盡矢?視死猶生志氣?勵父子俱陷不屈賊庭以萬歲通天二年五月?三日終於磨米城南春秋?有三 )

아마도 고문(高文), 고자(高慈) 부자는 홀로 적진 깊숙이 남아 최후까지 구원병을 기다리며 전투를 벌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결국 구원병은 오지 않고, 양식과 화살이 다 떨어져, 결국 마미성 남쪽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토사구팽(兎死狗烹) 당한 것이다. 이 비문에서 결정적 증거는 그 다음 명문에 있다.

“짚으로 만든 개가 한번 이르자 아름다움과 추함이 함께 의지하고, 백랑성(白狼城)의 구원이 끊어지자 황룡수(黃龍戍)에 사람이 드물구나.”(有違芻狗一致美惡同依白狼援絶黃龍戍稀)

-중략-

마미성의 구원병은 백랑성에 있었다. 백랑성에서 구원이 끊겼지만 고문(高文), 고자(高慈) 부자는 최후까지 결사항전(決死抗戰)을 벌였다. 바로 황룡수(黃龍戍)에서 말이다. 그리고 결국 마미성 남쪽에서 최후를 맞았다.

황룡수(黃龍戍)는 바로 황룡성이 있었던 곳이고, 강단사학계에서는 지금의 조양 남쪽이라고 한다. 이 곳에서 최후까지 전투를 벌였으니 황룡수는 결국 마미성이다. 따라서 지금의 조양(朝陽) 인근이 바로 고구려의 옛 땅인 당나라의 마미주라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라고 하면서 고구려 마미성=요서 백랑성 이라더군요. 그때는 아는 바 일천하고 불민하기 짝이 없는 저인지라 되도 않은 소리까지 늘어놓으며 반론이랍시고 글을 써갈겼는데 지금 보니 낯이 다 화끈거립니다. 헛소리를 제법 많이 써두었더군요. 반론이랍시고 제가 지껄였던 말은 [성이 어쩌네, 수가 어쩌네,, 혹은 고자 부자(응?)가 황룡수에서 마미성까지 도망친거네..]란 황당한 소리였더군요. (이래서 '모르면 가만히 있지. 중간이나 가게' 란 말이 있나 봅니다. OTL)

얼마 전에 야스페르츠님 글을 읽고 이 글을 다시보니 명문 마지막 부분에서 백랑수와 황룡수를 언급한 것은 마미성에서 외롭게 전사한 고자 부자를 보다 서정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수사적 장치에 불과한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백랑성과 황룡수가 언급된 명문 마지막 문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봉래산이 높고 요하(遼河)가 길게 펼쳐져 5족(五族)의 부락을 이룬 산천(山川)의 한 귀퉁이에 영기(靈氣)가 머물렀도다. 사람은 정결하고 어질고 싸움에서는 결실을 드러냈으니 후손들이 그 향기를 기리도다. 첫 번째.
뛰어나구나 조상이여, 아름답구나 후손이여, 창을 비켜잡고 국난을 평정하고 검을 뽑아들고 먼지를 깨끗하게 했도다. 의(義)를 보면 용기를 내고 겸양에는 인(仁)이 있으니 그 선명한 맹서 큰 띠에 적어 영원하도다. 두 번째.
어리석고 간사한 무리가 일어날 때 왕자(王子)로 출사(出師)하여 우리에게 복속시하고 버드나무돛에 망망창해에서 창을 휘둘고 악인을 처치했도다. 자(子)로는 효도하고 신(臣)으로는 충성하여 집안으로부터 나라를 드러내었도다. 세 번째.
선함을 쌓았으나 녹은 없고, 덕으로 도왔으나 어그러짐만 생기는구나. 짚으로 만든 개가 한번 이르자 아름다움과 추함이 함께 의지하고, 백랑성(白狼城)의 구원이 끊어지자 황룡수(黃龍戍)에 사람이 드물구나. 이릉(李陵)은 머물렀으나 온서(溫序)는 돌아갈 것을 생각했구나. 바라건대 일월에 기원하고 황천에 완염(琬琰)을 보내노라. 네번째.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뒤에서 이릉과 온서를 운운한 걸 봤을 때 암만 생각해봐도 이건 고사 인용한 게 맞는거 같아서요. 그런데 그러자면 백랑성과 황룡수에서 벌어진 전투에 대한 고사가 있어야 할텐데 아는게 일천한 저는 그런 고사를 들어보질 못해서리... 혹시 이거 유명한 고사인가요? 제목을 괴설 까기? 라며 물음표를 친 까닭은 그 때문이라능..(먼산) 



소하님이나 자명님 같이 고전에 밝으신 분이라면 아실 것 같지만 이런 허접한 포스팅을 보실지는 의문..


결론 : 야매로 공부하면 몸이 고생..(먼산)


덧.  바..발해 수령 포스팅은 내일 연재가 가능할까염? (도주)


아래는 고자 묘지명 번역 전문

by 한단인 | 2009/01/02 17:16 | 역사 | 트랙백 | 덧글(6)

아..돌아버리겠구나.. 신시본토기?

카페에 횡행하는 듣보잡이 댓글(읽다가 내가 이 인간을 왜 상대해야하는 건지 진지하게 생각해봤음)을 써놨길래 그걸 읽고 반박댓글을 달려고 로그인을 한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카페 회원창에 구산(九山)이란 닉넴을 가지신 분이 접속을 해 있더군요.


바로 요거 쓰신 할아버지..


....설마.. 신시본토기 쓴 구산 장동균 할아버지는 아니겠지? 하며 등업신청서를 보니..




....한국애석문화연구소장 이란 현판을 걸어두신 그 어르신 맞더군요.



요즘 우리 카페에 왜 이런답니까? 허허허






..운영자 관둘까?




ps 1. 나 솔직히 이 할아버지 글 쓸까봐 겁난다..

ps 2. ..독재냐, 관둘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by 한단인 | 2008/05/23 13:46 | 일상 | 트랙백 | 덧글(9)

어느 나라나 다 똑같군..

영혼의 책

...투르크가 이슬람 받아들이기 시작한게 불학무식한 본햏이 알기로는 대략 9~10세기 즈음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시기 위구르제국이 멸망하면서 많은 투르크인들이 중앙아시아나 이란고원 쪽으로 집단 이동했기 때문이다. 투르크의 이슬람 세계 진입이 그때인데..


...딱까놓고 말해서 5천년 전의 오구즈 칸이 알라신이니 노아니 알게 뭐냐.. 투르크 애들은 알타이산맥 서쪽에 있었을 텐데...


사람 사는게 별반 다른게 없나보다. 환빠니 대륙빠니..

그래..어쩌면 동이, 북적, 남만, 서융을 하나의 혈통, 문화단위로 보는 대륙빠의 사고구조가 저거하고 다른 게 없는거 같다. 대륙빠는 '중원만 아니면 우린 모두 형제'니까..
 
그게 현재 이슬람교 믿는 투르크인들에게 선천적으로 이슬람교적 '신화'를 가졌다고 뻥치는 거랑 다른 게 뭐냐?


ps. 오구즈 칸이 인도까지 정복다는 내용에서 열폭크리..(하긴 소싯적에 그딴 비슷한 걸 믿은 나도 나지만..)

by 한단인 | 2008/05/19 02:35 | 역사 | 트랙백 | 덧글(2)

소문의 10계? 위서의 10계?

임승국은 환단고기를 언제 보았을까?

위 포스팅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저걸 읽다보니 문득 M 선생의 작태나 한@@의 행각이 이 웹툰과 매치가 되었음을 떠올리며 낄낄거렸다.

소문의 10계 (마음의 소리 58회)

참고로 저 웹툰은 일전에 본햏이 조금은 다른 용도로 역사문 카페에서 써먹은 적이 있었다. 카페로 환빠 한명이 찾아왔었는지, 카페 회원 한분이 환빠의 낭설에 말린 것인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중국 동해안에 횡행하는 연개소문 전투 '전설'을 사료삼아 연개소문의 중원 침략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환빠들의 설에 비웃음을 가하기 위한 용도로 저걸 써먹었던 것이다.(그게 말이 안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요서의 완충지대로 인한 보급의 난점 때문에 연개소문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전설전승이 사료로 이용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철저한 사료비판을 몇번이나 거친 후에나 할 수 있다. 더구나 기록이란 확실한 저장매체도 아닌, 불완전한 인간의 기억을 입에서 입으로 옮겨진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거기서 건질 수 있는 사실이란 정말로 극소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아마도 중국 동해안 일대에 그런 전승이 남게 된 것에는 1차 고당전쟁에 참전한 당군의 상당수가 하북, 산동, 강회 지역 등의 상대적으로 해안 쪽에 가까운 지역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아마도 그들 자신의 무용담이나 전투의 참혹한 기억들을 돌아와서 주변사람에게 얘기하는 과정에서 과장되거나, 혹은 내용 일부를 곡해, 윤색하거나, 혹은 세대가 지나면서 기억들이 점차 무의식적으로 편집되면서 현지 전설화 되었으리라고 생각된다.)
 
문득, 그들의 작태가 그때와 다르지 않았던 것까지 생각이 나서 5분간 데굴거렸다.(그런데..더 웃긴건 그걸 소싯적에 본햏도 말려서 몇년간 믿었다는 점이다.) 


by 한단인 | 2008/02/09 01:19 | 역사 | 트랙백 | 덧글(4)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